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오 옮김 / 하다(HadA)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련님

순수한 도련님이 만나는 불합리한 세계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일본의 셰익스피어, 국민작가라 불리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다. 그의 작품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그리고 '도련님'을 익히 알고만 있었고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고전이라 읽기 힘들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도련님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작은 지방의 중학교에서의 일들이 낯설지 않다. 우리는 도련님이 되어 본다. 그의 처지에 같이 공감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의심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시코쿠 지방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수학 선생을 구한다는데 자네 갈 의향이 있는가? 월급은 40엔이래.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도쿄 출신의 도련님이 주인공으로 그의 내면 서술이 인상깊었다. 마치 저자 자신의 내면을 그리듯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순수하면서도 정의롭고 바른 기본적 인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만나는 도련님은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겉으로 아주 바른 사람일지라도 내면에서의 생각과 대화는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도 역시 그러하며 그게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 습성일 것이다.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이 속으로 욕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게 속다르고 겉다르다며 욕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디 돌을 던져 보아라. 도련님은 그래도 생각과 행동이 일관된 편이다.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되지. 하지만 본인이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남이 나쁜 짓을 하는 걸 깨닫지 못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는 걸세. 세상은 만만하고 담백한 것처럼 보여도, 친절하게 하숙집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p107

어느 조직이나 문제가 있지만 교묘한 술수로 상대를 음해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정신병이 있다는 둥 망상을 한다는 식의 오해를 받기도 하기에 진실 파악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작은 조직에서 보이지 않는 두 그룹은 서로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두 그룹이라고 해봐야 한 두사람의 경쟁에 불과하지만 작은 조직에서 한 두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속내를 알수 없는 '빨간 남방'과 이를 따르는 '따리꾼'은 도련님에게 낚시를 함께 가자고 하며 은연 중 수학 주임인 '높새바람'을 욕한다. 도련님은 학교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떠한 상황인지 파악이 어렵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하지만 어느 누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바로 과거 장교 생활을 하던 때다. 소위로 부대로 파견되었을 때 보이지 않는 두 그룹으로 갈라진 대대의 분위기는 나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도련님은 마음에 안들면 떠날 수나 있지만 의무 복무 중인 장교가 사표가 가당키나 할까.

"그깟 몸이 좀 피곤한 거야 상관없어. 저런 간신배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나라를 좀먹게 하는 일이니까 내가 하늘의 뜻을 대신해 불의를 응징하고자 하는 거야."

"통쾌하겠군. 그렇다면 나도 가세하겠네. 그래서 오늘 밤부터 불침번을 서자는 건가?"

p223

'높새바람'과 사이가 틀어졌으나 곧 오해는 풀렸다. 이 또한 간신배의 술수였다. 그리하여 도련님과 높새바람은 동맹 관계가 되어 적에게 대항하기에 이른다. '높새바람'의 기세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다. 정의롭고 당당한 '높새바람'의 모습에 가까워 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불의를 응징하는 면에서 통쾌함을 느낀다. 허나 근본적으로 학교의 문제를 바꾸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모습에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정의로운 두 사람만 사표를 내고 떠날뿐 불의의 원흉들은 아무런 해가 없는 셈이지 않은가. 현실과 다름이 없어 안타깝다.


----------------------------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왜 추천 고전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읽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고 어느 곳에나 있는 고질적 문제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도련님과 같은 경험을 하였고 또한 할 것이다.



어느 곳에나 '너구리'같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로남불의 전형에 입만 살아있는 '빨간 남방' 같은 사람도 있다. 또한 간신배인 '따리꾼'같은 사람이 존재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올곧은 기상의 '높새바람'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맞춰가며 흘러가는게 아닐까. 그 중에서도 도련님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