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전략)
〈중외일보〉1925년 6월 7일자 1면 머리기사가 잘 보여주듯 다산多産 때문에 '생지옥'이 되어버린 한반도의 일반 가정은 산아제한을 안 할 수 없는 처지였다. 1920~1940 사이에 경제활동 가능 인구의 24.3%만 고용 기회를 얻은 상탱서 한 여성이 평균 6명의 자식을 낳다보니 가정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그러다 보니 군입을 덜기 위한 낙태, 기아棄兒, 영아 살해까지 자행되곤 했다.

빈곤과 실업이 한데 엉겨 가정이 엉망이 된 데다 인구는 수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우생학적 인식이 퍼지면서 산아제한에 대한 관심은 커져갔다. 신문과 잡지들은 산아제한을 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알려나갔다. 경제적 빈곤을 완화하고, 자녀 모두를 충실하게 양육하고, 열등한 자녀를 낳지 않고, 모체를 건강하게 하고, 출산과 육아 부담을 덜어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아이를 덜 낳자는 게 요지였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13쪽-114쪽

산아제한론은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일제의 인구정책과 정면충돌했다. 일제는 조선을 합병할 때부터 다산을 적극 옹호했다. 식민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 현장과 전쟁터에서 필요한 인적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제가 서구식 보건의료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산 못지 않은 다사多死 풍토를 해결함으로써 사망률은 낮추되 출생률은 높여나가고자 했다. 그 결과 1910년 이전만 해도 연평균 0.2~0.3%를 유지하던 인구 증가율은 2%선으로 뛰었다. 인구의 자연증가 속도는 7~10배 빨라졌다.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였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18쪽

중일전쟁(1937)의 발발로 본격적인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인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산아제한을 금지하고 암묵적으로 다산을 장려하던 일제는 노골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인적 자원에 관한 업무를 담당할 기관으로 우생국까지 신설했다.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123쪽

1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독서를 시작했더니 또 머리가 굳은 것 같습니다. 도구들에 생각을 지배 당하는 것인지 단문으로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익숙해지지만, 장문을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 감상문을 쓰기 위해 몇 일이나 에버노트를 껐다켰다 했으니까요.

이 책은 쉬엄쉬엄 3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주제에 따라 여러 광고를 묶어서 보여주고, 총 22가지 테마로 한 테마는 10여쪽 내외이므로 짧게 짧게 읽을만 합니다. 본래는 신문의 기획 기사였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만 해도 일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일제시대라고 하면 막연하기만 하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국사 시간을 거치면서 분노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건 그것 뿐입니다. 열렬한 독립 운동의 앞면에는 민중의 삶이 있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아마도 덜 격렬한 만큼 덜 관심이 가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나이를 먹으니 소소한 삶에 관심이 생깁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제 시대가 더러워도 밥은 먹어야 하고, 물 건너에서 유행한다는 신식 간식이 나왔다고 하면 그런 것도 관심이 갑니다. 돈이 없어도 라디오라는 것이 나왔다고 신문에서 말하니 한 번쯤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신녀성들이 백화점에 가서 한껏 구경하고 다방을 간다고 하니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비웃는 것도 꽤 역사가 깊은 일이더군요.

민중은 그런 것들을 신문으로, 광고로 알음알음만 합니다. 계산을 해 보면 이런 신문물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분명 있었고요. 뭐 친일파로 살면서 호의호식 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겁니다. 일제 덕분에 이런 재미도 보고 했겠지요. 그러다 보니 일제 시대의 경제 성장만 눈에 보이나 봅니다.

광고란 꽤 사회를 비추는 것이더군요. 재미있었습니다. 모리나가라든가 아지노모토 같은 이름들이 벌써부터 등장하는 걸 보면 씁슬하기도 하구요. 가볍게 읽을만한 근대사 책이 필요하시다면 추천합니다. 저도 여기서부터 가지를 뻗어나갈 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물품들을 가지고 나는 프란체스카 지노, 마이크 노턴 하버드대학 교수와 함께 짝퉁 상품을 소지한 사람들이 진품을 소지한 사람들과 정말 다른 느낌을 갖고 또 다르게 행동하는지 실험했다. 우리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짝퉁 상품은 피실험자로 하여금 진정성을 덜 느끼게 만들고, 또 이런 감정 때문에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피실험자들이 짝퉁 상품을 소지하는 행위가 자기 이미지를 손상한다고 느낄 경우 자기 자신을 보다 덜 정직한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우리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부정적으로 물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행위의 길로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걸어가지 않을까?
(중략)
이런 의문을 풀고자 우리는 피실험자들이 선글라스의 진품 여부와 관련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않는 집단을 따로 설정했었다. 짝퉁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않는 집단의 여자와 동일한 규모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치자. 만약 그렇다면 짝퉁이라는 조건 때문에 피실험자가 평소보다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 것은 아니고, 진품이라는 조건이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평소보다 더 높은 도적성을 발휘하게끔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진품 선글라스를 쓴 집단의 여자가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않는 집단의 여자와 동일한 규모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진품 조건 때문에 피실험자가 평소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발휘했다고 불 수 없고, 짝퉁 조건이 부정행위와 도덕성의 규모를 좌우하는 유일한 인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 진품 조건과 짝퉁 조건에서 각각 실험자의 30퍼센트와 73퍼센트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데 반해, 제3의 조건, 즉 선글라스의 진품 여부와 관련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않은 집단에서는 피실험자의 42퍼센트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 집단의 부정행위 수준은 진품 집단의 부정행위 수준에 더 가까웠다(실제로 이 두 조건 집단의 결과는 통계적인 의미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결과는 다음의 가설을 지지했다. 진품 조건이 사람들의 정직성을(적어도 크게는) 증가시키지 않지만 짝퉁 상품을 쓰면 사람들의 도덕적인 자제력이 해이해지고, 따라서 사람들은 부정행위의 어두운 길로 더 많이 접어들게 된다. (하략)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159쪽-162쪽
이 책에는 흥미로는 행동실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중을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어서 이 실험들이 학술적으로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 좀 염려되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의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 놀라운 실험 결과는 없습니다. 우리가 익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실험실에서 검증되어 가는 과정이 재미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약 20% 정도의 양적 부정을 저지릅니다. 이 정도면 ‘사소하지’라고 생각되는 정도의 부정을 저지르며, 부정이 들킬 염려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부정의 빈도가 늘어납니다. 다른 사람도 다 부정하다고 생각하면 부정의 양은 극심하게 증가하고,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국외자로 판단될 때, 부정의 전염은 차단됩니다.

이것들은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실험실에서 검증되었다는 것만 빼면요.

여기서 부정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매트릭스 실험이라고 하는 것을 수행하는데, 3*4 표에 있는 12 숫자 중 합해서 10이 되는 숫자를 찾는 것으로 표를 여러 개 제시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그 중에서 정답을 몇 개까지 찾을 수 있는가를 테스트 합니다. 그리고는 답지를 파기한 후 몇 개를 맞췄는지 피험자가 직접 대답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정답의 개수에 따라 실험참가비를 지급합니다.

실험자가 답지를 직접 확인하는 경우와 피험자가 답지를 파기하고 자신의 점수를 말하는 경우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의 정답량을 약 20% 정도 부풀려서 대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부분은 이 지점 “이 정도는 괜찮겠지”가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경우를 놓고, 사람의 “이 정도” 지점이 위치하는 곳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금전적인 이득,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일 때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인용한 케이스의 경우는 또 신기하게도 짝퉁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판단력도 흐려지네요. 짝퉁 제품을 아무렇지 않게 선택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닌, 학교 학생들을 불러 클로이의 선글라스를 지급하고, 1/3에게는 이 선글라스가 진품이라고 말하고, 1/3에게는 짝퉁이라고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즉 선글라스의 정품 여부가 사람들의 도덕성에 영향을 주는 실험이지요. 사람들은 단지 자기가 쓰는 물건이 불법적으로 제조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덜 도덕적이 될 수 있는 이 결과에 대해 “어차피 이렇게 된 거(what-the-hell)”라고 표현 하더군요.

이걸 읽다 보면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격무에 연관이 있겠다 싶더군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여유가 더 주어진다면 다른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에서 지적하는 도덕적인 문제로 진행한 업무 부풀리기, 근무 시간 늘리기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깜짝 놀란 한 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적은 저녁 값이라도 받기 위해 괜히 야근을 더 하기도 하고요(그 시간엔 웹서핑 등의 회사 일과 상관 없는 일을 하죠).

저는 계속된 격무로 인해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떠나서 제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바쁜데 그런 작은 버그 하나 별 거 아니잖아?”, “이렇게 업무가 많았는데 오타 몇 개 정도를 빼고는 문제 없으니 잘했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기 변명을 하고 있어요. 당장의 생계도 문제지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실수나 정당화를 당연히 하는 나를 보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들 때 읽을 만한 책입니다. 당장 나 자신을 정당화 하는 논리가 아닌 나 자신의 삶이 어디쯤 와 있는지, 도덕적 해이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는 용도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 문장 자체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각주가 최소화 되어 있고(한 페이지가 전부!), 제시한 예시들이 매우 적절합니다. 원제는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로 저자의 센스나 유머 스타일이 보이는 제목입니다. 대중서로서 아주 훌륭합니다.
내 친구이자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발레센Edward Balleisen은 곧 출간 될 자신의 저서 《호구와 사기꾼 그리고 양면성Suckers, Swindlers, and an Ambivalent State》에서 기업계가 신기술의 한계를 넘을 때마다(그 신기술의 발명품이 우편업무든, 전화든, 라디오든, 컴퓨터든 혹은 주택저당증권이든 간에) 이러한 발전 덕분에 사람들은 기술과 부정행위 양쪽 모두의 한계선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 신기술이 한층 더 개발되고 이의 사용이 정착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소동은 끝난다. 그제야 이 신기술을 사용하는 데 바람직한 방식들이 무엇이며 또 지양해야 할 고약한 방식들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는 미국 우편업무의 초창기 활용방식 중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판매하기 위한 것, 즉 우편 사기 행위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우편 사기의 문제점은 강력한 규제로 해결됐고, 덕분에 지금은 높은 품질과 효율성 그리고 신뢰가 우편업무에 자리 잡았다. 이런 관점에서 기술 발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창의적인 사기꾼이 진보와 혁신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던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한다. (하략)
238쪽-239쪽

오래전에 나는 자동판매기를 한 대 샀다. 가격 책정 및 할인과 관련된 일련의 실험을 진행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주 동안 동료인 니나 마자르와 나는 이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고정된 할인금액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개연성이 있는 할인 금액을 제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탕 한 봉지의 가격은 1달러로 책정돼 있다. 그런데 어떤 구멍들에게서는 30퍼센트를 할인해서 팔고 또 어떤 구멍들에서는 할인이 없는 대신 30퍼센트 확률로 1달러를 되돌려주는, 즉 공짜로 사탕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설정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할 것이다. 놀라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후자의 방식이 전자에 비해 매출이 세 배 가까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실험의 주제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내용 과 거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 돈을 되돌려받게 한다는 설정은 부정행위에 대한 또 다른 실험을 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248쪽-249쪽

플라톤은 “기게스 왕의 신화Myth of the King of Gyges”에서는 기게스라는 이름의 목동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신기한 반지를 얻는다. 기게스는 이 반지의 힘을 빌려 범죄를 저지르기로 맘 먹는다. 그는 왕궁으로 들어가 왕비를 유혹해 왕을 죽이도록 사주한 뒤 왕권을 찬탈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플라톤은 보이지 않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에 맞서 살아남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못하도록 막아주는 도구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위협밖에 없는지 묻는다. J. R. R. 톨킨John Ronald Reuel Tolien은 이 주제를 파고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탄생시켰다.
278쪽-279쪽

나는 이스라엘에서 성장했으므로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덕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나는 이스라엘인이 미국인보다 부정행위를 더 많이 한다고 확신했다). 결과는 매트릭스 실험에서 이스라엘인 피실험자들이 미국인 피실험자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중국인 동료 셜리 왕 Shirley Wang은 중국인이 미국인보다 부정행위를 더 많이 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중국인의 부정행위 수준은 미국인의 그것과 동일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프란체스카 지노 역시 이탈리아인이 미국인보다 부정행위를 많이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탈리아에 한 번 가보시죠. 부정행위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추정 역시 빗나갔다. 우리는 터키와 캐나다 그리고 영국의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해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이런 결과에 비춰볼 때 부정행위의 규모는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때까지 우리가 실험을 한 국가의 국민들은 그랬다.
302쪽-303쪽

표절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대학에서 표절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아시아 및 중동의 문화권에서는 이 행동이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포커 게임과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이들 문화권에서는 부정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행위가 발각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와 유사하게 어떤 문화권에서는 탈세, 불륜, 불법 다운로드, 한산한 교차로에서 적색 신호 무시하기 등과 같은 부정행위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런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한다.
304쪽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미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재정립하고 더불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효과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들을 갖고 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에서부터 유대교의 욤 키푸르(금식과 속죄기도를 하는 속죄일ㅡ옮긴이)와 이슬람교의 라마단, 심지어 한 주에 한 번씩 지키는 안식일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 시작하는 여러 가지 제의 형식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해 타락한 생활을 중단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기회로 삶을 수 있다(종교를 믿지 않는사람조차도 새해에나 생일에 혹은 직업을 바꾸고 새로 시작할 때나 실연을 당했을 때 새로운 결심을 한다. 이런 것들 역시 ‘새로운 시작의 기회’인 셈이다).
최근에 나는 동료들과 함께 이런 다양한 새 출발들의 효용성에 대한 일련의 실험들을 시작했다(이 실험들은 천주교의 고해성사 형식을 빌리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방법을 도구로 사용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이런 방법들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를 매우 성공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도덕적 기준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 같다.
310쪽-3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웨와 바알 살림지식총서 42
김남일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산 책 맞는데 언제 왜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2006년 1월 19일이라고 도장찍혀 있네요. 고향에 휴가를 나러 가면서 들고 간 책입니다. 읽지 않은 살림 지식 총서가 있으니 이걸 읽어야죠.

책은 제목 그대로 야웨와 바알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쪽에 종사하고 있는 분이신데, 아무래도 다루고 있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글을 쓰는게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보자면 야웨신앙보다는 바알신앙이 선행한다고 볼만한 여지가 많고, 야웨신앙이 덜 분포되어 있었다가 뒤늦게 퍼지게 된 것으로 볼 여지도 많이 있습니다. 상당 기간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했거든요.


바알에 대한 성서의 입장은 한마디로 그것을 우상 숭배의 상징적인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바알이 야웨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존재했던 신(우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알 숭배는 기원전 15세기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6세기 남왕국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의 역사 동안 야웨 신앙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성서 기자들의 입장은 매우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7쪽


책에 따르면 무려 1000년 정도 되는 긴 시간이죠. 물론 지금은 믿는 사람도 없으니 야매 취급해도 상관없긴 하겠죠. 기독교를 믿는 분이 기독교에 적대한 종교를 너무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줄까봐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다룬 다른 서양의 책들을 볼 때와 다르게 저자는 신앙과 학문을 선명하게 나누지 못한다는 느낌을 조금씩 받았어요. 조바심일지도 모르구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제목과 내용이 잘 걸맞고, 작은 책 안에 많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태도가 너무 조심스러워서 읽는 사람도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곤의 종말》과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함께 읽는 것을 추천 받았다. 그러나 이 두 권이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빈곤의 종말》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면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분배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과 분배는 함께 태어난 쌍둥이이지만 동일인은 아니며, 그 둘이 사이좋은 합의를 잘 이끌어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이들의 사이가 지극히 나쁘다는 것은 경제학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리라.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성장과 시장 숭배의 그림자에 대한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지적했다시피 88만원의 월급을 받던 도시 빈민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을 분배의 증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88만원 도시 빈민의 월급 외의 것도 함께 상승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성장하여 금전적으로 빈곤은 종말을 향해 한발짝 다가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뤄진 분배는 없다. 그것을 다룬 것이 이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고 《빈곤의 종말》의 제프리 삭스가 발끈했다는 소문도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책은 상충하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라고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나. 왜 불평등한 분배가 일어나는데 대한 통찰은 두 저자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그 역시 공정 분배를 위해 전지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에게도 이것은 아주 민감한 주제일 것이다.



이 책의 사소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는 '슬럼'이 무엇인지 한국의 독자에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슬럼의 사례와 그 슬럼의 전지구적인 명칭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 규모를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말하는 '슬럼'은 갱영화에서 나오는 도시 뒷골목 이상의 것을 포괄함이 분명한데 한국을 예로 들자면 어떠한 수준의 주거지까지를 슬럼으로 칭할 수 있는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 책이 다루는 사회 현상이 너무 방대한지라 --- 이 책의 원제는 《Planet of slums》다. --- 책을 읽다보면 숨이 찬다. 그런데 전 지구적인 슬럼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거대(때로는 불법적이기까지 한) 세력의 결탁과 폭력적인 강제 퇴거.

이 모습이 우리 삶에서도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계시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슬프다. 이 책에서 발견한 우리의 모습들을 인용하면서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


(전략)서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스쿼터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53쪽

(전략)그러나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 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

1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오랜만에 책을 끝까지 읽었어요.

책이 쉽고 페이지도 적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다른 걸 하며 노느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네요.

이 책은 보수주의자들의 선전적인 선동에 놀아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프레임이라고 부릅니다. 요컨대 ‘대한민국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살리기 사업’ 같은 걸로 바꾸는 거죠. 실제로 그 사업은 실질적인 이익이 날 전망이 전무하고, 각국의 전문가들이 모두 반대하는 선전성 사업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다가 ‘4대 강 살리기’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4개의 강이 현재 죽어있다는(그러므로 되살려야 한다는) 선전을 하고 있죠. 만약 4대 강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할지라도,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그 문제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계획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동적인 이름 붙이기를 통해서 대중의 눈을 속이고, 논점을 흐리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자들의 방법이라는 점을 지적해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이 책을 작년에 시위가 한참 격화되면서 진보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올 때 어느 분이 읽고 감상을 올려주신 것으로 알게되었어요. (어쩌면 대선 때 였을지도 몰라요) 한참 잊고 있었는데, 도서관 컴퓨터에서 로쟈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죠. 그 김에 이 책과 《프레임 전쟁》을 빌렸어요. 《프레임 전쟁》도 함께 읽고 난 후에 감상을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잊어버릴 것 같아서 간단하게라도 적어 두려고 해요.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전혀 새롭지 않을지도 몰라요.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저자는 ‘프레임’이라고 하는 프레임을 세우고, 좀 더 쉬운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진실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그 사실을 망각한다는 걸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거예요. 진실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겠죠.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어쩜 이렇게 새롭게 들리나 모르겠어요.

이 책의 단점은 웹 사이트에 시간 간격을 두고 새로운 독자들을 대상으로 연재된 글을 모으다 보니,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를 설명하는 것이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예요. 그 밖에는 어쩜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대단치 않은 책이니까, “그럼 어디, 나도?”하고 많은 분들이 도전해 보셨으면 해요.


2.

인지과학에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저低인지(hypocognition)’라고 하는데, 필요한 생각, 즉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어에 ‘슬픔’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60쪽 - 61쪽


제 가 자주 가는 채팅실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했었어요. 저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주 흰소리를 하는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이쪽 학계에서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건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에는 스트레스 질환으로 앓는 사람이 없었다.”는 의견과 정반대되는 의견 같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이런 의견 모두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많은 논란이 있지요.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누구나 정말 열불이 터지는데 뭐라 말을 못하고 붕어처럼 뻐끔뻐끔 할 때의 갑갑함을 기억할테니까요. 반대의 경우도 있을 거라고 봐요. 

위키피디아에 hypocognition를 검색해 보았는데, 일단은 나오지 않네요. 전 위키피디아를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그 단어가 얼마나 유명한 단어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로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


ps.
버락 오바마의 'change'는 이 책과 관련이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