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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뭘 까맣게 잊어 버리거나 아주 중요한 일을 깜박하거나 갑자기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합니다. 처음 와 본 장소인데 언젠가 와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심한 경우 전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 당황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기억이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자꾸만 떠올라 몹시 괴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란 왜 이렇게 불완전할까요?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L. 샥터 박사의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은 기억에 대한 가장 최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샥터 박사는 기억이 때로 실패하는 여러 가지 경우를 개념화하는 통합된 틀을 제공합니다. 샥터 박사는 기억의 오류를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소멸, 정신없음,막힘,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소멸(transience)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거나 손실되는 것을 뜻합니다. 기억의 가장 기본적인 특질이자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은 주의와 기억 간의 접촉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건망증 같은 걸 말합니다. 보통 다른 쟁점이나 관심에 몰두해서, 기억해야 하지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막힘(blocking)은 어떤 정보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하지만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닌데 원하는 순간 인출이 안 되는 문제죠. 혀끝에서 맴돈다고 해서 설단(舌端)현상이라 불리는 경우입니다.
오귀인(misattribution)은 환상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잘못 기억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데쟈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어떤 사람이 과거 경험을 상기하려고 할 때 유도질문이나 추가 설명, 암시에 영향 받아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걸 말합니다. 경찰의 유도심문이나 목격자 증언의 실패 사례가 그 예입니다.
편향(bias)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의 기억으로 과거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완전히 다시 쓰는 경우는 역사의 문제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속성(persistence)은 마음에서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원하는 고통스러운 정보나 사건들이 반복해서 자꾸 떠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험 누구나 있을 겁니다.
샥터 박사는 이런 일곱 가지 기억의 오류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는 인간 마음의 바람직하고 적응적인 특징들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응해 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불편한 이런 기억의 오류들이 없다면 오히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샥터 박사는 더 나아가 이런 기억의 오류들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인용할 순 없지만 상당히 실질적이고 유용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문 서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 책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좀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기는 해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저질러지는 사회의 많은 잘못된 관행들을 보다보면 스릴러를 읽는 기분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목격자 증언이 경우에 따라 얼마나 부정확한 것이며 그 결과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기억의 덧없음과 함께 인간의 존엄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