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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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관객들을 만나는 중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처럼, 귀여운 하마돼지 <옥자>는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일찌감치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의 한 자리를 예약했습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전혀 상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극장에서도 <옥자>의 600석 표가 5분 만에 동이 났다고 하니 과연 봉준호입니다. 


봉준호의 <옥자>는 육식에 관한 영화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일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각본이 결국 고기를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창 끝을 겨누고 있을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옥자>는 정확히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해 먹는 공장식 축산'의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을지라도,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에 대해 사람들 마음에 미안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강경한 동물 권익 보호주의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말에 <동물농장>을 즐겨 보면서 적당히 육식을 즐기는, 그러니깐 봉준호 같은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이런 딜레마에 걸쳐 있습니다. 


전 세계를 뒤덮은 공장식 축산의 폐해 


논쟁적인 윤리적 딜레마와 연결돼 있는 만큼, 육식과 채식에 관한 논란은 다소 공격적으로 변하기 쉬운 이슈입니다. 육식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소식마다 많은 누리꾼들은 "고기를 먹을 자유"와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란 사실을 날카롭게 언급합니다. 죄책감을 강제하는 일은 어느 누구라도 짜증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구도 타인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육식을 즐기는 모두가 '난 내가 먹은 고기가 어떻게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하기엔 전 세계의 공장식 축산으로 발생하는 타인의 피해, 지구 환경의 피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육식의 폐해'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옥자>와 함께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채식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육식을 하지 말라는 책이라기 보단, 육식 문화가 인간의 환경과 생태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공장식 축산업은 명백히 제3세계 주민들의 식수와 농경 용지를 빼앗고, 가뭄과 사막화를 촉진합니다. 또한 명백하게 지구 온난화를 악화시킵니다. 육류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수십 년 사이에 치명적인 환경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은 이 책 출간 이후 한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옥자>와 『육식의 종말』이 겹치는 지점 


인간에게 먹힐 날을 기다리며, 좁디좁은 공간에서 끔찍한 일생을 보내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일은 다큐멘터리의 몫입니다. 귀여운 하마돼지 옥자와 미자의 아름다운 교감과 동화 같은 모험을 이야기로 풀어내서 멋진 영상에 담는 일은 영화의 몫입니다. 


책은? 책은 솔직히 재미없습니다.  『육식의 종말』은 리프킨의 말처럼,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제도적 폭력에 가까운 '차가운 악'(cold evil)을 수백 개의 주석과 참고 문헌으로 산산이 분해합니다. 책은 왜 햄버거를 먹는 일이 지구 저편의 수백만 사람들에겐 재앙이 될 수 있는지를 논증합니다. 옥자의 비극 이전에, 미란도 기업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재미가 없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깨어 있게 합니다. 책은 영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루한’, 그러나 ‘근본적인’ 인과 관계들을 꿋꿋하게 파헤치니까요.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태를 폭로하거나 간명하게 드러내는 정도”(조선비즈 2017. 7. 인터뷰)고 말했습니다. 리프킨은 단언컨대 『육식의 종말』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썼습니다. 둘 다 자신들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옥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시골의 50대 여성 관객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간이 남아 <옥자>를 봤는데 ‘이상한 동물이 나오는데 정말 귀엽더라’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옥자가 실제로 있는 동물인 줄 알고 ‘어느 나라 종이야?’라고 묻는다면 더없이 좋을 테고.”

(한국일보 2017. 6. 인터뷰)


여기에 덧붙여 이 영화를 본 관객이 『육식의 종말』을 펴드는 일도 기대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고기를 끊겠다’는 결심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옥자의 고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공장식 축산업의 한계를 더 똑바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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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