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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레드슈즈 - <레드슈즈> 아트북
정삼성.곽진영 지음, 홍성호.김상진 서문, 양우석 추천 / 시공아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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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RT OF 레드슈즈』에만 있다!



1.

지금까지 이런 공간은 없었다!

: 동화나라 탄생 일지

《레드슈즈》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동화나라 상황판


《레드슈즈》의 배경이 되는 동화나라는 여러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함께 모여 사는 상상의 공간이다. 초기에는 이국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기존의 동화 규칙을 깨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캐릭터와 스토리 변화에 따라서도 모습이 달라졌다. 각 동화의 주인공들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른바 ‘국가’ 단위로 체계를 잡았다가 점점 동화의 주인공들이 가까이 모여 산다는 ‘도시’ 체계가 잡혀 갔다. 이에 따라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보다는 분명하고 촘촘한 공간 구성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국가보다는 작지만 도시보다는 독립된 설계가 가능한 ‘섬’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 ‘동화나라’가 탄생했다. 

그다음으로 머릿속의 동화나라를 밖으로 꺼내야 했다. 동화나라의 자연환경과 구조물들을 구상하는 과정에는 무수한 실험이 존재했다. 섬 전체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숲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까지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와 끝없는 스케치가 있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많았다. 섬이 동화책 모양인 것도 있었다.  여러 영화와 소설, 애니메이션도 참고했는데 아이빈드 얼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얼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배경을 그린 아티스트로, 그의 비밀스럽고 낭만적인 작품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티스트에게는 화려하고 멋진 배경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아트 팀은 2D로 기본 콘셉트를 잡는다. 아트 팀에서 그린 선 하나가 3D 모델링 단계에서 산이 되고 강도 된다.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만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직결된다. 디자인 심미성과 효율성의 끝없는 줄다리기다.” 이석기 아트 디렉터의 설명이다.


동화나라는 4개 구역으로 구성된다. 각 구역은 다시 여러 개의 단위로 나뉜다.


1블록에 해당하는 위태로운 바위(난쟁이들이 머무는 공간)의 콘셉트 아트(왼쪽)와 개발 과정 중의 스케치들(오른쪽)


+

『THE ART OF 레드슈즈』에는 3D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2.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 레드슈즈의 캐릭터들


일곱 왕자(왼쪽)들은 저주로 초록색 난쟁이(왼쪽)가 된다.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특별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레드슈즈》의 캐릭터들은 왜인지 마구 정이 가고 낯익다. 영화의 배경이 여러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화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동화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 동화를 유추해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다. 물론 모든 캐릭터가 기존의 동화를 차용하지는 않았다. "캐릭터의 특징을 드러내려면 그것을 나타내는 배경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일곱 난쟁이의 경우 영화에는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도 있지만 제작진은 공평하게 그들의 모든 것을 빼곡하게 구성했다. 이를테면 잭은 부자다. 동화에서 (왕자가 아닌 이상) 부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없지만 『잭과 콩나무』의 잭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동화와의 연관성과 차별성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이미 성인이 된 관객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다." 홍성호 감독의 설명이다. 


김상진 디자이너가 만든 여러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동글동글한 인상에 활짝 웃는 모습이 어울리는 캐릭터들은 디즈니와 드림웍스에서 일하며 여러 캐릭터들을 만든 경험이 있는 노력한 제작진의 작품이다. 특히 《겨울왕국》, 《모아나》, 《라푼젤》, 《빅 히어로》 등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김상진 디자이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영화의 주인공인 스노우에 대해 “이 영화에는 어느 애니메이션의 여자 주인공과도 다른 매력적인 인물이 나온다. 바로 ‘스노우’다. 캐릭터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디자인하기 쉽지 않았다. 전형성을 깨는 캐릭터이면서도 영화의 주인공답게 누구보다 매력 있어야 했다. 여기에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형으로도 드러나야 했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만들어 보고 싶은 캐릭터였기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THE ART OF 레드슈즈』에는 캐릭터의 최종 룩(영화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의 완성형 모습)만이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 개발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 아티스트들이 무엇에 집중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러 아트워크가 실려 있다.  


레드슈즈 캐릭터 개발 과정에서의 스케치들. 여러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최종 룩을 완성시켰다.


+

『THE ART OF 레드슈즈』에는 3D 캐릭터의 탄생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



3.

행복한 반전이 있는 현대의 동화

: 스토리 개발


긴 시간 제작을 준비했던 만큼 스토리 라인도 수없이 바뀌었다. 누구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냈고, 모두가 함께 고민했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제작상의 문제 때문에 포기한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비슷한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가 나와 식상해진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가 아는 동화를 바탕으로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고 생각할 요소도 많았다. 하지만 무수한 실패 속에서 아이디어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덜어졌고, 주인공의 감정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원작의 특성상 주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 한편으로 여러 동화가 나오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를 포괄하는 ‘동화 세계’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핵심은 ‘주인공에게 집중하기’였다. 수많은 스토리가 있었지만 기조는 유지했다.


1-3단계 시나리오의 콘셉트 아트. 이것만 봐도 각각이 얼마나 다른 이야기였는지를 알 수 있다.


+

『THE ART OF 레드슈즈』에는 스토리 디벨롭먼트 과정의 여러 시나리오와 콘셉트 아트를 볼 수 있다.



4.

숨은 이야기 

: 아트북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하나, 아티스트, 주연 배우 인터뷰


홍성호 감독,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 장무현 CG 슈퍼바이저, 이석기 아트 디렉터, 정삼성 각색 작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한층 깊숙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주연을 맡은 클로이 모레츠와 샘 클라플린의 인터뷰와 캐스팅 비하인드도 실려 있다.



둘, 숨은 캐릭터 & 단서 찾기


영화가 어떤 동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는지, 관객에게 깜짝 놀랄 만한 반전 재미를 주는 캐릭터에 숨겨진 비밀이 아트북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셋, 장면에 얽힌 비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장면에 얽힌 히스토리. 제작진의 고충과 장면 탄생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가 공개된다.



넷, 컬러 키 & 컬러 스크립트


한눈에 영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컬러 스크립트와 컬러 키는 오로지 아트북을 통해서만 소장할 수 있다.



다섯, 또 하나의 동화 


2D로 그려진 새로운 동화.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이 펼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든다.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THE ART OF 레드슈즈』를 통해 만나요.

The Art of 레드슈즈


모든 것이 뒤바뀐 동화나라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모험을 다룬 《레드슈즈》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을 오늘날의 감각과 가치관에 맞게 바꾼 현대의 동화다. 낡은 고정관념을 깨며 행복한 반전을 보여 주는 내용만큼이나 영화 제작에 들어간 시간과 인력, 투자 규모 면에서 대한민국 3D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아트북에는 92분의 러닝 타임에는 담기지 못한 10여 년 동안의 수많은 아트워크,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 주연을 맡은 클로이 모레츠와 샘 클라플린의 인터뷰와 캐스팅 비하인드, 그리고 홍성호 감독과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의 글을 비롯하여 제작진, 아티스트들의 코멘트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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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제이미 캄플린.마리아 라나우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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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이 책을 읽기에 앞서



예술과 책은 어떤 관계일까? 또한 인생과 책은?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가 논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저자는 예술과 책, 모두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것이고, 역시 문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니까 어찌되었든 서로 긍정적인 관계에 있다고 좋게 포장하여 말하지 않는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만큼 인생의 다른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

책은 정말이지 미묘하고 까다로운 존재다. 예술가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러 교육자들은 젊은 예술학도들에게 신앙처럼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들의 말처럼 정말로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애석하게도 책을 많이 읽고, 주변과 세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예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노력하면 예술이 잘될 거라는 말은 노력하면 세상이 당신을 알아줄 것이라는 말만큼이나 공허하다. 교육자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난잡한 경험과 방탕한 생활이 뛰어난 예술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을 테니.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독서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 어른들, 특히 부모님이 흐뭇해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그 습관이라는 것이 논리적이지도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독서는 의식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의식적인 행위를 습관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여기서 독서의 역설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현대인이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하는 말들이 많지만 손을 뻗기만 하면 책이 자리하는 환경이 갖추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일일이 베껴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정된 자세로 오랫동안 일하는 필경사들(대부분 수도사)은 고질적인 직업병에 시달렸고, 그렇게 만든 책들은 당연하게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쌌다. 인쇄술 발명 이후로도 책은 (오늘날에 비하면) 고가품으로 자리했다.

오늘날 만능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소장했던 책의 수는 1백 권 남짓이었다. 『수상록』의 저자이자 독서광으로 유명했던 아키텐의 영주 몽테뉴의 장서도 5백 권 정도였다. 물론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한 권의 책을 구하기 위해 번거로운 수고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책 한 권 한 권을 소중히 읽고 곱씹었다. 

책이 너무 많고 구하기도 쉬운 오늘날에 책에 대한 열망이 약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디지털의 시대에도 변치 않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 책을 삶의 중심에 놓는 이들은 레오나르도나 몽테뉴보다 책을 사랑한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독서는 위험하다. 독서는 실천을 미루게 만들고, 세상과 맞서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도록 만든다. 책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우리는 실천을 위한 지식을 얻고 세상과 맞설 힘을 키울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책을 통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려서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 책이 축복이자 저주이고, 쾌락의 원천이자 고통의 씨앗인 이유다. 

저자는 아마도 지독한 독서광일 것 같다. 30여 년간 영국 최대의 예술서 출판사인 템스 앤드 허드슨에서 책을 만들었고, 몇 권의 책도 출간했으니 누구보다 책의 속성을 잘 알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책이 발전해 온 과정을 함께 여러 미술 작품 속에 책이 등장하는 양상, 예술가들이 책에 반응해 온 방식 등을 다루었다. 여러 색의 실을 멋지게 꼬아 화려한 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책이 인생과 예술을 성공으로 이끄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풍요롭게 만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_<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옮긴이 이연식



이 책의 표지 재킷은 양면으로 되어 있고 재킷 안쪽에는 독특한 프린트가 인쇄되어 있어 뒤집으면 훌륭한 북 커버가 된다. 아예 재킷을 벗기면 영문으로만 된, 전혀 다른 제목의 표지가 등장한다. 



책이 인생과 예술을 성공으로 이끄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풍요롭게 만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_<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옮긴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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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 회를 보며 폭풍오열하셨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다음날이 걱정될 만큼 눈물을 철철 흘렸고요. 드라마를 보셨던 대부분의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결국 엄마(원미경 분)는 아빠(유동근 분) 곁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떠납니다. 참 아픔 많았던 그녀의 한 생도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겠지만, 또 어쨌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너 다 잊어버려도, 엄마 웃음도, 얼굴도 다 잊어버려도, 네가 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건 잊으면 안 돼.”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최민호 분)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아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죠. 엄마는 이어 딸(최지우 분)에게 "사랑해. 너는 나지, 나는 너고. 알지, 그거?"라고 말하고 함께 통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참 아픔 많고 눈물 많았던 엄마를 잃었거나, 언젠가는 잃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 아픔과 한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요?

  

우리들이 모두 누군가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 ‘너는 나이고, 나는 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만큼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따뜻한 안도감을 전해 줍니다. 그녀는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너무나 당연하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엄마를 그런 존재로 완성시켜 주는 아빠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아빠와 엄마의 로맨스,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사랑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였기 때문에 우릴 그토록 사랑해줄 수 있던 것이고요. 

***

작가 노희경은 평생 동안 엄마를 배신하고 어마어마한 아픔을 주었던 아빠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훗날 조금은 용서했지만요.)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속 엄마는 훨씬 더 나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평생 가족에 치이면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은 다르지 않더라도, 결국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되니까요. 남편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을지언정 마지막 순간 그녀를 향한 순애보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신은 이 좋은 집에서 20, 30년은 더 살겠지. 집이 좋아도 신나고 재미나 진 않겠다. 나 없으면.”


특히 마지막 회에선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났죠. 아내는 자신이 죽고 나면 좋은 집에 살아도 이젠 신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화제를 전환하며 남편은 그녀에게 씻으라고 하지만, 아내는 피곤하다고 씻기 싫어합니다. 남편은 웬일로 자신이 씻겨주겠다고 나섭니다. 

욕조의 비누 거품 속에 자리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씬에 이어, 조용한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누리며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의 훌륭한 변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더 리더>의 원작 소설이지요.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60페이지 중에서


 남편은 『책 읽어주는 남자』의 이 구절을 골라서 읽어줍니다. 말 그대로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읽어주는 책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1995년 출간했는데요. 두 연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홀로코스트의 비극, 역사의 반성과 세대를 넘나드는 고통이라는 키워드들 안에서 촘촘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위의 구절은 청년 마이클이 한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때의 기억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머물고 싶어서 오랫동안 책을 읽던 마이클의 심정과 드라마 속 남편의 처지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런 순간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의 기쁨과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책 읽어주는 남자』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 끝에는 이별과 죽음이 있습니다. 뒤이어 읽어주는 책의 구절은, 마이클과 한나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채 자신의 벌을 감내해야 했던 한나.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이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도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다. 이미 벨이 두 번이나 울린 상태였다. 다른 여자들은 벌써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잘 가, 꼬마야.”

“당신도 잘 있어요.”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249페이지 중에서


운명적인 이별을 직감하는 그 순간, 우리들은 그 또는 그녀와 처음 사랑에 빠졌던 ‘꼬마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왜 좀 더 일찍 마지막 회 같은 애틋한 시간들을 더 많이 갖질 못했을까요? 왜 세월의 무게감과 먹고사는 일에 그다지도 쫓기면서, 자신의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걸까요?

  

왜 자식들은 엄마의 힘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그렇게나 괴롭히며 자라왔던 걸까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사랑과 이별, 죽음을 그린 드라마와 영화, 책을 찾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못 다한 회한이 남아서 우리를 울게 만들지만, 우리는 또 다시 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고, 그/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이 남아있음을 감사하며….

  

“잘 가, 꼬마야.”와 “당신도 잘 있어요.”라는 말을 주고받을 시간이 언젠간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유죄’일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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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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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세계 - 80가지 나무에 담긴 식물과 사람 이야기
조너선 드로리 지음, 루실 클레르 그림,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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