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가 사라졌다 - 2003년 제9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20
공지희 지음, 오상 그림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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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딩 5학년 오병구와 강영모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엄마와 사는 병구는 공부도 잘 하고 아빠도 있는 영모가 부러운데 정작 영모는 아빠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아빠의 기대가 너무 커 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구나 영모 아빠는 자주 영모를 때립니다. 밤공기가 차가웠던 11월의 어느 날 밤, 영모가 병구를 찾아옵니다. 영모는 아빠에게 맞고 도망나왔다며 상처를 보여 줍니다. 영모는 아빠를 피해 어디론가로 사라지겠다고 합니다. 병구는 영모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집으로 돌려 보냅니다.
 다음 날, 영모가 학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영모 엄마가 찾아 와 영모가 어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병구는 영모가 갈 만한 곳을 생각해 보다가 평소 영모가 아파트 지하실에 숨어 살던 도둑고양이 담이를 예뻐하던 걸 떠올립니다. 밤에 지하실로 내려 간 병구는 도둑고양이 담이를 만나는데 놀랍게도 담이가 말을 합니다. 담이는 영모가 간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구는 담이를 따라 처음 본 높고 큰 담을 넘습니다.
 담 너머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담 이쪽은 저 너머와 달리 화사한 봄입니다. 아파트 숲이 아닌 진짜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병구는 나무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는데 작은 통나무집을 발견합니다. 통나무집엔 할아버지와 어린 소녀 로아가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바깥 세상에서 큰 상처를 받고 이 곳 "라온제나"로 왔다고 합니다. "라온제나"란 '즐거운 나'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입니다. 병구는 행복한 표정의 두 사람과 더 있고 싶었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갑니다. 담을 넘자 놀랍게도 시간은 담을 넘던 그 시간에 멈춰있습니다.
 병구는 매일 밤 몰래 담을 넘어가 영모를 찾습니다. 한 번 씩 넘을 때마다 계절이 바뀌고 할아버지는 점점 어려지며 로아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병구는 할아버지가 곧 영모임을 알게 되지만 영모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병구는 영모를 설득해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매일 밤 담을 넘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위협적이고 권위적이기보다는 참을성이 있고 관대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능력에 대한 확신을 증대시켜야 하고 마침내 어린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위를 갖고 아버지의 권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 보니 정말 어려운 일인 줄 알겠습니다. 저도 영모 아빠처럼 과도하게 기대하고 제 뜻을 강요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관대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착한 아이들을 망치는 건 언제나 악한 어른들입니다. 아이 아빠로, 어른으로 많이 반성하며 읽었습니다. 좀 더 좋은 아빠, 어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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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가르쳐주기 싫은 주식투자법
브라운스톤 지음 / 오픈마인드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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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작년만 해도 주식투자 열풍이 대단했었죠. 여러 가지 악재가 도사리고 있지만 국내 주식투자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겪어 왔던 것처럼 고도산업사회가 되면 갈곳을 못 찾은 잉여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니까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건전한 투자 풍조만 갖춘다면 주식시장의 활성화는 분명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고 투자자에게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실전투자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외국인과 기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실정이죠. 마치 누가 보고 있기라도 하듯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르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당장 개인의 손해도 손해지만 건전한 투자문화를 저해하는 나쁜 결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건전한 소액투자자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가 아니면 궁극적으로 주식시장은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개미들이 손해를 많이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주식으로 대박을 노리기 때문입니다. 은행이자 이상의 수익이 현실적인 목표인데 목표수익을 지나치게 높여 잡기 때문입니다. 정보와 자금이 부족한 개인이 훨씬 더 강한 상대인 외국인과 기관을 이겨 보겠다는 시도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시중에 주식투자 지침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인생역전을 꿈꾸며 서점을 전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팔린다는 책 수 십 권을 읽었습니다. 소액이지만 나름대로 실전으로 배운 이론을 테스트 해보기도 했죠. 결과는.... 번번히 깡통이었습니다. 반짝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가 누적되더군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만났습니다. 처음 자극적인 책 제목 때문에 내용도 보지 않고 불신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이 책은 흔히 "가치투자" 혹은 "역발상투자"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브라운스톤"은 저자의 인터넷 필명입니다. 이 양반은 500만원으로 45억을 만들었다 깡통을 차고 자신의 실패를 냉정하게 분석해 다시 35억원의 재산을 만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자는 바람직한 투자습관으로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그의 투자방법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주식투자법은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타이밍이 아니라 종목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둘째,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셋째, 타고난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대로 투자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인간은 7가지 두뇌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상당한 내공으로 7가지 두뇌결함을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분석,예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근시안적이고 둘째, 손실공포감이 크고 셋째, 무리짓기를 좋아하고 넷째, 도사를 믿기 쉽고 다섯째,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착각하고. 여섯째,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마지막으로, 최신정보에 과잉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능을 따라가는 투자는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두뇌결함을 극복하고 승자가 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저자가 내세우는 투자법은 "거북이 투자법"입니다. 거북이 투자법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우량종목을 가치보다 싸게 사서 장기투자 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이없이 간단해 보이는 이 원칙은 그러나 실천하긴 쉽지 않습니다. 본능이 늘 우리를 방해하니까요. 저자는 자신의 실패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가며 거북이 투자법을 완성해간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매우 평이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인생의 경륜이 묻어납니다. 공허한 원리원칙만 나열하고 있는 여타 책과 달리 사례가 구체적이고 실전에 적용하기 좋습니다. 그냥 교양서로 읽어도 좋을 만큼 내용도 풍부하고 건전합니다.
 주식투자를 하고 계신 분, 주식투자를 시작하려고 하시는 분, 꼭 주식이 아니라도 좀 더 여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분들께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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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호의 모험 - 황금양피를 찾아 떠난 그리스 신화의 영웅 55인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지음, 김원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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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아손이 그리스 영웅들과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 모험이야기는 특히 인간적입니다. 이아손은 여타 다른 영웅과 달리 비열한 면을 가진 남자입니다. 그런 이아손의 비열함에 희생되는 여인 메데이아가 있죠.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마녀로 취급받는 인물입니다만 매우 부당한 면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리스 신화에선 여자들이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세우스를 도와 미궁의 비밀을 가르쳐 준 아리아드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한 엘렉트라 등 그리스 신화 속 여성들은 어리석고 유혹에 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들 또한 마찬가지죠. 아테네 여신을 빼곤 대부분 편협되고 질투심 강한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그 정점에 제우스 신의 정실부인인 헤라가 있습니다. 이아손의 후원자가 바로 헤라라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은 신탁을 범하여 모험의 세계로 뛰어듭니다. 그리스의 왕 크레테우스가 죽자 펠리아스는 신탁소에 가서 자신과 쌍둥이 형제 중 누가 왕위를 물려받을지 묻습니다. 신탁은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겠지만 외짝 신발을 신은 자를 조심하라는 것. 그런데 이아손이 어느날 펠리아스의 궁전에 초대받아 가는 길에 공교롭게도 한쪽 신발을 진창에 빠드리고 말죠. 이아손이 외짝 신발을 신고 나타나자 펠리아스왕은 이에 대해 추궁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이아손이 황금양피를 찾아오겠다고 장담하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인간이란 신들의 장난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입니다. 이아손도 마찬가지입니다.이아손은 신의 도움을 받아 아르고라는 배를 만들고 그리스의 영웅 55명을 모아 멀리 콜키스에 있다는 황금양털을 찾아 떠납니다. 온갖 위기를 신들의 도움과 영웅들의 용기와 기지로 이겨 내고 목적지에 도착한 이아손 일행은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콜키스의 왕 아이에스테는 이아손에게 코에서 불을 뿜는 청동황소 두 마리에 멍에를 씌워 밭을 갈고 그 이랑에 뱀의 이빨을 뿌려 나오는 병사를 물리치면 황금양털을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한 임무였습니다.
 이번에도 헤라 여신이 괴로워하는 이아손에게 도움을 줍니다. 아이에스테왕의 둘째 딸 메데이아에게 큐피트의 화살을 쏘아 이아손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신의 도움을 받은 이아손은 노골적으로 메데이아를 유혹합니다. 이아손에 대한 열정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마법을 이용해 임무를 완수하고 황금양털을 훔쳐 함께 달아납니다. 그 정도였다면 좋았을 걸, 쫓아 온 오빠를 속여 함정에 빠뜨리고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그리스로 데려가 정실부인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메데이아는 사악한 마녀가 됩니다.
 이 책은 기원전 300년 무렵에 태어난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인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가 쓴 책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는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부탁을 받아 황태자를 교육시켰을 만큼 높은 신망을 받은 학자였다고 합니다. 지중해를 무대로 활략한 그리스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그리스 신화가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사전에 그리스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읽기 좀 피곤할 수도 있지만 줄거리 요약 수준의 다른 이야기와 달리 자세한 세부 묘사가 흥미로운 책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황금양털을 찾아 그리스로 돌아 온 이후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배신하는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책이 싱겁게 끝나 버려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렇긴 해도 그리스 신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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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게임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5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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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게임은 엔더 위긴 시리즈의 첫번째권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작가 올슨 스콧 카드의 작품으로 1986년 그 해 최고의 SF에 주는 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세계 SF팬이라면 누구나 최고로 꼽는 걸작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엔더의 게임을 보면 해리포터 시리즈나 영화 매트릭스,심지어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 조차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는 버거라는 외계종족으로부터 두 번의 침공을 받은 후 거의 멸망할 뻔 하는 위기를 겪은 후 지구 방위에 총력을 기울이고 어린 영웅을 훈련하여 외계 종족 버거와의 전쟁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지휘관으로 가장 가능성 있다는 평가를 얻은 천재소년 엔더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전투학교에 보내집니다.

당시 지구는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둘 수 없게 법률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엔더는 정부가 허용한 셋째입니다. 정부가 처음 지구를 구할 지휘관 후보로 생각했던 아이는 엔더의 형 피터였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터가 적합하지 않다고 본 정부는 피터의 여동생 발렌타인에게 주목하지만 발렌타인은 반대로 너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엔더는 셋째로 태어나게 된 것이고 여섯살의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게 됩니다.

자신을 질투하는 잔인하고 포악한 형 피터의 괴롭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기뻤던 엔더는 그러나 전투학교에서도 역시 철저하게 소외당합니다. 엔더는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에게 대항합니다. 여섯 살의 나이지만 엔더는 '지금 완전히 이겨야 다시는 시비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싸움의 규칙을 스스로 깨우칩니다. 그리고 그런 엔더의 성숙한 생각은 엔더를 비밀리에 감시하고 지켜보는 정부를 흡족하게 합니다. 마음은 순수하지만 철저하게 승리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진 지휘관이 그들에게는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른들은 훈련이라는 미명하에 끊임없이 조작된 게임을 건네고, 어린 엔더는 그 게임을 풀어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엔더는 서서히 버거를 살육하기 위한 인간병기가 되어 갑니다.

엔더에게 있어서 모든 의사 통로 경로는 왜곡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고 그도 그의 진실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엔더의 동태에 대해 보고된 자료는 오히려 더 큰 난이도의 게임으로 엔더에게 매번 되돌아옵니다. 엔더는 언젠가 있을 실제 전쟁을 위해 지금 연습하는 거라고 믿으며 매번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합니다.

엔더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모든 게임의 승리자가 되지만 비인간적인 훈련은 그를 인간한계에까지 몰아갑니다. 극도의 증오심으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게임에 임하는 엔더. 하지만 거기엔 무시무시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반전은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아껴 두겠습니다.

이 책이 쓰여질 당시에는 인터넷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인데 작가는 가상세계에 대한 개념을 놀라우리만치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엔더가 여섯살의 어린 나이에 사관생도가 되어 훈련을 받는 과정은 매우 정밀하면서도 어둡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엔더에겐 정부의 의도적인 난관이 수시로 부여되며 엔더는 매번 훌륭하게 그 어려움들을 극복합니다. 그런 과정은 마치 최고 난이도의 게임이론이나 경영이론을 보는 것 같은 스릴과 박진감이 있습니다. 한 편으론 엔더의 처지나 심리상태를 보며 깊은 연민과 슬픔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는 인류의 운명을 한 몸에 짊어진 너무나 외롭고 어린 영웅입니다. 읽는 내내 엔더의 고독에 가슴 아팠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놀라우며 이후의 시리즈에서의 이야기의 확장은 더욱 큰 감탄과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쩌면 이 책은 SF라기보다 성장소설이며 구도소설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올슨 스콧 카드는 SF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떤 순수문학보다도 깊이 있고 스케일 큰 이야기를 멋지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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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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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 이 책이 1954년 발간되었으니까 영화 내용은 소설과 많이 다르겠지요. 벌써 두 차례 영화화 되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 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다시 윌 스미스 주연의 블록버스터로 거듭났다고 하던데 내용이 얼마나 달라졌을 지 궁금합니다. 여기는 책리뷰 쓰는 곳이니 소설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무대는 1976년 미국의 한 도시입니다. 로버트 네빌이란 중년의 남자가 홀로 좀비들과 맞서 힘겨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가 지면 네빌은 집의 나무로 단단히 막아 둔 창과 문을 단단히 잠그고 좀비들의 공격을 밤새 견딜 준비를 합니다. 사방에 마늘과 십자가와 거울을 걸어둡니다. 최근엔 좀비들이 돌을 던져 거울을 깨고 십자가에도 면역을 보이고 있어 특히 마늘에 신경을 씁니다. 오래 된 마늘은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 갈아주어야 합니다.
 투쟁은 일 년 전 핵전쟁이 끝난 후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이 전쟁은 이겼지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진 사람들은 죽은 후 다시 무덤에서 살아나 좀비가 되었습니다. 아내 버지니아와 딸 케이시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네빌의 집에도 전염병은 예외없이 스며듭니다. 딸을 잃고 아내를 잃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한데 더 끔찍한 건 죽었던 아내가 좀비가 되어 돌아온 일입니다. 네빌은 손수 아내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네빌은 병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되어버린 가운데 네빌은 홀로 살아남아 힘겹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죠.
 좀비는 밤에만 활동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좀비는 햇볕에 노출되면 죽습니다. 따라서 낮동안의 네빌은 자유롭고 안전합니다. 네빌은 나무 말뚝을 만들어 낮동안 좀비들을 찾아내 죽이고 불에 태웁니다. 매일 그렇게 좀비들을 처치하지만 밤만 되면 늘 일정한 수의 좀비들이 집을 둘러싸고 돌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네빌의 신선한 피를 빨기 위해 몰려듭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좀비들이 머리가 좋지 않아 별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네빌은 그런 지옥 속에서 귀마개를 하고 술에 절어 잠들길 반복합니다.
 네빌은 좀비들을 연구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 와 연구합니다. 실험도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좀비의 원인과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네빌은 들판으로 나갔다가 낮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루스도 네빌처럼 병에 걸리지 않았고 남편과 함께 좀비들과 싸우며 지내다 남편이 죽어서 도망다니다 네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한 명 씩 남은 남녀라니! 한데 이상하게 네빌은 루스가 의심스럽습니다. 네빌은 루스를 의심하는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그 동안의 경험이 그녀를 믿을 수 없게 만듭니다. 네빌은 루스의 혈액을 검사하려 합니다. 그러자 루스가 네빌의 머리를 내려치고 달아납니다. 곧 낮에도 돌아다니는 새로운 좀비족이 네빌의 집을 에워쌉니다.
 
 사실 지금 읽으면 별로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좀비라는 존재가 영화를 통해 이미 익숙하기 때문인지 그다지 무섭지 않습니다. 스토리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사건에 치중하기 보다는 네빌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소설입니다. 모든 사람이 괴물로 변해버린 세상에 홀로 정상인 사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루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고독한 사나이, 결국 정상은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에 최후로 남겨진 정상인, 작가는 네빌의 심리묘사를 통해 당시 핵전쟁의 두려움에 떨던 냉전시대 사람들의 불안을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라기엔 좀 SF적이고 SF라기엔 좀 공포소설스럽지만 좀비를 다룬 소설 중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작품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이라면 책도 함께 읽고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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