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 회를 보며 폭풍오열하셨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다음날이 걱정될 만큼 눈물을 철철 흘렸고요. 드라마를 보셨던 대부분의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결국 엄마(원미경 분)는 아빠(유동근 분) 곁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떠납니다. 참 아픔 많았던 그녀의 한 생도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겠지만, 또 어쨌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너 다 잊어버려도, 엄마 웃음도, 얼굴도 다 잊어버려도, 네가 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건 잊으면 안 돼.”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최민호 분)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아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죠. 엄마는 이어 딸(최지우 분)에게 "사랑해. 너는 나지, 나는 너고. 알지, 그거?"라고 말하고 함께 통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참 아픔 많고 눈물 많았던 엄마를 잃었거나, 언젠가는 잃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 아픔과 한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요?
우리들이 모두 누군가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 ‘너는 나이고, 나는 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만큼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따뜻한 안도감을 전해 줍니다. 그녀는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너무나 당연하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엄마를 그런 존재로 완성시켜 주는 아빠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아빠와 엄마의 로맨스,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사랑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였기 때문에 우릴 그토록 사랑해줄 수 있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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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희경은 평생 동안 엄마를 배신하고 어마어마한 아픔을 주었던 아빠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훗날 조금은 용서했지만요.)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속 엄마는 훨씬 더 나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평생 가족에 치이면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은 다르지 않더라도, 결국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되니까요. 남편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을지언정 마지막 순간 그녀를 향한 순애보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신은 이 좋은 집에서 20, 30년은 더 살겠지. 집이 좋아도 신나고 재미나 진 않겠다. 나 없으면.”
특히 마지막 회에선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났죠. 아내는 자신이 죽고 나면 좋은 집에 살아도 이젠 신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화제를 전환하며 남편은 그녀에게 씻으라고 하지만, 아내는 피곤하다고 씻기 싫어합니다. 남편은 웬일로 자신이 씻겨주겠다고 나섭니다.
욕조의 비누 거품 속에 자리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씬에 이어, 조용한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누리며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의 훌륭한 변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더 리더>의 원작 소설이지요.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60페이지 중에서
남편은 『책 읽어주는 남자』의 이 구절을 골라서 읽어줍니다. 말 그대로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읽어주는 책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1995년 출간했는데요. 두 연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홀로코스트의 비극, 역사의 반성과 세대를 넘나드는 고통이라는 키워드들 안에서 촘촘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위의 구절은 청년 마이클이 한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때의 기억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머물고 싶어서 오랫동안 책을 읽던 마이클의 심정과 드라마 속 남편의 처지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런 순간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의 기쁨과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책 읽어주는 남자』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 끝에는 이별과 죽음이 있습니다. 뒤이어 읽어주는 책의 구절은, 마이클과 한나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채 자신의 벌을 감내해야 했던 한나.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이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도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다. 이미 벨이 두 번이나 울린 상태였다. 다른 여자들은 벌써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잘 가, 꼬마야.”
“당신도 잘 있어요.”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249페이지 중에서
운명적인 이별을 직감하는 그 순간, 우리들은 그 또는 그녀와 처음 사랑에 빠졌던 ‘꼬마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왜 좀 더 일찍 마지막 회 같은 애틋한 시간들을 더 많이 갖질 못했을까요? 왜 세월의 무게감과 먹고사는 일에 그다지도 쫓기면서, 자신의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걸까요?
왜 자식들은 엄마의 힘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그렇게나 괴롭히며 자라왔던 걸까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사랑과 이별, 죽음을 그린 드라마와 영화, 책을 찾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못 다한 회한이 남아서 우리를 울게 만들지만, 우리는 또 다시 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고, 그/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이 남아있음을 감사하며….
“잘 가, 꼬마야.”와 “당신도 잘 있어요.”라는 말을 주고받을 시간이 언젠간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유죄’일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