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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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일본추리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1992년 작품입니다. 국내엔 올 해 소개되었습니다. 추리라기 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운 소설입니다.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의 별명)"의 다른 소설처럼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한 스토리를 자랑합니다. 단, 199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과 좀 다른 배경들이 있어 현실적인 느낌은 다소 약해졌습니다. 가령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공중전화를 사용하지요. 지금 같이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었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모에 부자인 아가씨 세키누마 게이코가 스포츠용 산탄총을 들고 전 애인이었던 고쿠부 신스케의 결혼식장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신스케는 머리는 좋으나 이기적인 고시생으로 의도적으로 게이코에게 접근해 동거하다 고시를 패스한 후 더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차 버린 악당입니다. 게이코는 납으로 총신의 가운데를 막아 산탄이 터져 총을 쏜 사람이 죽게 개조한 후 총을 케이스에 숨겨 결혼식장으로 갑니다. 신스케의 앞에서 자살할 생각입니다.
 이윽고 식은 무르익고 기회를 포착한 게이코가 식장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신스케의 여동생 노리코와 마주칩니다. 오빠의 비열함에 괴로워하던 착한 아가씨 노리코는 오빠 대신 자신을 쏘라고 하고 노리코의 진심어린 말에 신스케를 응징하는 일이 부질 없는 짓임을 깨달은 게이코는 마음을 돌려 총을 도로 케이스에 집어 넣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노리코에게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고 게이코는 총을 들고 집으로 갑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게이코,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낚시점에서 일하는 중년 남자 오리구치가 게이코를 습격해 아파트에 묶어 두고 총과 자동차를 빼앗아 어딘가로 향합니다. 오리구치는 게이코가 총을 개조하기 위한 납을 얻기 위해 가게에 들렀다가 알게 된 사이입니다. 오리구치는 게이코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다. 그저 총이 있다는 걸 알고 총과 차를 빌리기로 한 것뿐.
 오리구치는 20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아 온 사람입니다. 직장에선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착하고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그런 오리구치가 이런 과격한 행동을 한 이유는,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들을 응징하기 위해섭니다. 요시히코와 마스미라는 인간 말종 연인이 그저 재미로 두 사람을 쏘아 죽이고 경찰에 잡혔습니다만 재판은 점점 형을 경감하는 쪽으로 진행됩니다. 분노한 오리구치는 직접 두 사람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한 편, 오리구치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직장동료 청년 슈지는 왠지 평소와 다른 오리구치 선배의 표정과 행동에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신경을 쓰다 오리구치가 게이코의 집으로 간 걸 알고 게이코의 아파트로 찾아갑니다. 마침 그 시각, 노리코도 아파트에 당도해 대답 없는 게이코를 찾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묶여 있던 게이코를 발견하고 오리구치가 총과 자동차를 빼앗아 달아난 걸 알게 됩니다. 슈지는 오리구치가 어디로 향하는 지 알고 있습니다. 게이코는 총이 개조돼 쏜 사람이 오히려 죽게 된다는 걸 알려주고 슈지에게 오리구치를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임감을 느껴 함께 가기를 고집하는 노리코와 슈지는 오리구치보다 앞서 도착하여 그를 말리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려갑니다.
 
 이 소설은 구성의 절묘함으로 인해 매 페이지 스릴 넘치지만 전체적으론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소설에 비해 다소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우연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1992년 당시엔 미야베 미유키가 아직 작가로서 무르익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늘 재능 없음을 비관하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아무튼 재미있습니다. 역시 그녀의 다른 소설들처럼 묵직한 여운도 남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덧붙임: 번역 중 "~겠어서"는 참 거슬립니다. "~겠기에"로 고쳐 써야 맞겠죠. 번역자의 고질적인 일본투 번역인데 다음부터 고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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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영재가 진짜 영재 - 영재아 부모를 위한 지침서
제임스 딜라일 지음, 이신동 옮김 / 시그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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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http://blog.empas.com/simsulvo/25058887

최근 우리나라엔 영재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각 교육청마다 영재교육원이 운영되고 있고 대학교 부설 영재교육원도 많아졌습니다. 유아기부터 영재로 키우기 위한 온갖 비법들이 난무하기도 하죠.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가 영재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뜻밖에 영재아의 부모가 된 제 입장에선 쓴웃음이 납니다. 사람들이 영재아 키우기의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개 영재아의 부모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영재와 수재를 같은 단어로 오해합니다. 영재성은 탁월함이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은 영재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수재들을 위한 엘리트 육성시스템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아이가 영재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부모들, 아이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키워줘야 할 지 고민하는 부모들, 독특하고 민감한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들, 머리는 좋은데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부모들, 자신의 자녀가 영재가 아니라도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100% 키워주고 싶은 부모들,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이 책은 자신도 영재였으며 영재아를 키운 부모였고 30여 년간 영재아들을 직접 가르치고 연구해 온 미국 영재교육의 대가 제임스 딜라일 교수의 책입니다. 영재아들의 부모들을 독자로 생각하고 쓴 책이라 실제 영재아의 부모라면 매우 공감할 수 있는 주장과 사례를 들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내용은 어떤 아이가 영재아인지, 왜 영재아들이 학교 생활을 잘 해내지 못하는지, 그런 영재아들의 잠재력을 100%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영재아들에게 가지는 오해와 편견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장감 있는 사례와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해결책들이 매우 신뢰감을 줍니다.
 내용의 핵심만 얘기하면 "장애아가 자신에게 맞는 특수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영재아들도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재는 결코 엘리트가 아닙니다. 영재라고 반드시 세상을 바꾸는 것도 바꿔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영재면 누구나 리더가 되야 하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냥 영재도 사람일 뿐입니다. 일반인들보다 과도한 지적,정서적, 육체적,도덕적 민감성 때문에 힘들어 하고 상처받기 쉬운 약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영재"라는 단어를 몽땅 "아동"이라고 바꿔도 별 문제 없습니다.
 현대사회의 지나친 경쟁 분위기에 매몰돼 아이들의 진정한 가치와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든 어른들께 권하고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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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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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뭘 까맣게 잊어 버리거나 아주 중요한 일을 깜박하거나 갑자기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합니다. 처음 와 본 장소인데 언젠가 와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심한 경우 전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 당황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기억이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자꾸만 떠올라 몹시 괴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란 왜 이렇게 불완전할까요?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L. 샥터 박사의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은 기억에 대한 가장 최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샥터 박사는 기억이 때로 실패하는 여러 가지 경우를 개념화하는 통합된 틀을 제공합니다. 샥터 박사는 기억의 오류를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소멸, 정신없음,막힘,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소멸(transience)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거나 손실되는 것을 뜻합니다. 기억의 가장 기본적인 특질이자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은 주의와 기억 간의 접촉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건망증 같은 걸 말합니다. 보통 다른 쟁점이나 관심에 몰두해서, 기억해야 하지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막힘(blocking)은 어떤 정보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하지만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닌데 원하는 순간 인출이 안 되는 문제죠. 혀끝에서 맴돈다고 해서 설단(舌端)현상이라 불리는 경우입니다.
 오귀인(misattribution)은 환상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잘못 기억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데쟈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어떤 사람이 과거 경험을 상기하려고 할 때 유도질문이나 추가 설명, 암시에 영향 받아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걸 말합니다. 경찰의 유도심문이나 목격자 증언의 실패 사례가 그 예입니다.
 편향(bias)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의 기억으로 과거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완전히 다시 쓰는 경우는 역사의 문제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속성(persistence)은 마음에서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원하는 고통스러운 정보나 사건들이 반복해서 자꾸 떠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험 누구나 있을 겁니다.
 샥터 박사는 이런 일곱 가지 기억의 오류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는 인간 마음의 바람직하고 적응적인 특징들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응해 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불편한 이런 기억의 오류들이 없다면 오히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샥터 박사는 더 나아가 이런 기억의 오류들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인용할 순 없지만 상당히 실질적이고 유용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문 서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 책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좀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기는 해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저질러지는 사회의 많은 잘못된 관행들을 보다보면 스릴러를 읽는 기분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목격자 증언이 경우에 따라 얼마나 부정확한 것이며 그 결과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기억의 덧없음과 함께 인간의 존엄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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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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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1859년 출간된 책입니다. 당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자유와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원리를 가장 명료하게 밝힌 명저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논문 혹은 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적은 분량과 쉬운 문장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자유론>의 핵심주장은 '자유의 기본원칙one very simple principle'이라 부르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밀은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의 제목인 '다양한 시선'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죠. 밀은 옳은 의견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잘못된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억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이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개별성이 꽃필수 없고 인간은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결과와 관계없이 각개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자기 삶의 방식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150 여년 전 출간된 이 책이 던진 문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실하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밀이 책을 쓸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개별성이 억압 당하고 있었고 대중여론과 대중교육에 의해 개인의 의사가 좌우되는 몰개성적인 경향이 강했다고 합니다. 밀은 그런 시대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죠. 인터넷의 발달이 개인의 의사표현을 더욱 자유롭게 만든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다수라는 이름으로 혹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마녀사냥식 사적(私的) 재판행위까지 일삼는 폐단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처음 태동되던 시기의 혼란을 보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당시의 시대정신에 충실하여 서구문명우월론에 입각한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바탕에 깔고 이론을 펼친 점은 유감이지만 그 밖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살아있는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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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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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음료수에 청산가리를 주입하여 불특정 피해자를 만드는 연쇄살인사건이 네 차례 발생합니다. 마지막 희생자는 67세 후루야 아키토시.
 굴지의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 그룹 홍보실 소속 사보 편집부원인 스기무라는 요즘 약간 골치 아픈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사무실 편집보조 시간급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겐다라는 아가씨 때문입니다. 겐다는 업무 능력도 형편 없지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걸핏하면 부원들에게 화를 내고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해고하려 했더니 편집부장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모두 고소하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다 회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회장실로 겐다의 투서가 전달되고 스기무라가 회장의 부름을 받아 무난한 처리를 지시받습니다.
 사실 스기무라는 이마다 회장의 사위입니다. 스기무라는 가만히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착실하고 선량한 이 남자는 이마다 콘체른 회장의 사위라는 것만 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시골 출신의 평범한 스기무라가 이마다 회장의 딸 나호코와 결혼한 건 욕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기무라는 겐다의 전 직장을 찾아갑니다. 역시 그 곳에서도 겐다가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 때문에 그녀를 조사했다는 사설탐정 기타미를 소개 받습니다. 스기무라는 기타미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미리 와 있던 미치카란 여고생과 스쳐지납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던 스기무라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던 미치카가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구해줍니다.미치카는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독극물 살인의 마지막 희생자 후루야 아키토시의 손녀였습니다.미치카는 정의와 복수를 원합니다. 오지랖 넓은 스기무라는 미치카에게 할아버지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하고 도와주기로 약속까지 해 버립니다.
 이제 남의 어려움을 두고 보지 못하는 착한 남자 스기무라는 골치 덩어리 겐다를 무난하게 무마하고 미치카 할아버지의 살인범을 찾는, 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현재 일본 최고의 대중작가라고 합니다. 1960년생인 이 여성작가는 아직 미혼이라고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속기사로 사무실에서 일하다 어느 날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야베 월드'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소설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작가입니다. 매우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하며 넓고 깊은 사회의식을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입니다. 주로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소재를 다루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독'은 스기무라라는 독특한 탐정 아닌 탐정이 등장하는 휴먼미스터리 소설 '누군가'에 이어지는 연작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기무라는 매우 심심한 사내입니다. 굴지 그룹 회장 딸과 결혼했다는 것만 빼면 뭐 하나 특출난 데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약간 사람이 좀 모자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남자입니다. 괜히 모른 척 해도 될 일에 마음이 약해져 자기도 몰래 손을 내밀고 마는 사람입니다.
 사실 스기무라는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아직 남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캐릭터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렇게 겉과 속이 한결 같은 남자는 없습니다. 하긴 스기무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다 착합니다. 심지어 범인들도 알고 보면 착한 사람들이죠. 일본인들은 다 이렇게 착한가 싶기도 하고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착한 사람들만 만들어내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아무튼 추리소설 속 캐릭터치곤 유래 없이 평범하고 착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반면, 미야베가 다루는 세계는 결코 온화하지 않습니다. 착하지만 한 순간에 독을 품은 악인으로 변해 버리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세태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댑니다. 가까운 나라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수준 높은 문학에 뒤지지 않는 예리한 시선과 의식, 흥미진진한 사건전개로 재미와 교훈을 함께 주는 좋은 책입니다.
 
덧붙임) "~겠어서"  같은 일본어 번역투가 거슬리지만 책의 판형이나 번역이 매우 깔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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