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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For Whom The Bell Toll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37년 스페인 내전, 파시스트와 싸우는 공화주의자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전쟁에 뛰어듭니다. 미국인 로버트 조던(게리 쿠퍼)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미국에서 대학 강사였던 청년 조던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스페인의 전쟁터로 와 폭파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조던은 협곡의 다리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고 집시 노인 안젤모(블라디미르 소콜로프)와 함께 파시스트 점령지의 산악지대로 잠입합니다. 두 사람은 그 곳에서 집시 게릴라들을 만납니다. 게릴라의 두목 파블로(아킴 타미로프)는 다리가 폭파되면 산으로 도망가야 하는데 말이 부족하다며 거부합니다. 파블로의 애인이자 동지인 집시 여장부 필라(카티나 팍시노우)는 파블로가 겁쟁이가 돼 버렸다며 게릴라들을 규합해 조던을 돕겠다고 나섭니다. 조던은 폭파계획을 진행합니다.
한 편,게릴라의 소굴엔 필라 말고도 열아홉의 어린 아가씨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가 요리를 하며 게릴라를 돕고 있습니다. 그녀는 파시스트의 손에 공화파 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집단 강간을 당해 죽어가다 게릴라들의 손에 구원받아 그들의 일원이 된 것이죠. 마리아는 첫눈에 조던에게 반해 천진무구한 사랑을 표현해 옵니다. 신념을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냉정한 현실상황에 회의하던 조던은 마리아의 사랑에서 투쟁의 의미를 찾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뜻은 과연 무엇을 위해 세상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가라는 뜻이겠지요. 조던은 자유라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들지만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현실을 보며 회의합니다. 그런 점이 영화엔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결국 조던은 죽어가며 마리아를 떠올립니다. 자신은 미국을 위해서도 아니고 스페인을 위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마리아, 즉 인간, 이웃 내 몸과 다름 없는 지구 위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습니다.
이상과 이념과잉의 20세기가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조던의 선택은 좀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이상과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하고 있습니다. 분명 숭고한 면이 있습니다만 이라크에 개입한 미국의 예를 보면 그 순수한 열망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정말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TV로 이 영화를 볼 땐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하는 마리아의 행동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봤다고 처음 본 미국남자를 다짜고짜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마리아는 조던을 졸졸 따라 다니며 노골적인 애정표현을 합니다. “저는 키스하는 법을 잘 몰라요. 잘 알았다면 당신에게 키스를 했을 텐데…. 키스할 때 코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요?” 라고 말하며 키스하고 매달리고 사랑한다고 말하죠. 어릴 땐 참 의아했습니다. 도무지 마리아의 심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워낙 청순한 잉그리드 버그만의 천진한 연기가 있었기에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너무 어려 이해를 못했을 뿐이죠.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사랑이란 그런 거겠죠. 조던은 죽어가며 마리아의 무구한 사랑을 떠올립니다. 어떤 이념 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굳은 얼굴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갈등을 잘 표현한 게리 쿠퍼와 천진한 표정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녀의 사랑을 잘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연기한 조연들의 연기가 좋은 고전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