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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웬만한 노벨문학상 수상작 몇 권에 값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사랑과 우정의 참됨에 관한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추궁, 쥐었다 놓았다 뒤집었다 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천부재능이 20세기 최대문호 반열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어정쩡하게 사는 것이 범죄로 느껴진다. 이거냐 저거냐 확실히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목숨 걸 것을 요구한다. 여인을 사랑함에도 친구를 사귐에도... 비겁함과 오만함에 대한 추상같은 평결과 동시에 그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관용을 또한 느낀다. 우정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사랑은 또 어느만큼 철저할 수 있는지... 이 책을 보면서 느낀다.
이야기솜씨 또한 명인의 경지다. 현란한 스토리 전개 없이 극히 단순한 구조로, 죄다 생략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지만, 이야기는 읽는이를 압도한다.
1942년에 쓰여진 작품이 반세기 이상 묻혀 있다시피하다가 1998년에야 세상의 큰 빛을 보게 된 것도 극적이다. 산도르 마라이라는 사람 자체도 삶에 지독스런 이 책 주인공들을 닮았다. 독일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왔으면서도 평생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삼았고 자유인으로 글쓰고자 망명자가 되어 읽어줄 사람 없는 상황에서도 끝내 헝가리어로만 글을 썼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