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 이 책이 1954년 발간되었으니까 영화 내용은 소설과 많이 다르겠지요. 벌써 두 차례 영화화 되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 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다시 윌 스미스 주연의 블록버스터로 거듭났다고 하던데 내용이 얼마나 달라졌을 지 궁금합니다. 여기는 책리뷰 쓰는 곳이니 소설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무대는 1976년 미국의 한 도시입니다. 로버트 네빌이란 중년의 남자가 홀로 좀비들과 맞서 힘겨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가 지면 네빌은 집의 나무로 단단히 막아 둔 창과 문을 단단히 잠그고 좀비들의 공격을 밤새 견딜 준비를 합니다. 사방에 마늘과 십자가와 거울을 걸어둡니다. 최근엔 좀비들이 돌을 던져 거울을 깨고 십자가에도 면역을 보이고 있어 특히 마늘에 신경을 씁니다. 오래 된 마늘은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 갈아주어야 합니다. 투쟁은 일 년 전 핵전쟁이 끝난 후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이 전쟁은 이겼지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진 사람들은 죽은 후 다시 무덤에서 살아나 좀비가 되었습니다. 아내 버지니아와 딸 케이시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네빌의 집에도 전염병은 예외없이 스며듭니다. 딸을 잃고 아내를 잃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한데 더 끔찍한 건 죽었던 아내가 좀비가 되어 돌아온 일입니다. 네빌은 손수 아내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네빌은 병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되어버린 가운데 네빌은 홀로 살아남아 힘겹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죠. 좀비는 밤에만 활동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좀비는 햇볕에 노출되면 죽습니다. 따라서 낮동안의 네빌은 자유롭고 안전합니다. 네빌은 나무 말뚝을 만들어 낮동안 좀비들을 찾아내 죽이고 불에 태웁니다. 매일 그렇게 좀비들을 처치하지만 밤만 되면 늘 일정한 수의 좀비들이 집을 둘러싸고 돌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네빌의 신선한 피를 빨기 위해 몰려듭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좀비들이 머리가 좋지 않아 별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네빌은 그런 지옥 속에서 귀마개를 하고 술에 절어 잠들길 반복합니다. 네빌은 좀비들을 연구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 와 연구합니다. 실험도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좀비의 원인과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네빌은 들판으로 나갔다가 낮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루스도 네빌처럼 병에 걸리지 않았고 남편과 함께 좀비들과 싸우며 지내다 남편이 죽어서 도망다니다 네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한 명 씩 남은 남녀라니! 한데 이상하게 네빌은 루스가 의심스럽습니다. 네빌은 루스를 의심하는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그 동안의 경험이 그녀를 믿을 수 없게 만듭니다. 네빌은 루스의 혈액을 검사하려 합니다. 그러자 루스가 네빌의 머리를 내려치고 달아납니다. 곧 낮에도 돌아다니는 새로운 좀비족이 네빌의 집을 에워쌉니다. 사실 지금 읽으면 별로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좀비라는 존재가 영화를 통해 이미 익숙하기 때문인지 그다지 무섭지 않습니다. 스토리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사건에 치중하기 보다는 네빌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소설입니다. 모든 사람이 괴물로 변해버린 세상에 홀로 정상인 사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루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고독한 사나이, 결국 정상은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에 최후로 남겨진 정상인, 작가는 네빌의 심리묘사를 통해 당시 핵전쟁의 두려움에 떨던 냉전시대 사람들의 불안을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라기엔 좀 SF적이고 SF라기엔 좀 공포소설스럽지만 좀비를 다룬 소설 중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작품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이라면 책도 함께 읽고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