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과 카페, 모던 보이의 아지트 살림지식총서 342
장유정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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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몰아서 쓰다 보니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문제로군요.

근대 혹은 식민지 시기에 대한 책은 살림 총서에서 꾸준히 나오는 편이죠. 필진에 따라 그 내용이나 질에 차이를 보이지만 좋은 읽을거리임에 분명해요. 이 책은 근대 조선에 도입된 다방과 카페에 대한 역사와 비교, 문화적 역할, 마지막으로 거기에서 일하던 '여급'에 대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어요. 제목과는 달리 '모던 보이'가 이 책의 주가 아님을 지적하고 싶어요. 지면이 적어서 그런지 살림 지식 총서 중에는 이렇게 제목과 내용이 걸맞지 않은 책들이 제법 보이죠.

책에 따르면 당시의 다방과 까페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전혀 반대의 모습예요. 다방은 '차 마시는 기분을 파는' 모던 보이들의 끽다점 역할을 하며, 혼재된 해외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근대적(당시로서는 최신 유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대요. 어딜 가나 '된장人'은 있기 마련. :) 반면 까페는 주류를 여급 --- '까페 걸'의 시중을 받으며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당시에는 퇴폐의 상징이었다고 하네요.

이 책은 후반부에 가서 다방의 '여급'과 까페의 '까페 걸'에 내용이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모던 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었다면 이에 대한 내용을 줄였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혹은 아예 제목을 까페 걸로 바꾸고 그쪽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도 재미있었을 거예요. 아쉽지만 당시의 다방과 까페의 차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 있었던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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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와 바알 살림지식총서 42
김남일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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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 책 맞는데 언제 왜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2006년 1월 19일이라고 도장찍혀 있네요. 고향에 휴가를 나러 가면서 들고 간 책입니다. 읽지 않은 살림 지식 총서가 있으니 이걸 읽어야죠.

책은 제목 그대로 야웨와 바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쪽에 종사하고 있는 분이신데, 아무래도 다루고 있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글을 쓰는게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보자면 야웨신앙보다는 바알신앙이 선행한다고 볼만한 여지가 많고, 야웨신앙이 덜 분포되어 있었다가 뒤늦게 퍼지게 된 것으로 볼 여지도 많이 있습니다. 상당 기간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했거든요.


바알에 대한 성서의 입장은 한마디로 그것을 우상 숭배의 상징적인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바알이 야웨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존재했던 신(우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알 숭배는 기원전 15세기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6세기 남왕국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의 역사 동안 야웨 신앙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성서 기자들의 입장은 매우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7쪽


책에 따르면 무려 1000년 정도 되는 긴 시간이죠. 물론 지금은 믿는 사람도 없으니 야매 취급해도 상관없긴 하겠죠. 기독교를 믿는 분이 기독교에 적대한 종교를 너무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줄까봐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다룬 다른 서양의 책들을 볼 때와 다르게 저자는 신앙과 학문을 선명하게 나누지 못한다는 느낌을 조금씩 받았어요. 조바심일지도 모르구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제목과 내용이 잘 걸맞고, 작은 책 안에 많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태도가 너무 조심스러워서 읽는 사람도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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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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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종말》과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함께 읽는 것을 추천 받았다. 그러나 이 두 권이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빈곤의 종말》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면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분배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과 분배는 함께 태어난 쌍둥이이지만 동일인은 아니며, 그 둘이 사이좋은 합의를 잘 이끌어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이들의 사이가 지극히 나쁘다는 것은 경제학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리라.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성장과 시장 숭배의 그림자에 대한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지적했다시피 88만원의 월급을 받던 도시 빈민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을 분배의 증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88만원 도시 빈민의 월급 외의 것도 함께 상승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성장하여 금전적으로 빈곤은 종말을 향해 한발짝 다가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뤄진 분배는 없다. 그것을 다룬 것이 이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고 《빈곤의 종말》의 제프리 삭스가 발끈했다는 소문도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책은 상충하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라고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나. 왜 불평등한 분배가 일어나는데 대한 통찰은 두 저자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그 역시 공정 분배를 위해 전지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에게도 이것은 아주 민감한 주제일 것이다.



이 책의 사소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는 '슬럼'이 무엇인지 한국의 독자에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슬럼의 사례와 그 슬럼의 전지구적인 명칭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 규모를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말하는 '슬럼'은 갱영화에서 나오는 도시 뒷골목 이상의 것을 포괄함이 분명한데 한국을 예로 들자면 어떠한 수준의 주거지까지를 슬럼으로 칭할 수 있는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 책이 다루는 사회 현상이 너무 방대한지라 --- 이 책의 원제는 《Planet of slums》다. --- 책을 읽다보면 숨이 찬다. 그런데 전 지구적인 슬럼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거대(때로는 불법적이기까지 한) 세력의 결탁과 폭력적인 강제 퇴거.

이 모습이 우리 삶에서도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계시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슬프다. 이 책에서 발견한 우리의 모습들을 인용하면서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


(전략)서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스쿼터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53쪽

(전략)그러나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 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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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2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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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프트》와 함께 사서는 《기프트》만 읽고 고이 챙겨 두었다가 《파워》를 산 김에 읽기 시작했죠. 굉장히 빨리 읽었어요.

이 이야기는 책을 두려워하는 야만적인 침입자들의 공격을 받아서 자신들의 책과 역사와 관습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아...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근래에 본 르귄의 책 중 가장 좋아요. 글의 속도나 이야기 자체, 분위기, 결말까지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어요. 르귄의 책은 아무래도 좀 느리다는 평가가 있지요. 너무 느려서 갑갑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책은 확실히 속도가 괜찮아요. 캐릭터들도 너무 내면으로 숨으려고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있고요. 이야기 자체도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서부해안 연대기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좋고, 《기프트》나 《파워》나 비슷한데 굳이 순서를 잡자면 기프트예요. 서부해안 연대기는 《기프트》의 주인공이 2권과 3권에도 엑스트라로 나온다는 점 외에는 아무 연관도 없으니 르귄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면 이것만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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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3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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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이야기를 바꿔서, 서부해안 연대기의 표지 중 어느 쪽이 최악인가 생각해 보면 뭐 세 권 중 어느 쪽이든 별로이긴 하지만 《파워》쪽이 가장 구제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듣는 입장에서는 "뭣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별로 읽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가장 강렬하달까요. ...


《파워》주인공이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납치되어, 날적부터 노예로 길러진 남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야기의 시점에서 어머니는 나오지 않고, 함께 납치된 누이와 한 가문에서 노예로 지내고 있죠. 날적부터 노예였고, 바깥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소년은 현실에 순응하고 저항하려하지도 않아요. 어느 정도의 적당한 인생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죠. 그러던 평화가 깨어지고, 소년은 도망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깨닫는 이야기가 이 《파워》예요. 나쁜 이야기는 아닌데 아주 힘든 이야기죠. 특히 지금 이 책을 읽을 법한 독자 중에서 노예이거나 였던 이도 없을 것이고, 노예제도에 대해서 찬성하는 이도 거의 없겠죠. 그래서 더욱 힘듭니다. 책이 절반을 가도 주인공은 아직 자유에 대해서 모르고 안주하려고만 해요.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겠죠. 읽고 난 후 주인공의 자유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주인공에게는 이제 시작이겠죠.

학교, 학생, 성실한 소년, 따돌림, 도피, 이런 키워드로 인해서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좀 생각 났더랬죠.





지금 와서 감상을 적으며 생각해 보면 저도 그런 경향을 요즘 보이는 것 같아요. 현실에 안주하고, 애써 현실에서 눈을 돌려 버리려고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 목소리에도 귀 닫고 있었던 것 같고요. 이젠 이러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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