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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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오늘 설화와 나리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속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천 리를 가는 동안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두 개의 개울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천 년 동안 한 정원에 피어 있는 두 송이 꽃과 같을 것입니다.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이에 모진 말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단짝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P79

 
 ‘전족’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는 통코우 마을의 ‘설화’와 푸웨이 마을의 ‘나리’가 만나서 맹세한다.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라오통’이라는 두 마음의 결합을…. 평생 지켜나가야 할 이 약속을 시작으로, 설화와 나리는 그들의 기억을 부채에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누슈’라는 여인들만의 비밀 문자로 말이다…. 하지만 작은 오해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은 시험에 들게 되고,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후회와 아픔’으로, 그리고 또다시 ‘우정과 사랑’으로 남겨진다.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전족’, ‘누슈’, ‘라오통’, ‘후회와 아픔’, ‘우정과 사랑’ 이라는 몇 개의 이미지로 이 소설,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정리해본다. 이 몇 개의 단어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이렇게 정리해도 전혀 모자람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너무 뻔 한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전족’, ‘누슈’, ‘라오통’ 으로 대표되는 19세기 중국 후난성의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종을 강요당하며, 다락방의 작은 창 하나가 세상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19세기 중국 후난성의 여인들. 어린 시절, 그녀들 각자가 앞으로 짊어지어야 할 삶을 대변하는 ‘전족’을 시작으로 그녀들의 고달픈 삶은 시작된다. ‘전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인들의 발 자체를 지금의 하이힐로 바꾼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겠다, 더 궁금하다, 고 한다면 검색이라는 유용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묘사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그래서 내 발가락이 하나하나 부서지고, 새롭게 조각되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드는, 그 ‘전족’을 그 당시의 여인들이라면 누구나가 해야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에게는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아줄 수 있는 ‘의자매’가 있었고, 그와는 약간 다른 개념의 ‘라오통’이 있었다. ‘라오통’은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평생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P34)’을 말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설화’와 ‘나리’가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해주는 것이, 여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온 비밀의 문자 ‘누슈’였다. 남자들은 그 존재 자체도 알아서도 안 되는… 이런 요소들 덕분에, 여자들만의 우정,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절절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 미처 알지도,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비록 그 새로움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고도 아름다워서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오게 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에게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지는 여인들만의 세상을 알려주는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리사 시’의 소개 글에, 그녀는 분명 파리에서 태어나고 LA 에서 자랐다고 적혀있었다. 글과 함께 있던 사진을 통해 만난 그녀의 얼굴도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함께, 이 책에 가지고 있던 기대의 딱! 절반이 우려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중국 어느 작은 마을의 여인들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중국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사실 많은 페이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쓴 작가가 누구며, 그 작가의 출생이 어디인가, 따위는 이미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어쩜 그렇게 그 시절 중국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아내는지… 전족이나 라오통을 비롯해 결혼 예식이나 장례 의식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점에 있어서 더더욱 말이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그래서 현실과 다른 어느 정도의 실수(?!)가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나오기 힘든 동양의 정서는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리사 시’는 중국계 미국 작가라고 한다. 물론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녀의 글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놀라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지만, 지금 당신의 곁에는 이런 사람이 있는가!?, 묻고 싶어진다. 겉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 속만큼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 말이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 어느 순간이후로는 나와 같은 색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나와 같은 영혼의 울림을 가졌다고 믿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쩌면 ‘소울 메이트’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상대가 이성이냐 동성이냐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남자든 여자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비록 단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반을 후회와 아픔으로 보내야 했지만, 그마저도 아직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없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아, 나도 모르게 ‘나리’를 토닥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가 가졌던 우정, 사랑이 어떤 것이었기에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토닥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 궁금하다면 이제 당신이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만나볼 시간이다. 

  아, 그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리’는 마지막에 ‘제발 내 말을 들어주오. 부디 나를 용서해주오.’라는 말을 남긴다. 만약 지금 당신 곁에 ‘소울 메이트’가 함께 한다면 -반대로 지금 당신 곁에 ‘소울 메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선 그 존재부터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훗날 대답조차 들을 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할 짓은 하지 않겠다.’ 는 따뜻한(?!) 말 한마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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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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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아니 어쩌면 매순간,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 가슴 속에 그 무언가가 꽉 들어차서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너무나도 많이 비어있었기에,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숨 막히게 만든 것 같았다. 뭔가가 들어있어야 하는 곳이 한없이 깊고도 깊은 빈 공간으로 남겨지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문제는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지도 모를 만큼 내 머리까지 점점 그런 숨 막힘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채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그냥 그런 답답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쉰다. 휴 ㅡ.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한숨도 꼴에 숨이라고, 나도 모르게 숨의 목적이 되는 생을 찾게 되는 책, 『허기의 간주곡』을 만나게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가장 먼저 끌렸고, 더군다나 작가가 서울 체류 중에 집필한 작품이라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 『허기의 간주곡』이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를 모델로 쓴 소설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런 것들에 대한 많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단순한 호기심 따위에 크게 영향 받지 않지 않는 작품이기에 말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주인공 ‘에텔 브룅’이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종조부 솔리망의 관심과 사랑 속에만 존재하던 에텔은 그의 죽음과 동시에 아버지 알렉상드르와 어머니 쥐스틴의 불화, 그들을 감싸고 있던 세상에서 벌어진 전쟁 등으로 인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던 코탕탱 가의 살롱을 벗어나 뜻하지 않게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냥 회피해버리고 마는 낯선 세상 속에서, 에텔은 그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구멍들을 메워가며, 열 살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에서 어느 한 순간 훌쩍 자란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야기는 개인의 삶으로 큰 세상을 이야기하고, 큰 세상 속의 개인을 이야기함으로써 지난 기억, 지금의 기억, 혹은 우리 앞에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억을 펼쳐 놓는다. 그렇게 ‘르 클레지오’는 이 작품에서 ‘기억’의 간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허기’를 이야기하고, 그 허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의 의지’를 통해서 우리의 삶,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며 시작해서 지난 허기의 기억을 들려준다. 군인들이 던져주는 음식들을 잡기위해 달려가던 기억, 기름진 음식에 굶주리던 기억, 처음으로 만난 흰 빵에 대한 기억 등. 하지만 쉽사리 나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작가가 가진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게끔하는 그런 허기를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육체적인 허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그렇다고 또 다른 허기를 느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작가가 지난 허기의 기억에 이어 들려주는 또 다른 허기처럼 말이다.  

 

 많은 이들이 욕심은 나쁜 것, 단점이라고만 생각하며 그것을 경계하고 멀리하려고만 애쓴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그 욕심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더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평면적으로 좋게만 보이는 어떤 것들보다 오히려 나쁘게만 보이는 어떤 것들이, 삶에 있어서 보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허기의 간주곡』을 통해서 ‘허기’라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기를 경계하고 멀리하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라면, (앞에서도 살짝 이야기했지만…)안타깝게도(?!) 전자였다. 딱 그 수준에서 멈춰있었던 것이다. 맞서는 것이 아닌 그냥 회피해버리는 것… 어쩌면 빈 공간은 더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빈 공간을 메워야 한다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것이 생(生)에 대한 강한 의지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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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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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은 지난해 12월에 출간된 소설들 중에서,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비롯해, ‘미국 문학계의 코믹 걸작이다.’, ‘가장 웃기는 책들 중 하나… 당신을 배꼽 빠지고 눈물 나게 만들 것이다.’ 등의 찬사로 인해서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의 말들이, 그 말들 그대로 나에게 느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인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겨지는 작품이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배꼽이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 눈물이 나긴했으나 그것역시 웃다가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쓸데없이 수많은 격찬을 인식해서인지, 상당한 기대를 하면서, 웃기면 떼굴떼굴 구를 준비까지 하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기 전부터 전해지는 작가의 안타까운 현실에 -나의 기대는 어떨지 몰라도- 웃음기는 사라져만 갔다. 작가, ‘존 케네디 툴’이 문학을 공부하다가 군에 징집되어 복무하게 되면서 쓰게 되었다는 『바보들의 결탁』.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그의 작품을 받아주지 않았고, 어머니와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처음 만나는 이 작품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셈이다. 그나마 사후에 이 작품이 책으로 출간되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으며, 결국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전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초록색 사냥모자가 살덩어리 풍선 같은 머리통 윗부분을 쥐어짜듯 꾹덥고 있었다. 모자에 달린 초록색 귀마개는 커다란 귀와 텁수룩한 머리카락과 귓속에 자라난 빳빳한 솜털을 덮느라 양방향을 동시에 가리키는 방향지시등처럼……’이라는 글로 시작되는 『바보들의 결탁』. 그 시작은 한 인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한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이다. 그는 초록색 사냥모자를 쓰고, 검은 콧수염을 기른 채, 풍성한 트위드 바지에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와 목도리의 누가 봐도 난감한 옷차림에 덩치 크고 뚱뚱하기 까지 한 남자이다. 하지만 그런 외모보다도 그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만의 벨탄샤웅(세계관)이다.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오는 그의 행동과 말투는 보통의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독자들의 무한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게 만들어 놓는다. (물론 반대로 그의 행동과 말투 덕분에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독자들도 많겠지만…) 평소에 하는 짓이 얄미워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이제는 정을 좀 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다른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이내 그 마음마저도 돌아서게끔 만드는 사람이 주변에 있지는 않은가?! ‘이그네이셔스’가 딱 그런 캐릭터다.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고학력의 만년 백수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그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영향을 받아, 현실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바보들의 결탁』이다. 

 

  대충이라도 이미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작가 ‘존 케네디 툴’과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를 따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음)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인물. ‘존 케네디 툴’은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의 눈으로 그가 부딪혀가는 세상을 그 스스로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의 모습을 통해서, 이그네이셔스를 통해서 바보라고 불리는 많은 바보가, 어딘가 에서는 바보가 아닌, 그래서 바보가 아닌 자들이 바보가 되어버리는 바보 같은 세상을 말이다. 현실이 아닌 이상에 사로잡힌… 하지만 그것이 이상이라는 생각조차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또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모습으로 그를 비추는 것이다. ‘존 케네디 툴’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니어야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다고 일찌감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작가 스스로와는 다르게 다소 뻔뻔한 모습의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은 새해가 시작할 때쯤 한 해의 계획을 세울 때이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라고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인지라 절대 공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끔 하는 하나의 순간을 더 추가해야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원래 작가가 의도한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고 싶어질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그렇다. 당연하게도(?!) 그 한 권이 책이 『바보들의 결탁』이다. (아, 그렇다고 이 책의 변역이 형편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겠다. 옮긴이도 언어의 차이로 분명히 아쉽다고 언급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이것은, 작가가 표현했던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지 못했기에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는 핑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혹은 어떤 미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냥 책을 읽고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쉽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나에게 있어서…)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아쉬운… 내가 찾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꿔 말하면, (짧은 지식으로 인한 나의 문제이지만…) 난 아직 이 책의 제대로 된 가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 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이 책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찾지 못한 많은 것들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이 책의 제대로 된 가치를 찾아봐야 겠다. 하지만 그 보다도 먼저, 이 책의 시작에 있어서 내가 기대했던 것들과 마지막에서 정반대의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웃음이란 것으로 인해 유발되는 것을 무조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웃음이란 것이 그 반대의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었으니… 그러고 보면 세상에 무조건 이라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바보가 무조건적으로 바보가 아닌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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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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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책과의 만남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인해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선물로 인해 만날 수도 있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많은 이들에게 팔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때로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새로운 책과의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심어지 때로는 출판사의 이름만으로도 새로운 책과의 만남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의 이번 경우, 『앨리스의 미궁호텔』과의 만남이 그 ‘심지어’에 해당한다. 

 

 비채의 「Black & White」시리즈로 나왔다는 신간을, 단지 그 시리즈라는 사실만으로 큰 고민 없이 구입했다. 아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살펴보지 않았더라도 제목정도는 확인했다. 누군가는, 책의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믿을만한 시리즈라면-적어도 나에게 「Black & White」시리즈는 그렇다- 그 구체적인 내용 정도는 살펴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전까지의 시간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 『앨리스의 미궁호텔』이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의 상상과 그 내용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훗!

 

 노란색의 표지와는 상관없이 『앨리스의 미궁호텔』이라는 제목만으로-미궁이라잖아!!- 으스스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음… 하지만 그 내용은?! 그렇다! 제목보다는 뭔가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이 솟아나는 노란색에 더 큰 비중을 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했던 으스스한 뭔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누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에 차이에 있겠지만 말이다. 따뜻하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은 어떤 느낌까지 살짝 담겨있는 『앨리스의 미궁호텔』… 미궁은 미궁이다. 

 

 『앨리스의 미궁호텔』의 주인공인 ‘야마자키 돼지돼지’씨는 분홍색 돼지 봉제인형-응?! 놀랍지만 사실이다!!-이다. 배구공만한 크기에, 한쪽 귀는 뒤로 젖혀있고, 검은 구슬을 꿰매 붙인 것 같은 눈과 쀼죽 튀어나온 코가 특징적인, 돼지 인형이다. 그런데 호텔 버틀러로써 다른 직원들을 교육시키기까지 하는 돼지 인형이자 중저음의 보이스로 이야기하는, 그것도 무려 40대의 남자이다. 신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런 그와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도 -물론 예외도 있지만…-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돼지돼지 씨가 아무에게나 막 드러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선택된 사람 앞에만 나타난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하지만, 선택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그게 그건가?!;;- 앞에만 나타난다. 특히 어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위로와 따뜻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리고 나에게도 돼지돼지 씨 같은 멋진 행운이 주어지길, 아니 꼭 그런 행운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그렇게 『앨리스의 미궁호텔』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난 것만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돼지돼지 씨를 만났지만, 그래서 따뜻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정작 돼지돼지 씨,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들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봉제인형이 말을 하고, 움직이는지, 어떻게 중저음 보이스를 가진 40대의 남자가 되었는지, 또 어떻게 그랜드 호텔의 버틀러가 되었는지 등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으며, 그보다 더 궁금한 -돼지돼지 씨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가족- 그의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의 그림자조차 만나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돼지돼지 시리즈」는 10년 이상 이어져 온 장수 시리즈이며, 일본 현지에서 열두 권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직은 그를 만날 많은 기회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돼지돼지’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돼지돼지 씨가 이야기한다. “귀여운 버틀러 돼지돼지 씨의 호텔로 어서 오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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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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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며느리, ‘청수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아들이자 남편이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왕원쉬안’의 정말 답답한 이야기가 『차가운 밤(寒夜)』에서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TV 속의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를 보는 듯 한 느낌까지 든다. 잘 지내야 겠다고 다짐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폭발하고, 다시 화해하고, 또 폭발하고… 그러다가 병들고, 지치고, 헤어지고, 죽는다… 『차가운 밤(寒夜)』은 흔히 많은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는 고부간의 갈등, 가족 간의 불화를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솔직히 말해서, ‘아니! 아직도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뭔가를 생각해야 하나’ 혹은 ‘이런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이야기들을 또!! 읽고, 답답해하며 있어야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아니 거의 마지막까지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저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바진의 작품이고,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바진 최후의 명작’이라니 끝까지 참고 봤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조금은 보통의 그런 이야기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느껴졌고, 결국 작품의‘해설’에 이르러서야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한 가정이 비극의 길로 치닫는 것은 단순히 개인으로 대표되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한 것 이 아니라, 그 가정을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상황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차가운 밤(寒夜)』은 한 가정을 이야기하지만, 전쟁 중이라는 상황 하에서, 그 시대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어야만 하는 사회와 제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진통들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해설에서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 성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나이기에 논외로 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이 책을 읽어나간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책 속의 내용을 벗어나 그 이면을 바라봐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이 책을 통해서 쉽게 읽으면서-물론 그 내용에 있어서 답답함을 참을 길이 없었지만…- 그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놀라움을 선사해준 작가, ‘바진’에게 관심이 옮겨간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바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샘솟는 것을 느낀다. 봉건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그가, 그의 문학으로 상류층의 허례허식과 억압성, 착취 속에 신음하는 노동 계급의 아픔과 가난을 이야기하고, 아나키즘에까지 빠져있었다고 하니… 통상적으로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날개에 언급된 그의 프로필만으로는 더더욱 말이다. 심지어 봉건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사회 하층민들의 아픔과 가난을 제대로 이해하긴 했을까, 그저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를 통해 “빈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고통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는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 그대로 그의 생애에 걸쳐 철저하게 실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오히려 존경심까지 생겨날 정도로- 바진을 바라보게 되었다.

 중국 문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차가운 밤(寒夜)』을 비롯해 지금까지 만나 본 몇 몇 작품을 통해서 중국의 문학도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느낌에, 중국 문학의 상징이라는 ‘바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됨으로써 더더욱 큰 호기심까지 생기게 된다. 앞으로 바진을 비롯해 루쉰, 라오서 등의 작가의 작품을 차례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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