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편의점 음료수에 청산가리를 주입하여 불특정 피해자를 만드는 연쇄살인사건이 네 차례 발생합니다. 마지막 희생자는 67세 후루야 아키토시.
 굴지의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 그룹 홍보실 소속 사보 편집부원인 스기무라는 요즘 약간 골치 아픈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사무실 편집보조 시간급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겐다라는 아가씨 때문입니다. 겐다는 업무 능력도 형편 없지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걸핏하면 부원들에게 화를 내고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해고하려 했더니 편집부장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모두 고소하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다 회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회장실로 겐다의 투서가 전달되고 스기무라가 회장의 부름을 받아 무난한 처리를 지시받습니다.
 사실 스기무라는 이마다 회장의 사위입니다. 스기무라는 가만히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착실하고 선량한 이 남자는 이마다 콘체른 회장의 사위라는 것만 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시골 출신의 평범한 스기무라가 이마다 회장의 딸 나호코와 결혼한 건 욕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기무라는 겐다의 전 직장을 찾아갑니다. 역시 그 곳에서도 겐다가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 때문에 그녀를 조사했다는 사설탐정 기타미를 소개 받습니다. 스기무라는 기타미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미리 와 있던 미치카란 여고생과 스쳐지납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던 스기무라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던 미치카가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구해줍니다.미치카는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독극물 살인의 마지막 희생자 후루야 아키토시의 손녀였습니다.미치카는 정의와 복수를 원합니다. 오지랖 넓은 스기무라는 미치카에게 할아버지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하고 도와주기로 약속까지 해 버립니다.
 이제 남의 어려움을 두고 보지 못하는 착한 남자 스기무라는 골치 덩어리 겐다를 무난하게 무마하고 미치카 할아버지의 살인범을 찾는, 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현재 일본 최고의 대중작가라고 합니다. 1960년생인 이 여성작가는 아직 미혼이라고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속기사로 사무실에서 일하다 어느 날 추리소설 작가가 되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야베 월드'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소설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작가입니다. 매우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하며 넓고 깊은 사회의식을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입니다. 주로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소재를 다루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독'은 스기무라라는 독특한 탐정 아닌 탐정이 등장하는 휴먼미스터리 소설 '누군가'에 이어지는 연작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기무라는 매우 심심한 사내입니다. 굴지 그룹 회장 딸과 결혼했다는 것만 빼면 뭐 하나 특출난 데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약간 사람이 좀 모자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남자입니다. 괜히 모른 척 해도 될 일에 마음이 약해져 자기도 몰래 손을 내밀고 마는 사람입니다.
 사실 스기무라는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아직 남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캐릭터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렇게 겉과 속이 한결 같은 남자는 없습니다. 하긴 스기무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다 착합니다. 심지어 범인들도 알고 보면 착한 사람들이죠. 일본인들은 다 이렇게 착한가 싶기도 하고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착한 사람들만 만들어내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아무튼 추리소설 속 캐릭터치곤 유래 없이 평범하고 착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반면, 미야베가 다루는 세계는 결코 온화하지 않습니다. 착하지만 한 순간에 독을 품은 악인으로 변해 버리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세태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댑니다. 가까운 나라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수준 높은 문학에 뒤지지 않는 예리한 시선과 의식, 흥미진진한 사건전개로 재미와 교훈을 함께 주는 좋은 책입니다.
 
덧붙임) "~겠어서"  같은 일본어 번역투가 거슬리지만 책의 판형이나 번역이 매우 깔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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