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수요에 부응하는 발빠른 출간. 단행본으로서는 세계적으로도 앞선 것 같다. 블록체인도, 에스토니아에 관하여도, 이제 옥석을 가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나갈 때라 생각하지만(또 자연히 가려지겠지만), 먼저 기대를 갖고 읽어보려 한다.


기본적인 설명은 아래 공식누리집 자료들을 참조.

https://e-estonia.com/tag/blockchain/

https://e-estonia.com/wp-content/uploads/faq-a4-v02-blockcha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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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 개정판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지우.송호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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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너무너무 훌륭하다. 별점 열 개로도 모자랄 지경.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결론부에 내용이 대체로 잘 요약되어 있고, 상세한 리뷰는 다음 기회에...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이견을 환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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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규, "샌델의 정의와 법", 민주법학, 제46권 (2011. 7.) 을 읽고 간단히 메모





  정의란 무엇인가』가 별로라는 취지의 글을 어딘가에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여튼 박홍규 교수의 위 논문은 샌델 교수가 어떻게 자유주의를 오독, 모함하고 있으며, 그의 '도덕주의적 공동체주의'(?)가 얼마나 애매하고, 보수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지를 비교적 잘 정리하고 있다. 논문 심사위원 명단(김도균, 이재승, 정태욱)도 흥미를 끈다.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은 그야말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징후였는데, 책을 제대로 읽은 덕분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던지지만 결국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결코 답하지 않는다. 그가 "자유 남용" 내지 "극단적 개인화에 따른 자유 가능성 파괴"의 근거로 드는 법과 정책들은 주로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편견에 따라 주관적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가령 7강에서 다룬 '소수 집단 우대정책'은 소수 집단이 차별받아온 현실을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도리어 극단적 개인화로 인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반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정책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불만』에서는 자유주의에 근거한 무책주의(파탄주의)적 이혼법이 도덕적 판단을 제외함으로써 가족 등 성적 공동체를 파괴했다고 비판하나, 무책주의는 이미 파탄된 부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부부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Public Philosophy』 6장(우리말 본 제목은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에서는 클린턴 정부의 '덕치'를 칭송하면서 클린턴의 성추문을 교묘하게 옹호하기까지 한다. 낙태나 동성애, 종교의 자유 문제 등에서 '도덕'을 앞세우는 것은 그 자체로 보수적, 폭력적 논리로 흐를 위험이 다분하다.

  샌델의 막무가내적 도덕주의=꼰대성(?) 내지 샌델 열풍의 맹목성을 비판하거나 다룬 책, 논문은 위 논문 외에도 꽤 많이 있는데, 아무튼 '자유주의 v. 공동체주의'를 다룬 문헌들을 찾아 읽다가 메모하여 둔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덜 위험한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당장 더 필요한 것은, 둘 중에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침해부터 하지 않는) 자유주의 쪽이라고 생각한다(공동체주의자들의 자유주의 비판은 부당한 경우가 많은데, 『정치의 생각』, 201-233쪽이 잘 다루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생각된다. 패션처럼 유행을 좇지 말고, 차라리 마이클 왈저를 읽고, 존 스튜어트 밀을 읽자.

  『무엇이 정의인가?』에도 박홍규 교수의 글이 한 편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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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23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가 부재하던 시절에 나온
책이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정작 읽은 분들은 많이
없더군요. 저를 비롯해서...

묵향 2018-12-19 23:55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아무래도 시대와 제목발을 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책이 팔리고 입에 오르내린 것에 비하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의 고민을 얼마나 성숙시켜주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정의‘라는 개념이 필연적으로 ‘불의‘라는 대당항을 전제하게 되기 때문인지, 정의를 독점할 수 있다는 독선과 아집만 많아진 게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과학과 달리 ‘정의‘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오컴의 면도날을 대고 싶다는 유혹을 억눌러야 할 듯 싶습니다. 급한 불의를 끈 다음에는, 보다 섬세하게 ‘정의‘의 내용을 채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2018-11-23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묵향 2018-12-26 00:49   좋아요 1 | URL
그런 면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세상의 모든 자기 배불리기는 저마다 정의의 이름을 빌린다는 생각도 들구요.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의 배를 불릴 수 있으면 그것이 정의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연말 보내십시오^^
 



"어떻게 (인용자 추가: 남성) 자아는 자신에게 타자가 될 수 있는가? 아버지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 레비나스


  파트너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빠의, 육아를 통한 "변증법적" 성장기. 생각 깊은 선배 아빠가 먼저 낸 생각의 길을 따라가니 큰 도움이 된다.

  언어로 된 아빠의 계획과 규범을 언어가 없는 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21쪽). 아빠는 물론, 아이만의 '볼레로', 내적 리듬을 존중하고, 그것이 더 심화-발전-변주되도록 돕는 민감함을 지녀야 한다(61쪽). 언젠가는 "무의식의 독재"로부터 벗어나 "언어라는 아름다운 사슬"에 묶이게 될 아이가, 먼저 '판단 없는 신선한 시선'과 생명의 문법에 따라, 생명이 알려주는 소리를 내며 언어 제국의 난민이자 '시인'으로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기다려주어야 한다(70, 101쪽). 아이의 직관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온전한 상태로 바라보는 훈련의 결과로 주어진다. 사물과 사태를 커버로 덮어씌우지 않고 그 자체로 다가갈 때, 때로는 자연스럽게 상처입고 이내 자연스럽게 회복되면서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길 때, 사물과 대화 나눌 수 있게 된다(97쪽).

  그렇지만 동시에 아이는 규칙 외부('돌발적인 것')에 머물러 있기보다 규칙 내부('만남 가능성', '소통 가능성')에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진정한 창의성은 규칙 외부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규칙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규칙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규칙을 넘어선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규칙을 주되,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덜 요구해야 한다. 선택의 자유를 주고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는 아빠의 배포가 아이에게 달금한 자유를 배울 수 있게 한다(36-37, 42쪽).


"긍정적인 정체성은, 비록 당분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이긴 해도 자신은 온전하고 훌륭하며 환영받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품 안에서 아기는 결국 독립이 목표인 이후의 발달 과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켜 줄 경험을 쌓는다. 충격적이고 위협적인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비록 수동적이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분주한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기의 운명이자 아기의 자신감 배양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것 또한 아기가 품 안에서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 진 리들로프,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중에서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자란 아이가 물리적으로 독립될 수는 있어도 내적으로는 오히려 의존 성향이 강해지거나 나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충분히 의존할 만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인간은 독립적 존재로 성숙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스스로 뭔가를 하고자 결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격리보다는 만남에서 참되게 된다."(김상봉) 부모와의 격리가 아닌 만남에서 '홀로 주체'가 아닌 '서로 주체'가 된다(82-83쪽).

  아이의 의존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부모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는 인간의 본성과 조금도 맞지 않다. 진 리들로프에 따르면, 일찍 품의 박탈을 경험한 아이들은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독립심이 부족해진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새 옷, 새 자동차, 승진 등을 끝없이 갈망한다. 병적인 자아도취에 빠지는 배우, 여러 개의 학위를 수집하는 학자, 끝없이 모험을 떠나는 모험가도 어쩌면 품을 박탈당한 사람들일 수 있다. '품', 즉 "자신의 '존재'를 용인받을 경험"의 박탈이 끊임없는 인정 요구를 낳고 중독 증상을 유발한 것이다.

  가장 독립적인 아이는 사실 가장 의존적인 아이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용납하는 품에 안긴 '절대 의존 상태'로부터 점점 독립심을 키워 나간다. 절대 의존 욕구의 적절한 만족을 얻은 아이는 불필요한 인정투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육아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감각에 의지하여야 한다(84쪽).


  우리는 아이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책임진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자체로 책임진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아이는 아빠 엄마의 과오와 판단착오, 미숙한 양육을 자기 존재의 어느 한 부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명백하게 부모의 책임이지만, 책임의 대가는 아이가 안고 살아간다. 전 존재로 아빠 엄마의 잘못을 살아간다. 그것이 아이의 부모에 대한, 전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임을 잊지 말자(117-118쪽). 아이의 폭력성은 반응을 부르는 간절한 요청의 한 형태이다. 아이가 과도하게 행동하고, 공격성을 내보인다면, 아이의 자극-반응 실험(놀이)에 게으르게 참여하지 않았는지, 양육자는 되돌아 보아야 한다(130-131쪽). 이 사회에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소할 길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218쪽). 아이는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갖도록 명령하고 호소하는 '타인'이고 '얼굴'이다(134-135쪽).

  그리고 혹시라도 지금, 이 기쁘면서도, 나쁘면서도, 고통스러운, 하지만 자발적인 책임을 질 파트너가 함께 있다면, 책임을 분담할 수 있다는 그 단순하지만 반드시 당연하지만은 않은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자(118쪽).


  다음은 책에서 인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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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 다스 베이더와 아들 시공그래픽노블
제프리 브라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재미있고 귀여움! 스타워즈 팬들의 취향을 저격할, 아들 키우는 아빠의 ‘애증‘어린(?) 삽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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