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이란 소설
주이란 지음 / 글의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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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은 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읽고서 시간이 지나 책의 느낌을 적으면서 소설집에 들어 있는 다른 소설들은 기억이 없고 단지 『혀』라는 소설의 제목만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서평을 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도둑이 내 보석을 가져갔어요. 이렇게 생긴 것이요 하고 하고 내미는데 보니 돌맹이…” 라는 얘기가 와 닿는다. 신인 작가의 어설픔 때문 일까 먼저 읽은 조경란의 『혀』를 읽고 나서 인지 그 느낌이 이 소설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소설의 핵심 주제인 혀에 대한 느낌은 와 닿는다. 동명의 두 소설은 서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표절 논란을 떨쳐버리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작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출품작을 표절하여 각색하였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신빙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신인작가의 덜 세련된 소설을 심사 했던 심사위원이 본 작품을 떨어트리고, 그 소설의 주제를 보다 치밀한 이야기로 만들어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다는 얘기는 쌩뚱맞는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표절에 대한 얘기를 전제로 하여 누가 원작이고, 누구의 것이 얼마나 어떻게 표절이 되어나 하는 얘기를 전제로 읽는 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함이 있다. 그것도 작가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본인이 심사한 출품작에서 착안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 착안의 뒷얘기를 밝혀 그 떳떳함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조금은 어설픈 소설이 유명 작가의 표절시비로 읽어 보게 만드는 노이즈마케팅과 같은 홍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좀더 세련되고 재미난 소설을 많이 많이 써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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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절규
안나 이즈미 지음, 황소연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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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들을 각색하여 나름의 이야기로 풀어 냈다고 한다. 허나 책의 내용을 보면 안데르센의 동화를 옮겨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단지 동화의 끝에 작가의 부연 설명을 붙여 놓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과연 나는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를 보았나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본문에 나오는 9개의 단편 동화들—인어공주, 엄지공주, 빨간구두, 성냥팔이 소녀 등—의 원작을 어린이 동화로 많이 알려지고 책으로, 영화로, 이야기로 전해지기는 했지만 정작 안데르센이 썼다는 원작 동화는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단지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이해하기 쉽게 라는 이유로 원작을 다양하게 각색하여 전해주고 있기에 그 원작의 내용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갑자기 해 본다.

     이런 의문을 해 보는 중에 많은 내용은 책으로 읽은 것보다는 TV화면으로 보여진 디즈니 만화영화로 봤다는 기억이 난다. 원작의 내용이라는 것 보다는 예쁜 만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고 들으니 원작의 이야기의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정작 동화를 쓴 작가의 의도와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책에 실린 내용 또한 원작을 옮겨 놓은 건지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약간을 각색하여 옮겨 놓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외국동화를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배려(?) 한다고 나름의 내용으로 각색하여 출간했거나, 만화나 영화로 바꿔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변질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과연 안데르센이 동화작가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위해 쓴 작가였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인명사전을 찾아 보면 덴마크의 동화작가라고 나온다. 그리고 유명한 동화작가로 나오는데 그에 대해 의문을 갖기 보다는 원작의 내용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쓴 내용이 우리가 접하는 예쁜, 좋은 얘기만을 하는 이야기로 쓰여 졌느냐는 의문이다. 어린이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책은 무조건 예쁘고, 착하고, 좋고, 씩씩한 이야기만 들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각색되어진 이야기는 아닐까? 이 책 『안데르센의 절규』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이 안데르센 개인의 인생 경험이 묻어난 이야기로 때로는 슬프고, 이루지 못할 사랑이야기나 어떨 때는 폭력적인 내용도 실려 있는 것을 우리는 예쁘게 각색된 내용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연상하게 한다. 18세기의 영국의 정치현실을 비꼬는 소설인데 내가 처음 접한 내용은 동화로 신기하고 이상한 세상을 여행하는 탐험기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당시 상황과 소설을 쓰게 된 생각의 의미 보다는 ‘어린이를 위한 탐험기’의 느낌으로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일하게 안데르센의 동화들도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들에게 전달되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책에 소개된 각색된 안데르센의 동화와 저자의 설명을 곁들여 보면서 이 원작 동화의 작가 안데르센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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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엔진 - 나노기술의 미래 김영사 모던&클래식
에릭 드렉슬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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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의 엔진』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나노기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노기술은 미시의 세계의 기계, 물질 등에 대한 각종 기술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노(nano)는 고대 그리스에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길이의 단위로 10억분의 1미터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원자의 크기, 거리를 다룰 때 사용하는 단위로 수소원자가 1옹스트롬(angstrom, 10-8승 센티미터)이라고 하니 10나노미터의 거리가 되겠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이를 우리의 삶에 이용할 수 있는 세계의 얘기는 흥미롭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약간은 허황됨을 느끼게 된다. 미래의 가상의 세계를 얘기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개발되지 않은 신기술에 대한 내용을 예측하는 것은 어떤 내용이라도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과거 자동차에 대한 생각이나 컴퓨터에 대한 생각도 동일한 상상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책에서 설명하는 나노엔진에 대한 내용 또한 동일한 생각의 결과물이지 않겠나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분야별 나노엔진에 대한 설명은 너무 만능의 기계를 얘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예로는 컴퓨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만능이라고는 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본으로 하는 전제가 갈려 있다. 동일하게 나노기술에 대한 내용 또한 그런 맥락에서 사람에게 영원한 삶을 안겨주는 것과 같은 신기술이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사람을 대신하는 각종 기술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사람을 대체하는 기계로 인식 되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람의 본질에 대한 역할까지도 컴퓨터가 하는 것이 아닐까?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런 류의 상상의 끝에는 결국 인간성 회복에 대한 결론과 바램으로 끝이 나기는 하지만 컴퓨터 관련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바램과 같이 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노기술도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와 나노기술의 접목은 지금의 사람의 본질을 배재한 인공의 창조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만능의 신기술이기에….


     책 속에 소개하는 많은 기술적인 내용이 먼 미래 또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소개된 내용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어떤 내용은 책의 내용과 같이 전개될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기도 하겠다. 또 다른 내용은 우리의 상상의 방향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어 또 다른 과학기술의 발전의 씨앗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과정이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내용은 제목과 같이 창조의 엔진이라는 말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나노기술에 대한 조목조목 들려주는 기술에 대한 내용 보다는 앞으로의 우리가 접하게 될 신기술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한다.


     이런 기술의 발달의 끝은 인간성 회복이 되는 걸까? 아니면 원시로 돌아가는 것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얘기는 책에서만 들려 주는 것은 아니고, 신문지상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나노기술에 대해 단편적인 사례들이 하나하나 발표되고 있다. 이런 발표들이 모이면 결국 책의 내용이 실현될 것이다. 책의 신 기술이 만들어지고 나서 사람에 대한 본질을 생각한다는 것은 늦을 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고 나서 발견하고 만들지는 않지만 신 기술에 의해 파생되는 그 결과는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해 봐야 할 내용일 것이다. 과연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 바람직한 내용인가에 대해서는 신 기술의 개발 못지 않게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과제이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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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인 2012-05-03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청주가경약국에서 개발해 특허까지받은 모려생약이

미래의신기술입니다.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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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얘기 한다면 “우리들에게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하겠다. 대한민국이 나약하여 나라를 잃고, 가족을 잃고, 시간과 젊음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간도 땅에 강제 징병으로 끌려가 갖은 고생과 노역을 당하고 그리던 고국을 찾아왔지만 간첩으로 내몰리고 환대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일본군의 부족한 인력을 대신할 징병과 전쟁이 끝나고 나서 군사대국에 대한 전쟁보상개념의 강제노역을 거치고, 우여 곡절 속에 귀국하여 겪는 이야기 내용이다. 이에 해당하는 인원은 몇 십만의 인원이지만 살아서 고국의 가족과 재회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이들이 자체 구성한 「시베리아 삭풍회」의 이야기다. 삭풍회의 구성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위안부 할머니’와 비슷한 상황인데, 남자냐, 여자냐가 다르고 그들의 비극은 동일하게 느껴 진다. 단지 삭풍회 회원들은 남성들로 강제 징병의 대상이었으며, 시베리아 강제 노역을 당했다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와는 다르겠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일 방송에 이들의 이야기가 기사화 되어 나오기에 주워들은 이야기가 삭풍회 회원들 보다는 더 잘 알려져 있다.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다양한 인원이 소개되고 있다. 10대에서 20대 초반에 강제 징병으로 만주의 간도 땅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부족한 인력을 대신으로 고생한 것은 대부분 동일하나 강제 노역을 거치고 귀국한 이후 6.25를 겪으면서 다양한 인생의 역경을 거쳐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 중간 중간에는 친일 인물로 대표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국제적 정세, 일본의 정치적 위치, 당시 소련을 비롯한 국제정세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위정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하나는 자신들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이었고, 전쟁의 패배에 대해 국민들을 희생시키면서 보상하였으며, 전후 국민들에 대해 너무도 무책임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자신들이 유발시킨 전쟁은 억제할 수 없는 일본 국내의 상황, 국제정세와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저질러 졌으며, 이런 와중에 한국은 약소국으로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벌어진 전쟁에서 당하는 약소국의 설음은 역사시간을 비롯하여 귀가 닳게 들었던 내용이다. 그런 이 전쟁이 그들의 패배로 결말이 났으나, 그들—전쟁의 주역—은 결코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패배에 대한 대가로 승전국에 대한 보상문제가 따라가는 문제인데 이 태평양전쟁에 있어 대표적인 승전국으로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전승에 대한 노획물을 철저하게 챙기고 있으며, 그 대가로 지불한 일본은 결국 소련에 제공한 것은 당시 간도에 있었던, 한국의 강제 징병된 인원을 포함한 일본군의 노동력을 통한 시베리아 개발이었다.

     전후 일본이 보여준 자국민에 대한 시베리아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노력은 이 책에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너무도 미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황에 의한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전쟁의 주역들에 의한 패배인정이 아니기에 전쟁이 끝나 67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자신들에 재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민을 단지 전쟁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시베리아의 강제노역장에서 구출하는데 미온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이에 맞물려 한국의 위정자들 또한 이런 역사의 희생양에 대해 너무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며, 이들의 모습이 마치 위정자들의 치부인 것 같이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얘기하고 싶지 않고, 살펴보고 싶지 않고, 내 일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간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원산항을 지나 38선을 거쳐 귀향하는 그들에게는 안식이 아닌 간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고, 이어지는 6.25는 또 다른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런 세파 속에도 꿋꿋하게 이겨내서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연세가 많이 들어 이제는 그 회원들도 역사 속에 묻혀지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인식과 지원은 우리 후세들이 잊지 않고 찾아 봐야 할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보다 앞서 이들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이고 이 역사가 있게 한 우리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인식을 재 정리하고 되새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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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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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는 한 여자 주인공 한은교가 있고,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 받았던 이적요와 그의 제자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서지우가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변호사 Q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유언으로, 일기로, 느낌과 생각으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조금 색다른 구성이라 생각된다. 내용에는 살인이라는 유언의 내용이 포함 되면서 한편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와 같은 느낌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17세 젊은 고등학생과 사회적 지위가 있는 환갑을 넘긴 유명 시인과 젊은 제자와의 삼각관계의 애정물 같은 느낌을 준다. 변호사 Q는 단지 이적요 시인의 유언 집행인으로서 바라 보는 제3의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의 중심에는 은교라는 17세 소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은교를 바라 보는 노시인의 생각과 느낌, 짝사랑, 내면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으며, 노 스승을 수발하는 젊은 제자, 그렇지만 천부적 재능은 없지만 스승의 재능으로 유명 작가로 자리 올라 자신의 것인 양 하는 모습이 여느 애정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준다. 노 스승이 어린 소녀를 차지하기 위한 치정극으로 젊은 제자를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젊은 제자가 뛰어난 재능의 스승에 대한 이룰 수 없는 동성애를 비관한 자살극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학생인 여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원조교제를 다루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의 내용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며, 한편의 방송 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든다. 아니 한편의 영화와 같은 느낌이 더 크다고 하겠다. 내용 속에 묘사되는 늙은 시인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한적한 서울시 경계지역에 위치한 별장과 같은 장소에서 은퇴한 시인의 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설명은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배경 속에 등장하는 은교의 생기발랄하면서 톡톡 튀는 깜찍한 여학생의 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신세대 여배우가 떠오른다. 아마도 애정 영화나 TV드라마를 많이 봐서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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