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홉살 인생 - When I Turned N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오늘은 좀 철 지난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아홉살 인생은 위기철의 소설이 원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 아직 그 책을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 영화가 책하고 약간 다르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래서 그런지 스토리가 듬성듬성 뭔가 이가 빠진 듯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아홉살 어린이들의 사랑과 우정과 인생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생략돼 있어 시대상황이 준 애잔한 얘기가 심도 있게 들어가지 못한 점과 시대고증이 좀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었지만 그건 옥의 티라고 봐야겠지요. 아역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납니다. 특히 조연을 맡은 아이들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진정어린 감정을 표현해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다가 잘 웁니다. 어떨 땐 남들은 다 낄낄 웃고 있는데 혼자 주책스럽게 눈물을 흘려 민망해서 닦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 특히 이런 영화를 보면 예외없이 울보가 됩니다. 우리 어머니는 늘 사나이는 평생 세 번 우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상했던대로 계속해서 낄낄대다가 결국엔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한두번쯤 눈물을 흘릴 순간을 경험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장면은 각자 다를 것도 같습니다. 사람마다 경험과 추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니까요.
누가 아홉살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고 말 할 수 있나요? 아홉살 그 시절 이미 인생이 시작되었던 걸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가요 ? 그 시절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들고 눈물진 인생에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고,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사랑의 감정도 지금보다 못하지 않았고, 세상 전부를 줄 수 있던 우정은 지금보다 훨씬 강하고 숭고했었던 걸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가요?
하지만 역시 과거는 아름다운 것 ! 지난한 어른들 세계를 알고 있었어도 그 시절은 순수하였기에 아름다웠노라 !
이 영화엔 착한 사람들만 나옵니다. 아내를 때리는 나쁜 남편이 잠깐 나오지만 그야말로 잠깐이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네 아저씨도 동네 누나도 모두들 인정 많고 착하기만 합니다. 실제로 가난했던 당시엔 누구나 인정이 많았습니다. 분명 과거의 기억이라서 생기는 착각만은 아닐겁니다. 여기서 또 물질이 풍요로워 진다고 해서 세상이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담임 선생님(안내상)은 제 어린시절 선생님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약간은 위선적이고 권위적이며 무서웠던 선생님들. 하지만 예전 선생님들은 어린이들에 대한 사표로서의 자부심만은 있으셨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백여민(김석)이 서울에서 전학 온 도도한 짝꿍 장우림(이세영)의 고자질에 화가 나서 우림의 구두를 찢고 물에 담근 것 때문에 선생님에게 무자비하게 맞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때리기 전에 여민을 세워 놓고 왼손의 시계를 끌러고 반지를 뽑습니다. 이 장면은 언뜻 보면 선생님의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아이를 때리다가 흥분하여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미리 벗는 겁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 그 당시 선생님은 누구나 다 실제로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 선생님들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노영심이 맡았더군요. 영화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장면의 성악곡인데 이 노래를 영화 "친구"의 주인공 서태화가 불렀더군요. 서태화는 원래 성악전공으로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억수탕" 때와는 다른 정통성악창법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런 것들도 알고 보면 소소한 재미가 있겠더군요.
우리 둘째도 벌써 아홉살입니다. 놈의 인생도 이미 시작했을까요? 아마도 시작했을 겁니다. 요즘 애들은 우리때보다 빠르니까요! 더 이상 아이를 아이로 보지말고 동등한 인격체로 보아야겠죠. 이번 일요일엔 큰아이와 둘이서 등산이라도 가서 여덟살 인생을 한 번 캐물어나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