2003년 가을에 설악산 십이선녀탕으로 단풍 구경을 갔다. 단풍은 이미 졌지만 십이선녀탕계곡의 절경을 완상하며 여유롭게 등산하는 맛은 그저 그만이었다. 계곡 바위에 등 대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누웠는데 바로 옆 바위 위로 계곡물이 쏜살같이 타고 흘렀다. 무심코 바라보다 가슴이 찡해 왔다. 흐르던 물이 넓쩍 바위 위에서 두께 5mm로 쫙 깔리며 내달리니 자연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이보다 시간의 속도를 극명히 드러내보일 수 있으랴. 세월의 속도가 이와 같음을 어찌 통탄치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