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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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우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내가 보기에, 우정의 오랜 요령은 너보다 더 나은 사람들 ― 더 똑똑하다거나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더 친절하고 더 아량 있고 더 관대한 사람들 ― 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들이 네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친구들이 너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아무리 나쁜 ― 혹은 좋은 ― 말이라도 경청하려고 하고, 그들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게 제일 힘든 일이야,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이기도 해.”

― 『리틀 라이프』 1권 312페이지 중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길이란


우정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쉬운 질문인가요? 물론 우리들 중에 ‘오래 두고 사귄 벗’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된 우정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없다면 이 험한 세상을 견디기가 더 힘들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우정’이란 다소 추상적인 가치입니다. 누구나 우정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정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경우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 같습니다. 우정은 연인의 사랑처럼 배타적이거나 상호구속적인 것도 아니고, 혈육의 사랑처럼 맹목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정은 단순한 친목의 관계에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타인들과 ‘친목’을 나눌 수는 있지만, ‘우정’을 쉽게 나눌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나 오랜 시간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모든 관계가 우정의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프리스턴대 철학과의 알렉산더 네하마스 교수는 이러한 우정의 불명확한 특성 때문에, 우정에 대한 문학적 ‧ 학술적 관심이 분명히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는 우정이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쌓이는 우정의 가치를 아래와 같이 표현합니다.


“우정은 우리를 그냥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바를 이루도록 길을 인도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철학 한 입』(데이비드 에드먼즈 外, 열린책들) 중에서



잔인한 고통의 노래, 『리틀 라이프』


그리고 여기, 『리틀 라이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국작가 한야 야나기하라의 장편소설입니다.


2015년 커커스 문학상(Kirkus Prize)을 수상하고, 전미도서상과 맨부커상 최종후보작인 동시에, 그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20여 개의 언론 매체들로부터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던 화제작입니다. 현대 소설로는 드물게 요약본과 해설서가 등장하고, 영화 <캐롤>의 여배우 루니 마라가 추천하는 등 출간 직후부터 커다란 반향과 주목을 받았던 책입니다.


동시에 『리틀 라이프』는 대단히 논쟁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주드가 어린 시절에 당한 성폭행과 그로 인한 끔찍한 트라우마, 그리고 남성 간의 동성애에 관한 묘사가 소설 전반을 폭풍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자해와 자살 시도도 끊이질 않습니다. 정말이지 극한의 고통으로 점철된 소설입니다.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충분합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잔인한 걸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 2권 도합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실로 절절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리틀 라이프』를 한 번 읽고, 다시 읽고, 내 벗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주위에 선물했다는 독자 분들이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받은 상처의 심연에 관한 이야기, 극복될 수 없는 고독의 이야기입니다. 게이들의 사랑을 다루는 동성애 소설이기도 하고, 아동 성폭력 피해의 끔찍함을 다룬 심리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이전에, 『리틀 라이프』는 근본적으로 우정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고통 받는 한 영혼을 중심으로, 과연 그와 같은 인간을 지탱하는 우정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천착하는 작품입니다.


“우정, 교우관계는 너무나 흔히 논리를 무시하고, 너무나 흔히 적임자들을 교묘히 피해 가고, 너무나 흔히 이상하고 못되고 특이하고 망가진 사람들이게 자리를 잡는다.”

― 『리틀 라이프』 1권 137페이지 중에서



『리틀 라이프』에 깃든 우정의 덕목


앞서 말했듯, 우정은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무려 40여 년에 걸친 시간을 함께 겪어 냅니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먼저 죽음을 맞이합니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 버려진 채 태어나, 가톨릭 신부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며 자란 로스쿨의 주드, 신중하고 점잖은 성격의 배우 지망생 윌럼, 미술계의 스타를 꿈꾸는 열정적인 제이비, 그리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건축 전공의 맬컴까지…. 『리틀 라이프』는 십대 후반의 네 친구가 대학에서 만난 후, 거의 평생 동안 부대끼는 이야기입니다.


넷 모두가 끈끈하게 어울리면서 젊은 시절의 활기로 가득했던 관계가, 중년 이후까지 그대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기도 했고, 그 상처는 죽는 순간까지 잊히질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끝내 서로를 기억하며 삶을 마무리합니다. 누구도 누구를 끝내 내치진 않습니다. 상대의 마음 속 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정은 이처럼 ‘동년배’의 네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덕목은 아닙니다. 리처드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평생에 걸친 사랑을 쏟아 붓는 교수 해럴드와 그의 아내 줄리아, 그리고 든든한 큰형처럼 수십 년간 주드를 돌봐 주는 의사 앤디도, 나이와 환경, 지위를 떠난 우정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드를 둘러싼 많은 인물들은, 독자들에게 우정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가 ‘보살핌’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꼭 피를 나눈 가족이나, 연인, 또는 부부 관계가 아니더라도, 오래도록 서로의 ‘보잘 것 없는 삶’(little life)를 감싸주고 보살펴주는 관계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운명의 잔인한 굴레에서 구출하는 관계 말이죠.


“그들의 관계가 결국 구조 작업이 아니라, 그가 주드를 구하고 그만큼 자주 주드도 그를 구했던 우정의 연장이란 걸 깨달았다”

― 『리틀 라이프』 2권 81페이지 중에서


더불어 우정은 상대를 교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친구란 무엇보다도 비판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정을 위해선 상대방의 망가지고 뒤틀린 모습, 거듭되는 실수와 자기파괴를 꾹 참고 지켜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섬세하게 그의 고통의 근원을 살피고, 인내하는 일이 요구됩니다. 


주드를 둘러싼 친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세상에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두려움과 증오심밖에 없던 주드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정이란 어느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리틀 라이프』는 바로 그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니체는 “위대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오직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시각에선,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이 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많은 친구들을 두루 사귀라고 속삭입니다. 사교적인 인간,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죠.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 속 고통을 ‘전문적으로’ 듣는 심리상담가와 정신분석의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의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전문가’를 전보다 더 필요로 합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로 날카로워지는 한편, ‘깊고 좁은 관계’보단 ‘넓고 얕은 관계’가 선호되는 현대 사회의 뚜렷한 추세입니다.


“누군가Someone에게 말해야 해.” 애너는 말했고, 나이가 들면서 그는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한 사람Some One’에게 말하는 거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어떤 한 사람에게 말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 『리틀 라이프』 2권 355페이지 중에서


그러나 『리틀 라이프』에선 그런 추세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영혼의 단발마가 이어지면서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자학을 거듭하는 주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벗들의 오랜 노력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비현실성은, 분명히 아름답습니다. 



“네 편이 되어줄게. 영원히.”


이 작품은 2016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휩쓸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쌍둥이 격의 작품입니다. 영화가 아동 성폭력 가해자와 그들을 쫓는 신문사 특종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설은 그 성폭력의 기억에 평생을 시달리는 피해자의 심리에 집중합니다.


영화에선 미국 보스턴의 가톨릭 신부들이 남자아이들을 강간하고,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가 그 사건을 어떻게 은폐했는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대사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면, 아이들을 추행하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거요.(If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it takes a village to abuse one.)”


비유컨대 우정이란 바로 그 ‘온 마을’에 함께 맞서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상대를 보살펴 주며, 섣부르게 비판하지 말고, 섣부르게 고치려 들지 않으며, 세심하게 인내하는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끝내 친절하고 아량 있게 그를 품어주는 일입니다. “나는 영원히 네 편이 되어줄게”라고 말해주는 일입니다.


과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틀 라이프』은 힘겨운 고통으로 꽉 찬 소설입니다. 그 고통을 견디면서 책을 독파하는 독자들에게, 소설은 굉장한 치유의 힘을 선사해 주리라 믿습니다. 그 힘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역시 ‘우정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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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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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서로 부딪치는 사랑, 동시에 얽혀 있는 무수한 사랑들. 어느 사랑이 이루어지면 다른 사랑은 날개를 접어야만 할 때도 있다. 그 모순 속에서도 사랑들이 편안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눈물 흘리더라도 다시 손 붙잡고 밤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건 무슨 마음인지. 무사하기를. 당신들도 나도, 같이."


2004년 출간된 이래 14년간 독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언제까지나 내 책장에 있을 책”, “나의 연인과 같은 책” 등 찬사를 받으며 

수많은 명대사 명장면을 탄생시킨 이 이야기는, 

연애소설의 공식과 한계를 뛰어넘어 평생 함께할 친구 같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30대 초중반, 

사랑의 부질없음을 경험하고 사랑에 대한 설렘조차 접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사랑해보기로 한 이들을 조금 느리게 그려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는 적당히 외로워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포기해야 만하는 것들이 늘어가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이야기와 문장들. 

많은 독자들이 자신만의 손 글씨로 수백 번, 수천 번 되뇌며 간직해온 문장들을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 작품에 대한 일정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솔은 라디오 방송 <노래 실은 꽃마차>의 작가입니다. 시집을 낸 적도 있는 이건이 담당 피디가 된다는 말에 사사건건 원고에 트집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건 피디와의 첫 미팅, 그는 진솔이 다이어리에 써놓은 글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올해의 목표 ‘연연하지 말자’  

어디에 연연하지 말잔 거예요?”



‘인생’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건의 말이 걸려 원고를 못 쓴 채 결국 잠이 든 진솔. <꽃마차> 팀은 돌발노래방을 열어 펑크를 모면합니다. 비로소 여유를 찾은 진솔은 어두운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난 종점이란 말이 좋아요. 그냥 맘 편한 느낌. 막차 버스에서 졸아도 안심이 되고, 맘 놓고 있어도 정류장 놓칠 걱정 없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다는… 그런 느낌요.”



건은 진솔이 원고를 마치기를 밤늦도록 기다렸다가 함께 산책하자고 합니다. 마포대교를 걸으면서 건은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래되고 빛바랜 감정들을 진솔에게 털어놓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진솔이 자기 일기장 같다며. 밤 산책을 끝내고 잠을 청하는 진솔에게 건이 문자를 보냅니다. 


"Dear Diary

잘 자요. 좋은 꿈꾸고."


건의 굿나이트 인사. 진솔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스르르 잠이 듭니다. 평소 가위에 잘 눌리던 그녀였는데. 오랜만에 깊은 단잠이 진솔에게 찾아옵니다. 편안한 꿈결같이. 



진솔이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올해의 목표, 밤에 창경궁 구경 가기’를 이루기 위해 폐관 시각이 지난 창경궁에 몰래 남은 진솔과 건. 진솔이 하고 싶었던 일을 같이 해주고 싶었다며 건은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합니다.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게 사랑이 아니면 또 뭐란 말이야.”



건의 순간의 진심에 깊이 상처받은 진솔은 <꽃마차>를 그만둡니다. <꽃마차>의 애청자인 건의 할아버지가 진솔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두 사람은 볕이 좋은 남산을 산책합니다. 남산 길을 내려오면서 노인은 가슴에 담아둔 말을 꺼내고, 사심 없이 따스한 말에 진솔은 울컥합니다.   


“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디 않아요. 보태서 써야 한다. 내래, 저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보태줘서리 쓴다… 이렇게 말이디.”



서울을 떠나 홀로 남양주로 이사 간 진솔. 집으로 찾아온 건을 또다시 밀어낸 진솔은 건이 떠난 길을 쫓아 그에게 달려갑니다. 떠나지 못하고 마을 어귀 인적 없는 밤길에 차를 세워둔 채 서 있는 건. 진솔은 건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고 그런 진솔을 건은 꽉 껴안으며 말합니다.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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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농장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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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디컬 드라마 <닥터 하우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으로 2012년판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폭스 웹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 국가에서 8,180만 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시즌1부터 8까지 전편을 두 번이나 ‘정주행’ 했으니 <닥터 하우스>의 열혈 시청자라 할 만합니다.


메디컬 드라마에는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명망가도, 거리의 노숙자도, 일류 재즈 뮤지션도, 이웃집의 불륜남도…. 육신의 고통 앞에서는 완전하게 평등합니다. 그래서 병원에선 삶의 솔직한 감정들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허례허식들이 깡그리 벗겨지게 됩니다.


아직도 점잔을 떨거나 체면을 차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약물에 찌든 천재 진단의 그레고리 하우스는 매번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말라’고 단언하죠. 인간은 다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고요. “Everybody lies”란 문장이 그의 대표적인 신조입니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의 애환과 인생사에 늘 (남몰래) 공감하는 (츤데레) 하우스의 모습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백미입니다.



흥미진진한 메디컬 픽션, 『장기농장』


의학과 의술, 병원과 의사와 간호사 등등은 우리 삶과 아주 가까운데, 막상 <닥터 하우스>처럼 맛깔나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영화나 드라마는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책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물론 여러 장르의 메디컬 문학이나 의사, 간호사들의 에세이가 없는 건 아닐 테지만, 특히 소설 분야로 한정한다면, 지적 만족과 문학적 감동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하하키기 호세이의 <장기농장>을 직접 읽기 전까진 말이죠. 


600여 페이지의 그리 짧지 않은 소설인데, 하룻밤을 꼬박 새며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읽고 나선 메디컬 픽션만이 줄 수 있는 매력에 푹 빠졌다가 나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디컬 스릴러, 메디컬 추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스물한 살, 갓 간호학교를 졸업한 노리코는 자신의 집과 그리 머지않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종합병원 세이레이의 간호사로 취직합니다. 파릇파릇한 새내기 사회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선 벚나무의 꽃잎들이 휘날리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로는 벚꽃 구경 갈 일이 없습니다. 아직 남자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 보지 않았고요.


병원 소아과에서 무럭무럭 성장하던 그녀와 단짝친구 유코에게, 어느 순간부터 묘한 일이 찾아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들이 묘한 일을 찾아내고, 추적해 갑니다. 노리코가 산꼭대기 역의 레스토랑에서 어느 임산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뇌아를 출산하겠단 말을 들은 게 시작이었습니다. 언제나 밝고 기운이 넘치는 유코가 병원의 직원들 대다수도 출입이 불가능한 산부인과 ‘특별병동’의 잠입을 주도하고, 소아외과에서 근무하는 마토바 의사도 합류합니다.



“무뇌아도 인간인가요?”


무뇌아, 말 그대로 뇌를 갖지 않고 태어난 아기입니다. 이마 위부터 뒤통수가 전혀 없이 눈썹 위로 납작한 무뇌아의 사진, 여러분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태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사망할 확률이 높고, 그래서 임신 중절로 지우는 일도 빈번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무뇌아의 장기는 선천적 질환을 앓는 많은 신생아들을 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짐작되지 않나요? 무뇌아, 장기농장.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돈에 대한 욕망, 연구에 대한 욕망, 명성에 대한 욕망…. 


노리코 일행은 세이레이 병원 산부인과의 어두운 이면을 향해서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병원에 속한 이는 아니지만, 케이블카의 차장 후지노 시게루 또한 그들을 돕습니다. 후지노 시게루는 작은 몸집에 큰 머리를 가진, 약간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인물입니다. 동시에 그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이웃의 눈을 피해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부 래들리처럼, 독자들에게 잊히지 않는 감동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는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했다가 다시 규슈대 의학부를 거쳐 정신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후생병원 진료부장으로 재직할 만큼 충실한 의료인의 삶을 살았다고 해요. 동시에 『폐쇄병동』으로 제8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 『도망』으로 제10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정통 의사 출신의 소설가답게 그가 병원의 여러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들엔 생동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환자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도 그렇고요. 특히 병원 곳곳에서 환자를 보살피거나, 당직을 서거나, 대기실에서 잡담을 나누는 간호사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묘사들이 따뜻하다 싶을 만큼 세심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장기농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


간호사들은 어쩌면 ‘질병 자체에 주목하는 의사’와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 병원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스물한 살 새내기 간호사의 초심(初心), 환자와 부대끼면서 느끼는 생명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상식적인 접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상기시킵니다. 줄기세포와 낙태, 뇌와 유전자와 배아의 제공…. 생명 윤리라는 거창한 문제에 있어, 우리 모두 막 병원에 들어간 노리코의 뒤를 좇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닥터 하우스>도 결국 슈퍼히어로 드라마입니다. 하우스만 해도 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중년에 다다랐고, 그와 함께하는 의사들 모두 10여 년이 넘게 그 어렵다는 의학 공부에 매진한 엘리트들이죠.


『장기농장』의 아마기시 노리코는 다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에 힘겨워 하고, 함께 사는 어머니와 투닥거리면서, 베테랑 간호사들 앞에서 잔뜩 긴장하는 내 동생이나 언니 같은 존재입니다. 퇴근하고 예쁜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직장에서 남성 선배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는…,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는 바로 그런 평범하고 성실한 주인공이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를 픽션의 형태로 가공했습니다.


우리를 구하는 건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TV 드라마에선 몰라도, 현실에선 어림없는 말입니다. 십여 년 전 그야말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생명공학자 사태가 떠오릅니다. 그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홀렸던 ‘장기농장’의 꿈이었죠. 『장기농장』을 읽고, 다시금 가장 단순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게 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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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바다처럼 영구히 움직이는 기계의 화신이죠. 바다는 예쁘다고 쓰다듬지 않잖아요. 그런데 고양이는 쓰다듬죠. 왜? 이유라고는 고양이가 그렇게 하라고 놔둔다는 것뿐이죠.”
_찰스 부코스키, 『고양이에 대하여』 (박현주 옮김, 시공사)

 

드디어 우리에게도 퍼스트 캣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찡찡이의 청와대 입주를 기념하여 전국의 고양이 덕후를 위한 추천 도서를 소개합니다.

두루두루 사랑 받고 있지만, 고양이는 특히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고양이, 하면 떠오르는 뮤지컬인 ‘캣츠’(Cats)는 T. S. 엘리엇의 시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죠. (시공주니어에서 어린이 독자를 위해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 로 국내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60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예찬을 줄줄이 남겨 놓았으며,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기도 했습니다.  
 

 

외에도 찰스 디킨스, 존 케이지,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양이에 대한 사랑의 기록을 듬뿍 전하고 있습니다. 시공사에서도 니키 에츠코의 일본 추리소설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출간되었고, 스릴러 소설의 대가 도나토 카리시의 신작 『안개 속 소녀 와 남씨의 신작 그림 에세이 『고양이처럼 아님 말고』 눈에 띄네요. 독일에서 건너온 『고양이 철학자 루푸스』도 2013년 번역 출간되었는데, 무려 고양이를 역사, 철학, 인류학 등으로 무장한 철학자로 격상시킨 내용입니다.

 

 

 

 

 

 

 

 

 

 

 

 

 

 

 

 고양이, 고독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동물 
  ― 찰스 부코스키, 『고양이에 대하여』 

 

 그렇다면 미국 문단의 그 위대한 아웃사이더 작가, 술과 도박에 탐닉한 계관시인, 찰스 부코스키가 바라보는 고양이는 어떨까요? 부코스키가 쓰고 박현주가 옮긴 『고양이에 대하여On Cat』 정말로 고양이에 대한, 오직 고양이를 위한 문학적 기록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愛猫)인들의 서재엔 없어서는 안 될 한 권의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애묘인들은 이 책을 읽는 걸 삼가도록 하십시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안달이 날 테니깐 말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지금처럼 걔네들을 모시고 사는 집사들을 부러워하며, 고양이 영상들에나 매일 밤 탐닉하도록 합시다.

부코스키가 바라보는 고양이들은 역시 자신의 고독과 슬픔, 신산한 삶을 반추하는 하나의 훌륭한 문학적 메타포가 됩니다. 고양이가 곧 상처받은 부코스키입니다. 이게 여타 ‘고양이 문학’들과 갖는 차별점입니다.

부코스키는 그냥 별반 꾸밈도 없이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고양이에게 기댑니다. 자신의 운명보다 더 괴팍한 운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는’ 고양이들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곤 자신이 키우는 9마리 고양이들을 예찬합니다. 부코스키에게 고양이는 니체의 현신입니다. “삶이 힘들었다고? 좋아. 그럼 다시 한 번 살아보겠네. 영원히, 다시, 또다시.”

또 부코스키에게 고양이는 쇼펜하우어입니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곧 악이니까. “얘는 쇼펜하우어를 읽은 적은 없지만, 그를 속속들이 파먹을걸.”

찰스 부코스키는 시공사가 지난해 여름 테마 에세이 삼부작을 낸 후 다시 한 번 화려한 조명을 받았습니다. 『고양이에 대하여』와 함께 『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가 삼부작을 이루고 있죠. 사실 미국과 유럽 독자들을 열광케 했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선 뒤늦은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코스키의 문체에 한 번 빠지면 팬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부코스키의 독자들은 이미 다 압니다. 물론, “애쓰지 마라[Don’t Try]”는 그의 묘비명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의 다양한 글들을 선별해 묶은 테마 에세이는 찰스 부코스키에 입문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획입니다. 읽지 않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작가, 자신이 인간으로선 개차반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작가입니다. 정말 개차반이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저는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돈을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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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입니다. 아니, 그야말로 심각한 ‘초고령화’ 사회라고 합니다. 노인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어르신들의 ‘실버 문화’도 확산되는 추세지만, 아직 이 나라는 노인들이 살기에 썩 마땅한 곳은 아닌 듯합니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1위라는 악명을 언제쯤 탈피할 수 있을까요?


나이 드는 일은 절대적으로 평등합니다. 그러니 노년 계층에 대한 홀대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가볍게 여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몸이 약해지는 일, 병에 걸리는 일, 고독에 익숙해지고, 죽음을 살갗으로 느끼며, 마침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야 하는 일까지…. 모두 지극히 실존적이면서 지극히 공동체적인 일들입니다. 우리 누구도 그 숙명의 궤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실존과 공동체가 맞부딪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이 반짝이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노년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 네 편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레저 시커』 

(마이클 저두리언 지음 / 최세희 옮김 / 시공사)


삶의 황혼을 넘어서 이젠 정말 말년(末年)에 이른 80대 노부부가 있습니다. 중증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남편 존, 그리고 말기 암으로 고통 받는 아내 엘라.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야말로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이야기가 틀림없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두 사람에겐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미카엘 하네케가 영화 <아무르>에서 그렸던 것처럼 고통스러운 노부부의 결말을 봐야 하는 걸까요?


『레저 시커』의 저자 마이클 저두리언에 따르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해피 엔딩’은 가능합니다. 엘라와 존은 병원을 박차고 나와서 캠핑카 <레저 시커>에 올라탑니다. 그리곤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최후의 여정’을 떠납니다. 자그마치 3,945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들이 머무르는 미국의 도시들이 곧 소설의 한 챕터 한 챕터입니다. 비장하고도 유쾌한 로드무비적 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반문하시겠죠? 맞습니다. 이 소설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며 자신들만의 삶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노부부를 바라보노라면, 새삼 우리 삶의 본질을 새삼 되짚게 됩니다. 책을 덮은 후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만화적인 스토리 속에 구체성과 진정성이 배어 있는데, 아마도 그건 저자의 경험 탓일 거예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레저 시커>의 경로와 꼭 같은 횡단 여행을 즐기고, 5년이 넘게 알츠하이머로 지독한 고통을 겪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저자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소설에 깊이 투영되었다고 합니다. 2017년 헬렌 미렌과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한 영화로도 개봉된다고 하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2.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장경렬 옮김 / 시공사)


2012년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망 50주기를 추모하며 출간되었던 <헤밍웨이 선집> 기억하시나요? 훌륭한 번역과 품격 있는 외양으로 헤밍웨이 팬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바 있죠. 이 선집에는 초기 걸작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1924)를 시작으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어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그리고 『노인과 바다』(1952)까지 시기별 대표작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걸작들을 남긴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 하지만 굳이 노벨상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헤밍웨이 하면 역시 『노인과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만년의 헤밍웨이가 지독한 우울과 자괴감에 사로잡힌 채 간신히 써 내려간 소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최고의 영광을 돌려준 작품. 소설 속에서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의 의지를 믿었던 노년의 헤밍웨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괴당할지언정 패배란 있을 수 없다”는 노인의 다짐과 함께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운명과 맞서 싸우는 데는 젊고 늙음이 따로 없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매 순간을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 삶에 대한 묵직한 찬가입니다. 어른이 되어 꼭 한 번 다시 펼쳐 들어야 할 고전이기도 하고요. 



3.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인 소설’일 겁니다. 이 작품은 스웨덴 작은 마을의 양로원에서 살던 알란 칼손 할아버지가 자신의 백 세 생일날에 뛰쳐나와 벌이는 경쾌한 모험담입니다.


소설 속에서 노인 알란의 모험은 그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과 함께 격자식으로 펼쳐지는데, 특히 그가 전 세계를 떠돌며 20세기의 굵직굵직한 인물들 ― 아인슈타인과 스탈린, 마오쩌동, 그리고 김일성 등등 ― 과 조우하며 세계사의 대사건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노인에 대하여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자신이 가진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삶을 순수하게 낙관하지 못한 채 과거를 연민하는 태도 말이죠.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노인의 이미지를 아주 유쾌하게 전복합니다. 알란은 결코 늙은 육신과 자신이 겪어내야 했던 신산한 삶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아주 용감하고, 진취적이고, 쿨하게 미래를 개척해 나가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4. 『체호프 희곡 전집』 

(안톤 체호프 지음 / 김규종 옮김 / 시공사)


그렇지만, 어쩌면 노년은 역시 우수(憂愁)의 시절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인생 전체가 실패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미 삶의 경로를 바꾸기엔 너무나 늦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의 기분은 어떨까요? 이처럼 무력감과 상실감을 곱씹으면서 그저 관 속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처연한 모습은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죠.


러시아 작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희곡 작품들엔 쓸쓸하고 우울한 노인들의 독백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체호프 희곡 전집』에 수록된 <바냐 외삼촌>은 허덕허덕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체호프 자신의 지친 심경이 잘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한평생 고되게 일하고 가업을 떠받들다가 늙어버린 바냐 외삼촌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는 모든 걸, 그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을 어리석게 놓쳐 버렸다는 생각에 괴로워합니다. 한때는 자신도 빛나는 개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되새기지만, 그렇다고 한들 지금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체호프의 여러 희곡에 노인들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러나 그의 희곡들에는 남녀노소와 지위를 막론하고, 결단코 삶을 새롭게 쇄신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다가 놓쳐버렸던 삶의 반짝이던 순간들을 안타까워하는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벚나무 동산』의 지주와 귀족들도, 『갈매기』의 예술가 지망생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체호프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나이 든다는 것, 노년이란 하나의 알레고리일 뿐이라는 것을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인생을 늙은이처럼 살 때, 우리는 이미 다 폭삭 늙어버린 존재라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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