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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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이유가, 지금의 나라면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현실적으로 이루기 힘든 소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루기 위한 것이랄까. 그래서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된다. 당연히 가슴 아픈 이야기나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도 가급적 피하게 된다. 이런 나의 성향으로 본다면,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는 평소의 나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선택하게 되었고, 후다닥 읽어냈고, 놀랍게도-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거의 없는 평소의 나에게는 당연히 놀라운! 일이다-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더 읽었다. 뭔가를 콕! 찍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평소의 나와는 다른 나를 이끌어내는 그런 신기한 힘을 가진 소설이라는 사실은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어느 정도의 비현실적인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아내와 살아가야하기에 전혀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때로는 부끄러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삶을 살아가던 마흔여덟 살의 이 남자가 이혼을 하고, 늦게나마 자신이 원하던 삶,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된다. 그 새로운 삶은 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집을 하나씩 고쳐가면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가꾸어나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과 마주하면서 또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또 변해가는 순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단 한 줄로 후려쳐서 이야기한다면, 40대 후반의 이혼남의 홀로서기, 혹은 새로운 삶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흔히 소설에서 기대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사건 사고들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 기대감으로 바라본다면 이 책을 결코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읽고, 게을러서 한 줄의 소감도 남기기 쉽지 않은 내가 이렇게 끼적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있다. 책의 분량과는 상관없이 자꾸만 읽다가 멈춰 서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 그런 책이었다.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또 지금을 살펴보게 만들고, 또 앞으로의 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냥 그렇게 내던져버리고 니가 알아서 생각해보라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만이 가지는 공간속으로 들어와 잠시 쉬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오래된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그런 편안하고 힐링이 되는 듯한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천천히 읽어나가게 만들면서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아깝게 느껴지는 묘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두 번이나 읽고, 또 이렇게 표현되지 않는 글들로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겨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군가 옆에서 토닥토닥 해줘야 위로가 되는 것-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된 위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 아닌가 생각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늘어놓는 이런저런 좋은 말들을 듣는 것 보다, 그냥 가만히 앉아 그저 누군가의 삶을 읽어나가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위로를 위한 위로가 아닌 듯, 특별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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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5-0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르코‘님의 리뷰 글을 읽으면서, ˝소설은 인간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제임스 미치너‘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아나르코 2018-05-04 19:5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제임스 미치너‘의 글을 읽고 싶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곳에서 그 이름을 듣게 되네요... ㅋ 필리아님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