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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빈곤의 종말》과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함께 읽는 것을 추천 받았다. 그러나 이 두 권이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빈곤의 종말》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면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분배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과 분배는 함께 태어난 쌍둥이이지만 동일인은 아니며, 그 둘이 사이좋은 합의를 잘 이끌어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이들의 사이가 지극히 나쁘다는 것은 경제학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리라.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성장과 시장 숭배의 그림자에 대한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지적했다시피 88만원의 월급을 받던 도시 빈민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을 분배의 증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88만원 도시 빈민의 월급 외의 것도 함께 상승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성장하여 금전적으로 빈곤은 종말을 향해 한발짝 다가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뤄진 분배는 없다. 그것을 다룬 것이 이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고 《빈곤의 종말》의 제프리 삭스가 발끈했다는 소문도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책은 상충하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라고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나. 왜 불평등한 분배가 일어나는데 대한 통찰은 두 저자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그 역시 공정 분배를 위해 전지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에게도 이것은 아주 민감한 주제일 것이다.
이 책의 사소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는 '슬럼'이 무엇인지 한국의 독자에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슬럼의 사례와 그 슬럼의 전지구적인 명칭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 규모를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이 말하는 '슬럼'은 갱영화에서 나오는 도시 뒷골목 이상의 것을 포괄함이 분명한데 한국을 예로 들자면 어떠한 수준의 주거지까지를 슬럼으로 칭할 수 있는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 책이 다루는 사회 현상이 너무 방대한지라 --- 이 책의 원제는 《Planet of slums》다. --- 책을 읽다보면 숨이 찬다. 그런데 전 지구적인 슬럼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거대(때로는 불법적이기까지 한) 세력의 결탁과 폭력적인 강제 퇴거.
이 모습이 우리 삶에서도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계시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슬프다. 이 책에서 발견한 우리의 모습들을 인용하면서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
(전략)서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스쿼터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53쪽
(전략)그러나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 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