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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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참으로 희안한 방식으로 `완전범죄`를 달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에게 복이 있어서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별로 물어보지도 않는다. 엉겁결에 가짜 탐정이 되었으나 열심히 잘 들어주기만 하니 사건도 풀고 위기탈출도 한다. 들을 줄 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다.

그는 원래 자기 주장도 없이 사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다. 변변치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소설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소설 같은 사랑을 꿈꾼다는 점에서 역시 변변치 못하다. 그러나 이 변변치 못한 갑남을녀들이 결국은 전설적인 탐정이 되고 사랑의 큰 성공을 이룬다. 최소한 남자 주인공에게 있어서 그 원인은 남의 말을 잘 들어준 덕분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덕에 복 받았다.

저자의 이야기솜씨와 더불어 글솜씨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글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조사(한글인 경우) 하나조차 아끼고 아껴서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는 작문의 수칙을 무척이나 잘 지킨 듯한, 말끔한 신사 같은 글이다.

나는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공항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복 없게도 새벽 1시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4시반으로 연발됐는데, 그 피곤한 가운데도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비행기가 가거나 말거나 다른 나라 승객들이 거의 연좌데모 직전까지 가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중추신경은 갈수록 말똥말똥 해지고 거침없이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가 주는 마력으로 잘 다듬어진 추리소설만한 것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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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9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바위 2004-08-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그런데 정말 신혼여행에 대부라니요... 즐거웠습니다. 바다도 산도 핏자도우도, 그리고 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는 개들이 무척 여유로워서 사람이 가도 쳐다보지도 않고 영역표시를 위한 오줌싸기도 거의 안 하는 것 같고, 파도 치면 파도 놀이 하고...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발리에서 유래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보다 선선해서 놀랐습니다. 하긴 남반구라 겨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