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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속임수
"서서히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
샤를로테 링크 지음 / 강명순 역자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신작이다. 한국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은 <폭스 벨리>, <죄의 메아리>, <다른 아이> 등이 있다. 그 중 나는 <다른 아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샤를로테 링크의 작품을 만났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흥미진진하게 이어가는 스토리가 일품이었다. <속임수> 역시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를 지루함없이 흥미롭게 끌고가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가다.
책의 중반까지 읽었음에도 왜 책 제목이 속임수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속임수란 것인지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내막들이 있기에 그럴 것이기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뒷 부분이 궁금하다. 혹시 내가 지금 속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책의 끝까지 흘러가다 보면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에 안타까움과 놀라움을 만나게 된다.
"평생 착하게 살아온 엄마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p132
퇴직 경찰 리처드 린빌은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된다. 케일럽 헤일 반장이 사건의 담당형사로 사건 조사에 임한다. 그 와중 런던 경찰인 딸 케이트는 휴가를 내고 아버지의 사건을 독자적으로 하나씩 파헤치고 다닌다. 케이트 자신이 잘 몰랐던 아버지 리처드의 과거에 할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리처드 린빌은 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아내를 두고 감쪽같이 다른 여인 멜리사를 만났다. 이 둘의 비밀을 알고 있던 리처드의 단짝 동료 노먼이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모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범인을 찾기엔 단서가 부족하다. 경찰로써 많은 범죄자들의 원수나 마찬가지였던 리처드 린빌, 그의 애인 멜리사, 그의 단짝 노먼 이 세 사람의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야기의 흐름과 동시에 닐이란 가명을 사용하는 리처드 린빌의 살해 용의자 데이브 쇼브가 등장한다. 케일럽 헤일 반장은 데이브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염두하고 사건을 진행시킨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데이브는 리처드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그 접점이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철저하게 작가에게 속고 있었다. 작가가 파 놓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고 사건의 실마리는 풀려있다. 아무런 연관성 없어 보이는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마지막에 하나의 접점으로 다시 모인다. 그 순간이 매우 절묘하다. 작가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 보자. 그 흐름이 재미있기에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정의가 구현되지 않았다는 게 비극의 핵심입니다. 피해자 가족은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p583
책을 3분의 2정도 읽었을까? 잊고 있던 내용이 하나 문득 떠올랐다. 책 맨 앞장을 다시 펼쳤다. 내리막 길을 신나게 자전거 패달을 밟고 내달리던 아이에 대한 내용이다. 그 아이의 죽음을 암시하며 의문만을 남긴채 다른 이야기로 훌쩍 넘어간 부분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 문득 생각이 났다. 리처드 린빌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데 정신이 팔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내용이다. 400페이지 정도 읽었으나 아직까지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 무언가 연관성이 있다는 느낌이기에 나만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보통은 소설을 읽으면서 다음 나올 소설의 뒷부분이 어느정도 예측이 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다르다. 바로 한 장 뒤의 내용도 가늠이 안 된다. 그렇기에 흥미롭다.
마지막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부분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풀었을 때의 쾌감이 있다. 하나의 불의의 사고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고통 속에 밀어넣었다. 그 가정의 파탄은 분노와 복수의 칼날을 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파국을 가져왔다. 그 사고가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그 사고를 처리한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이 문제였을까?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 결론이 불행함은 변함이 없다.
<속임수>라는 책 제목이 참 묘하다. 자신의 고통, 어려움을 내비치지 않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과연 남을 속이는 행위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죄를 짓고도 평생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타인을 속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상대를 파악하려 하고 단정짓는다. 모두 속임수의 희생자다.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어려움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통해 빈민가, 알코올 중독, 장애, 가정 폭력, 아동 방치 등 소외된 계층의 어두운 면을 한 사건을 통해 두루 접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소외 계층의 등장 인물들을 통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인도인 카디르, 가정의 보살핌에 받지 못하는 모자라지만 착한 그레이스. 작가는 소설의 큰 흐름과 함께 곁가지로 이들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미약하지만 강한 힘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