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가락만이 알고 있다
칸나기 사토루 지음, 오다기리 호타루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을 좋아라하고 즐겨보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다.


“어떤 만화가 재미있어?”

“재미있는 만화 추천 좀 해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약간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당혹감이 앞선다. 내가 추천한 만화책을 맘에 들어 하면 다행한 일이지만, 섣불리 추천했다가 그의 취향에 영 맞지 않는 작품일 경우에는, ‘만화 좋아한다더니, 너도 영 별 거 아니구나.’ 라던지, ‘만화란 게 별로 재미없구나.’ 라는 엄청난 비약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대박 난 만화의 경우, 대부분 대중의 취향이기에 그런 만화를 추천해서 별로 실패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고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한 작품을 추천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요즘 뜨고 있다는 소위 말하는 BL 류의 만화는 솔직히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있으면 보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서 볼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BL을 싸잡아서 매도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한때 엄청난 열광과 환호를 보냈던 <열왕대전기> 같은 작품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은근한(실은 매우 포괄적으로) BL적 요소가 다분한 작품임으로 전혀 취향이 아니라고 하긴 또 뭣하다. 어쨌든 이렇게 긴 서론을 쓰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소견으로 BL을 즐기는 독자들을 다소 언짢게 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두고 싶어서다.


표지가 풍기는 므흣하고 야리쏭쏭한 분위기와 이 만화의 제목 <그 손가락만이 알고 있다>는 BL을 즐기지 않는 내가 보기에도 전형적인 학원 BL의 분위기가 팍팍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교복과 야리야리한 몸짓은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 만화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케 한다.


단정한 용모와 명석한 두뇌, 키도 크고 인망도 두텁고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절한 마치 그림에 그린 듯한 완벽한 학원 제일의 우등생 카즈키 유이치. 그와 반지가 바뀌는 바람에 갑자가 가까워진 와타루. 놀랍게도 와타루가 즐겨 끼는 반지가 카즈키 유이치와 똑같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유이치는 왠지 모르지만 와타루에게만은 심술궂고 쌀쌀맞게 대한다? 


이 정도의 줄거리는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뒷 표지에 아주 상세하게 쓰여져 있다. 물론, 이 줄거리에서 와타루의 성별만 바꾼다면 아주 평범한 학원 연애물이 되고 말거다. 순진하고 귀엽지만 나름 한 성질 하는 여학생 와타루와 완벽한 우등생 유이치가 우연한 계기로 부딪치게 되고, 어쩐지 유이치는 와타루에게만 쌀쌀맞게 대하는데 알고 보니 오래 전부터 유이치가 와타루를 맘에 두고 있었던 것. 둘은 결국 연인사이가 된다는……. 평범하다 못해 질릴 정도가 된 식상한 연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의 성별만 아주 살짝 바꾼 정도로 극의 분위기는 대번 틀려진다. 와타루와 유이치는 가까워질듯 하면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둘 사이의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되는 것이다. 남자와 남자가 연애를 하건 여자와 남자가 연애를 하건 연애를 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긴데, 어째서 이렇게 BL이라고 장르까지 만들어놓고 거기에 열광하는 걸까? BL을 즐겨 보는 독자는 절대적으로 여자가 우세에 있는데(그것도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자), 그들은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이건 흔하지도 않다)엔 별 반응이 없지만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야기에는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진한 미련일까? 여자로 태어나 성전환을 하지 않는 이상은 남자가 될 리 만무하고, 설사 성전환을 하더라도 남자와 사랑을 하기 위해 성전환을 하는 경우는 없지 않나? 그러므로, 자신이 될 수 없고 되고 싶지는 않지만 철저한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BL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남-녀 사이의 연애 이야기는 본인이 할 수도 있고, 또 식상할 정도로 많이 보아서 질려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와타루와 유이치의 똑같은 반지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와타루와 유이치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 BL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단순하고도 놀라운 이야기 구조에 있는지도 모른다. 기-승-전-결이 있는 철저한 이야기 만화와는 달리 놀랍도록 한 가지 주제만을 향해 달려간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이들의 사랑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래서? 와타루와 유이치는 어떻게 된 건데? 그런 정도의 결말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 손가락만이 알고 있다>는 BL을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다소 꺼리는 독자일 지라도 별 거부감 없이 읽혀지는 만화다. 앞서 밝혔듯이, 와타루의 성별만 바뀐다면(여자 유이치는 상상이 안 된다. 몇 편의 BL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는데, 어째서 BL 만화에서 성역할이 더욱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평범한 학원 연애물이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다음 번엔 좀 더 심오하게 쓸 수 있도록 다른 작품들도 탐독해 보아야 겠다. 이러다 빠지는 건 아닐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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