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 생활은 가벼워지고 삶은 건강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
비 존슨 지음, 박미영 옮김 / 청림Life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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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다




매주 수요일 분리수거 배출일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재활용품들을 본다. 고작 일주일인데 이렇게나 많이 쌓였나 싶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우리 가장이 조금은 달라져야 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리고 재활용품에 대한 인식이 약간 달라졌다. 재활용품이 정말 재활용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 책은 내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쓰레기 제로 도전은 미니멀라이프 추구, 자연주의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 도시 안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자연 주의의 실천적 삶이며 가장 이상적인 미니멀라이프의 삶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쓰레기 제로 도전은 개인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작은 변화가 어떠한 물결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가정 내 쓰레기를 줄이기는 다음의 다섯 가지 단계를 따르면 상당히 쉽고 간단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절하기, 필요하며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줄이기, 소비하면서 거절하거나 줄일 수 없는 것은 재사용하기, 거절하거나 줄이거나 재사용할 수 없는 것은 재활용하기, 그리고 나머지는 썩히기.

Chapter 01 쓰레기 제로의 삶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p26)

욕실, 화장품, 침실, 옷장, 일터, 학교, 외식 등의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 다섯가지 단계를 적용시키면 쓰레기 제로에 다가설 수 있다. 소비는 꼭 필요한 곳에만 하고, 그 필요한 소비는 건강한 재사용을 통해 하도록 하며, 비닐과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와 도자기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자칫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내용들도 있다.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일들이다. 허나 이 내용들을 통해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생활 습관과 방식에 대해서 뒤돌아 보게 되었다. 무분별한 플라스틱의 사용, 환경 호르몬 노출 등 건강에도 직결되는 문제들, 환경 파괴와 직결되는 문제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우리가 자행한 것들이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구매하면 필연적으로 그 식품에 질리고 유효기한은 어느새 훌쩍 다가와, 결국에는 식품과 공간, 돈, 자원,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Chapter 02 장보기 방식의 변화가 쓰레기 제로의 시작이다 (p76)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대용량 제품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이 대용량 제품을 알뜰하게 모두 사용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나 싶다. 결국은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인 셈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소비 습관을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많은 비누 포장지 안이 비닐 코팅되어 있어 재활용되지 않으며, 유기농 브랜드가 성분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만 포장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Chapter 03 욕실과 화장품의 쓰레기 제로는 건강을 되찾게 한다 (p104)

유기농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다. 대체적으로 유기농 브랜드는 뭇매를 맞는다. 유기농이란 단어에 우리는 너무 큰 기대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유기농 제품도 그러한데 일반 제품은 오죽할까 싶다. 대부분의 제품이 포장재에 대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비닐과 포장재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누가 해야하는 것일까.

나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모두 당신처럼 살았다가는 우리 경제는 붕괴할 거예요."

하지만 실은 현재의 진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전한 붕괴를 향해 치달을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쓰레기 제로 대안을 수용한다면 세상을은 정말 어떻게 변할까?

Chapter 11 쓰레기 제로의 미래는 어떨까? (p338)

경제가 붕괴할 것이란 우려는 오지랖이다. 쓰레기 제로를 전 인류가 수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쓰레기 제로를 모든 사람이 수용한다고 하면 기업은 변화할 것이며 새로운 대안들이 쏟아질 것이다.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변화가 지구를 위하고 사람을 위하고 환경을 위하는 것이라면 아주 좋은 변화가 된다. 그렇기에 쓰레기 제로는 아주 좋은 시도이며 전 세계가 채택해야할 정책이다. 쉽지 않은 일이며 소수의 발언에 불과한 이 일이 활성화되어 꼭 세상을 바꾸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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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산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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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부성애란 이런 것이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인생소설

감정이 메마른 매정한 나를 울린 소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나도 익히 '가시고기'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며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왜 이제서야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까.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다시금 사람들에게 회자될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읽는 가시고기는 나에게 선물이며 축복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말썽이 점점 늘어나는 아이가 오늘은 참 이뻐 보인다.



아내는 이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서의 재미를 알았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깨우쳤다고 한다. 그만큼 재미있고 슬프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나의 마음 역시 뒤흔들었다.

내가 하늘나라로 가 버리면 아빠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엄마가 떠났을 때처럼 진탕 술만 마실까요. 그게 무지무지 걱정이랍니다.

p15

이 구절이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눈물이 핑돌았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슬프다. 큰일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펑펑 울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과 함께 가슴이 아려온다.



아버지의 시각과 아이의 시각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특히 아이의 생각과 시각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아이의 생각이 대견하면서도 슬프다.

속내를 숨길 줄 아는 아이였다. 주위에선 어른스럽다거나 속이 깊다고 했다. 그에겐 칭찬이 아닌,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지 못했다는 호된 나무람으로 들렸다.

p128

아이는 아이다워야 함이 정상일 것이다. 아이가 어른스러운 모습이 어찌 이렇게 아쉬울까. 정말 칭찬으로 어른스럽다는 말이 부모 입장에서 이토록 자책하게 하는 말이 될까. 병이 다른 사람의 말을 부정적으로 만든 것일까. 철부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저 아무런 걱정없이 눈치보지 않고 철없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가시고기는 참 이상한 물고기예요.

엄마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엔 어디론가 달아나버려요. 알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요. 아빠가시고기가 혼자 남아 돌보죠.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은 채 열심히 지켜내죠. 아빠가시고기 덕분에 새끼들이 무사히 알에서 깨어납니다. 아빠가시고기는 그만 죽고 말아요. 새끼들은 아빠가시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결국 아빠가시고기는 뼈만 남게 됩니다.

p192

아빠가시고기의 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희생은 소설과 정말 잘 어울린다.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내 자신까지도 희생할 수 있을까. 소설 속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아버지의 심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무엇인가 뒤통수에 부딪혀 강렬한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다. 무서운 속도로 대기권을 뚫고 날아온 유성이 지구의 표면에 충돌하듯 그렇게.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졌다. 빛도 소리도 차단된 무중력 공간으로 두둥실 몸뚱이가 떠오르는 듯했다. ... 그는 웃었다.

p265

생각치 못한 악재가 닥쳐왔을 때 이런 기분일까.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순간. 사고가 정지되고 감당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 웃음이 아님을. 이해가 되는 그의 웃음에 나의 머릿속도 멍해진다. 어떻게 해야할까.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자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결승선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느낌.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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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마지막 장을 나 혼자 서재에서 덮었다. 마지막 장은 혼자 있는 곳에서 읽고 싶었다. 가슴이 아려온다. 왜 그리 아이에게 매정하게 대했어야만 했을까. 아이가 덜 힘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굳이 그랬어야만 했을까.



책을 다 읽었는데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책이 전하는 감동과 여운을 쉬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부성애란 이런 것이라며 말한다. 아직 나의 부성애는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하게 한다. 자기 자신보다 미련하게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이 300만부 초베스트셀러임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내일부터 만나는 바람들에게 가시고기를 읽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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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오 옮김 / 하다(HadA)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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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순수한 도련님이 만나는 불합리한 세계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일본의 셰익스피어, 국민작가라 불리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다. 그의 작품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그리고 '도련님'을 익히 알고만 있었고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고전이라 읽기 힘들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도련님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작은 지방의 중학교에서의 일들이 낯설지 않다. 우리는 도련님이 되어 본다. 그의 처지에 같이 공감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의심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시코쿠 지방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수학 선생을 구한다는데 자네 갈 의향이 있는가? 월급은 40엔이래.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도쿄 출신의 도련님이 주인공으로 그의 내면 서술이 인상깊었다. 마치 저자 자신의 내면을 그리듯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순수하면서도 정의롭고 바른 기본적 인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만나는 도련님은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겉으로 아주 바른 사람일지라도 내면에서의 생각과 대화는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도 역시 그러하며 그게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 습성일 것이다.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이 속으로 욕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게 속다르고 겉다르다며 욕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디 돌을 던져 보아라. 도련님은 그래도 생각과 행동이 일관된 편이다.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되지. 하지만 본인이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남이 나쁜 짓을 하는 걸 깨닫지 못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는 걸세. 세상은 만만하고 담백한 것처럼 보여도, 친절하게 하숙집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p107

어느 조직이나 문제가 있지만 교묘한 술수로 상대를 음해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정신병이 있다는 둥 망상을 한다는 식의 오해를 받기도 하기에 진실 파악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작은 조직에서 보이지 않는 두 그룹은 서로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두 그룹이라고 해봐야 한 두사람의 경쟁에 불과하지만 작은 조직에서 한 두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속내를 알수 없는 '빨간 남방'과 이를 따르는 '따리꾼'은 도련님에게 낚시를 함께 가자고 하며 은연 중 수학 주임인 '높새바람'을 욕한다. 도련님은 학교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떠한 상황인지 파악이 어렵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하지만 어느 누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바로 과거 장교 생활을 하던 때다. 소위로 부대로 파견되었을 때 보이지 않는 두 그룹으로 갈라진 대대의 분위기는 나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도련님은 마음에 안들면 떠날 수나 있지만 의무 복무 중인 장교가 사표가 가당키나 할까.

"그깟 몸이 좀 피곤한 거야 상관없어. 저런 간신배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나라를 좀먹게 하는 일이니까 내가 하늘의 뜻을 대신해 불의를 응징하고자 하는 거야."

"통쾌하겠군. 그렇다면 나도 가세하겠네. 그래서 오늘 밤부터 불침번을 서자는 건가?"

p223

'높새바람'과 사이가 틀어졌으나 곧 오해는 풀렸다. 이 또한 간신배의 술수였다. 그리하여 도련님과 높새바람은 동맹 관계가 되어 적에게 대항하기에 이른다. '높새바람'의 기세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다. 정의롭고 당당한 '높새바람'의 모습에 가까워 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불의를 응징하는 면에서 통쾌함을 느낀다. 허나 근본적으로 학교의 문제를 바꾸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모습에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정의로운 두 사람만 사표를 내고 떠날뿐 불의의 원흉들은 아무런 해가 없는 셈이지 않은가. 현실과 다름이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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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왜 추천 고전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읽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고 어느 곳에나 있는 고질적 문제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도련님과 같은 경험을 하였고 또한 할 것이다.



어느 곳에나 '너구리'같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로남불의 전형에 입만 살아있는 '빨간 남방' 같은 사람도 있다. 또한 간신배인 '따리꾼'같은 사람이 존재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올곧은 기상의 '높새바람'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맞춰가며 흘러가는게 아닐까. 그 중에서도 도련님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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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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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부당함에 맞서는 통쾌한 복수극






일본 도쿄 중앙은행의 융자과장 '한자와 나오키'는 평범한 은행원이다. 기업의 대출을 담당하고 있다. 대출을 해줘도 손해가 없는지 검토하고 대출 실행을 결정하는 업무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이 평범한 은행원에게서 어떠한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잠시였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이야기 전개로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내가 하루만에 책을 모두 읽었다.



'한자와 나오키'에게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평범한 회사원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저 회사가 정하는 방향대로, 상사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할 수 밖에 없고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살아간다. 이미 한자와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우리는 그의 반격을 응원하게 된다.



한자와에게 부당한 일이 발생한다. 서부오사카철강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 5억엔 영업 손실이 나게 생겼다. 그런데 이 모든 책임을 한자와가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된다. 대출이 실행될 때 한자와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의도적으로 주지 않은 지점장이 한자와의 잘못이라고 한다. 이 대출과 관련된 상사며 관련 부서도 책임지지 않고 한자와를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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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싶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한자와는 공을 세우기 위해 조바심을 낸 나머지 시간도 주지 않고 잡아채듯이 품의서를 올린 건 누구냐고 따지고 싶었다. 자기들 사정으로 여신 판단의 시간을 생략해놓고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지라는 것은 너무도 비열한 짓이 아닌가!

p57

이러한 부당한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모든 화살이 내 자신에게 향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잘못된 지금을 바로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한자와는 포기하지 않고 현 상황을 맞선다. 나라면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잠적해버린 서부오사카철강의 히가시다 사장을 찾아가 상황 파악에 나서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가키우치는 안에서 꺼낸 자료 다발을 높다랗게 치켜들더니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는 오기소 앞에 힘껏 내리쳤다.

p192

인사부의 검열에 탈탈 털리는 한자와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감찰이 필요한 일임에는 동의하지만 사소한 트집을 잡으며 의욕을 떨어뜨리는 그 효율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참 의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한자와를 겨냥해 나온 겸열이라면 그 부당함은 더하다. 오기소는 의도적으로 서류를 숨기고 한자와를 지적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한자와가 그냥 지나칠리 없다.



처음으로 통쾌함을 느끼는 대목이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다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쾌하다. 당한만큼 갚아준다는 부제가 떠오른다. 그렇다. 분명 한자와는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당한만큼 갚아줄 것이다. 이 작은 통쾌함의 시작으로 더한 통쾌함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통쾌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은행이 이렇게 부조리한 조직인 줄 몰랐군."

한자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걸 지금 알았어?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가르쳐주지. 은행이란 곳은 말이야. 인정사정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이야. 똑똑히 기억해둬."

p194

'부조리한 조직'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조직 환경에서 그대로 머무른 회사 및 조직들이 많다. 점점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예를 하나 떠오른다. 내가 몸담은 조직은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로 복장이 비지니스 캐쥬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 출장을 온 파란 눈의 동료들은 편안하게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이에 사람들은 반바지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 조직은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반바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를 부조리라고 볼 수 없다. 허나 이 작은 변화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과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 회사의 매입을 부풀렸더군요. 그런 식으로 이익을 속여서 계획도산을 한 게 아닐까 해요. 그래서 지금 한자와 씨와 같이 조사하는 중입니다. 채권자끼리 서로 협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쩌면 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p203

한자와의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조사를 할수록 히가시다 사장의 음모가 드러난다. 계획도산을 했다는 의미는 의도적으로 돈을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돈을 찾기만 하면 채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자와의 역전승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도쿄중앙은행의 행원일 뿐이지. 즉 당신과 똑같은 일개 직원에 불과해. 경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내 주머닛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한 사회인으로서 당시이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어. 아무리 귀찮고 힘들더라도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야."

p227

이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그저 은행의 행원일 뿐이며 일개 직원에 불과하지만 부당한 잘못을 용서할 수 없다는 신념있는 말이 참 멋있다. 과연 나는 부당함에 맞서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고 처벌 받게 할 수 있을까. 그 길이 험난하고 어렵기에 이러한 소설에 대리만족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응이다. 이러한 대리만족을 선사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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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관련된 용어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책을 읽어 나감에 큰 어려움은 없다. 자연스럽게 친절한 설명이 함께 나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그 중 '분식회계'라는 단어를 몰라 찾아봤다. 실적을 부풀리는 등의 회사 장부 조작이란 의미였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문맥상 이해함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러한 용어들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관점을 잘 배려해 소설을 썼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대리만족만큼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도 없다.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이 책은 힐링과도 같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부당한 해고를 당하는 사례가 분명 우리 사회에도 많을 것이다. 부당함은 처벌받고 부조리한 조직은 변했으면 좋겠다.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그런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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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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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리튼 키

슈스케의 교묘한 트릭이 환상적이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겼다. 사이코패스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각종 상을 받아 이름을 익히 듣게 된 미치오 슈스케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각종 트릭이 숨어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선입견에 우리는 교묘하게 마련된 트릭에 뒤흔들린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거울 속의 내가 나인듯 남인듯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른손을 다운재킷 가슴팍에 넣어 셔츠 아래의 왼쪽 가슴을 눌러봤다. 심장은 여전히 느리게 뛰었다. 아무리 위험한 짓을 해도 이 심장 박동은 빨라지지 않았다. (중략)

"너 같은 사람들 뭐라고 하는지 알아." (중략)

세이코엔의 뜰에 있던 어두운 창고 속에서 그녀는 그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사이코패스라고 해."

p16

세이코엔이라는 소위 보육원에서 자란 사카키 조야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다. 그리고 그는 사이코패스다. 위험한 행동에도 심장 박동의 변화가 없고 이를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만 그럭저럭 사회에 적응하면서 잘 살고 있다. 이런 조야의 모습을 알아채고 보듬어 주는 히카리 누나는 조야의 첫사랑이다.



책의 중반부까지 조야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이코패스 조야는 자신이 세이코엔에서 자라게 된 원인 제공자의 행방을 알게 된다. 뱃속에 8개월된 조야를 품은 어머니에게 산탄총을 쏴 죽인 남자다. 조야는 사이코패스의 사고 회로가 작동한다. 그 남자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남자를 죽이고 싶다.

"난 준페이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너라고 생각해."

p137

히카리 누나의 이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 직감의 힘은 예리하면서도 무섭다. 이 말을 차라리 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조야를 이해하는 히카리의 입장에서 조야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직설적인 히카리 누나의 모습에 우리는 앞으로 벌어질 비극의 기운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트릭에 속은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헛웃음이 나면서도 기분 좋은 트릭이다. 지금까지의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예상하지 못한 등장 인물이 상황을 순식간에 역전시킨다. 그리고 그 새로운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며 급물살을 탄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강력한 스포이기에 더 적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너희도 괜찮을 거야."

어머니의 말이 진실이기를.

"괜찮을 거야."

조금이라도 진실이기를.

p315

마지막 어머니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지금보다 괜찮은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조야가 처한 상황을 보고 어머니의 마음이 가장 쓰라릴 것만 같다. 그래도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조야의 모습에 위안을 건네고 싶을 것이다.



스펙타클하면서도 가슴 뭉클해지는 스토리가 압권이다. 내가 사이코패스 사고 방식이 탑재된 조야의 입장이 되어 접근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의 성향에서 조야는 많이 개선되었고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 후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깃든 그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 가슴을 때린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재능은 환경과 상관없이 개화한다는 사례 같지? 프로 피이니스트가 된 사람은 음악과 인연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유전적인 소양 같은 건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재능을 가졌는데도 한쪽은 음표도 읽을 줄 모르잖아."

분명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면, 모두가 그 재능을 개화시키는 건 아냐. 진짜 사이코패스가 되는 건, 그 재능을 훌륭하게 꽃피운 경우뿐이지."

p166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소재를 한 껏 잘 활용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이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환경에 따라 유전적 소양 같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사이코패스의 유전적 소양을 갖고 태어 났다 할지라도 살아온 환경에 따라 주변 사람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정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스켈리튼 키는 둥근 기둥의 사각 톱니가 달린 키를 지칭한다. 옛날에 만들어진 워드 라물쇠라는 단순한 구조의 자물쇠는 스켈리튼 키로 대부분 열 수 있어서 '여벌 열쇠'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이 키가 가진 숨은 의미가 참 오묘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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