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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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뛰어난 몰입감, 예측 불가한 반전, 최고의 스릴러 작품

께림칙한 기분이 계속 맴돌았다. 스릴러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붙은 '메리 쿠비카'의 소설 <디 아더 미세스>는 매우 흡인력이 있다. 독자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을 모조리 의심하게 만들고 예측할 수 없는 반전까지 선사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소설을 쓸 수 있나 싶었다.

주인공 세이디의 굵직한 시각에 타인의 시각이 더해지고, 타임라인을 넘나들며 독자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조금씩 맞춰지는 듯 하면서도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는 흩어졌던 모든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쾌감을 선사한다. 퍼즐 조각의 윤곽이 드러날 때 우리는 반전이란 선물을 받는다.

이 소설 <디 아더 미세스>를 읽고 저자 '메리 쿠비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이 벌써부터 매우 기대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굿 걸>, <프리티 베이비>, <톤트 유 크라이>는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살인 사건이라니! 우리 섬에서!"

누군가 탄식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침묵에 빠졌고, 갑자기 진료소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들어서자 나이 든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환자일 뿐이었지만 흉흉한 사건이 발생하자 서로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두려움에 짓눌릴 수 밖에 없었다.

p39

세이디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집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 집의 주인이었던 앨리스는 섬유근육통으로 고통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딸 이모젠은 그 집에 홀로 남겨졌다. 앨리스의 형제인 윌은 세이디의 남편이다. 홀로 남겨진 이모젠을 돌보는 조건으로 윌의 가족은 섬안의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윌과 세이디, 아이들 오토와 테이트 그리고 엄마 앨리스의 죽음을 목격했던 딸 이모젠은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어떠한 것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세이디는 착하고 성실한 의사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다. 듬직한 남편 윌과 잘 자라주는 아이들, 그녀는 의사의 임무도 착실하게 잘 수행한다. 물론 함께 살고 있는 이모젠이 문제이긴 하다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좋아질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섬 생활에 불연듯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을 필두로 세이디의 세계는 점차 혼란에 빠진다. 범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이상하리만큼 이 살인 사건이 자신의 주변으로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어둠 속의 알 수 없는 인기척, 누가 그랬는지 알지 못한느 집 안의 수상한 흔적들 등 세이디를 옥죄어 오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숨이 막혀 온다.

마우스의 눈에도 아빠가 가짜 엄마를 무척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아빠가 가짜 엄마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면 가짜 엄마가 아빠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가짜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도 아빠랑 마우스는 행복했지만, 가짜 엄마는 아빠에게 마우스가 줄 수 없는 행복을 주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p205

세이디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이외에 무시할 수 없는 굵직한 시선이 있다. 첫째는 마우스의 시선이다. 마우스와 가짜 엄마의 내용을 읽으며 매우 궁금했다. 과연 어린 소녀 마우스가 어떤 등장 인물과 연결이 될지 말이다. 누군가의 과거로 생각되었으나 선뜻 그 연결고리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궁금증 때문에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연관된 것인지, 이모젠과의 연결일지, 카밀과 연관된 것인지 그 궁금증은 계속 증폭되었다.

다른 또 하나는 바로 남편 윌과 불륜 관계에 있는 카밀의 시선이다. 세이디를 싫어하지만 그녀처럼 되고 싶은 욕망의 소유자다. 윌과의 불륜 관계에 정신과를 찾아가 마음을 털어 놓지만 윌에게 버림 받는 것보다 불륜 관계라도 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욕망이 넘쳐나며 거침 없으나 어쩌지 못하고 세이디 주변을 맴돈다.

제프리는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아내의 추도식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던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호소하듯 내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코트니는 이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제 아내를 협박했어요. 누군가 제 아내가 죽길 바랐습니다."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p363

살인 사건은 세이디를 힘들게 만들었다. 세이디는 모두가 의심스럽다. 비뚤어진 인성을 가진 이모젠도 의심스럽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으나 칼을 들고 등교했던 아들 오토마저도 의심스럽다. 죽은 모건의 남편인 제프리의 작은 행동들조차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혹여 빈집에 숨어 있는 제 3자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세이디의 입장에서 주변 모든 것들이 의심되었고 선뜻 결론을 내기 힘들었다. 의심의 골이 깊어질수록 불안함과 궁금증은 날로 심해져 간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이 극에 달했을 때 사건의 실마리는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숨겨졌던 범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은 정말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나름 추리 소설을 좀 읽어 봤다 생각했는데 추리력은 전혀 늘지 않은 듯 싶다. "설마 이건가?"라며 살짝 의심했던 부분이 정답이어서 30퍼센트 정도는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 반전을 절대 생각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참 잘 만들어 놨다.

<디 아더 미세스>는 넷플릭스 영화 제작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고나니 어떻게 연출을 할지 전혀 감이 안온다. 이 책의 반전을 숨긴 채 내용을 진행시키기에는 뛰어난 연출력이 요구될 것만 같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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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마음 - 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윤현희 지음 / 지와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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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의 마음 : 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A급 도슨트와 함께 하는 미술관 여행

나만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미술에 대해 지식 탐구를 하지 않는다. 미술관에 찾아간다거나 미술 작품에 대해 정보를 습득한다거나 하는 작은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술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마음은 항상 마음 한 켠에 있다. 이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그 작은 노력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보는 미술 작품도 많았고, 익히 보아 알고는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그림도 많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님의 추천사 내용에 매우 공감한다. 이 책은 세 번 읽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에 특히 공감했다. 책에 수록된 대가들의 그림을 먼저 감상한 후, A급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을 돌아다니듯 책을 읽고, 그 다음 다시 그림들을 보는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그림을 바라보는 눈이 달려졌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윤현희는 임상심리학자로 종합병원 신경정신과에서 근무하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쳤다. 심리학 전문가가 바라보는 미술 작품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림을 통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생애를 심리학의 관점으로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미술과 심리학의 만남은 뭔가 선뜻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의외로 미술을 더욱 깊숙하게 들여다 보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카라바조 자신도 이상한 방식으로 옷을 입으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용모를 하고 다녔다는 점은 조현병을 진단하는 한 가지 준거인 위생 관리의 곤란을 의미한다. 예측 불가하고 이유 없이 흥분하는 점을 보면 차분하고 냉정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이코패스보다는, 지각 혼란과 피해망상으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1부 : 바로크의 황금빛과 자존감 / 미켄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p47)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매우 인상깊다. 어두운 배경과 두드러지는 인물 묘사가 일품이다.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인물의 표정이 나에게 전해진다. 엄청난 작품들의 주인공인 카라바조의 일대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열다섯번의 폭력 전과 및 두 차례나 살인을 저질러 투옥되었고, 교수형을 언도 받고 탈옥을 하는 등 구제 불능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화 제작자로 인정받은 그는 카톨릭 지도자들의 보호 아래 기사 작위를 받음으로써 사면을 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카라바조의 모습이 사이코패스보다는 조현병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카리바조는 충동 조절 실패로 인한 인지행동 장애에 가까우며, 전두엽의 통제 능력과 관련된 인지적은 결함에서 비롯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이 겪는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더욱 높을 것이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조현병에 주변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햇살이 비친 구름과 파르스름한 빛에 감싸인 여인, 그녀의 드레스를 휘감은 바람이 들꽃 위로 흩어지는 <양산을 쓴 여인>과 <양귀비 들판>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로 모네의 스타일을 대표한다. 두 그림 모두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 장이 함께 있는 산책길이다. (중략) 원래 몸이 약했던 아내는 둘째 아기를 낳은 후 얻은 합병증 때문에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카미유 임종의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모네는 그림으로 영원히 기록했다. 인상적이게도 아내가 떠난 후 모네는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2부 : 낭만시대의 색채와 감성 / 클로드 모네 (p149)

그저 하늘거리는 모습의 아름답게만 보이는 <양산을 쓴 여인>은 모네를 대표하는 그림인데 이런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부모의 반대에도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와 결혼해 아이를 키웠다. 어려운 시절 아내는 언제나 모네를 지지하고 사랑이 많았다. 그러나 카미유는 둘째를 출산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내가 떠난 후 모네가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연을 그림으로 옮기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모네는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는 그림을 다양한 색채로 그려냈다. 모네는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냈으나, 평생 좋아하는 일에 매진했고 주변 동료들은 그를 지지하고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화가 모네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모네가 심리적인 부자, 행복의 달인이라 칭하고 있다.

1922년 작품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는 밤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로 가득 찬 뉴욕의 전경을 담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불이 켜진 하나의 전구처럼 환하다. (중략) 플랫아이언 빌딩 옆을 지나는 도시철도와 고가 다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맨해튼이 산업도시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4부 : 우울과 불안을 달래는 도시의 빛 / 존 슬로안 (p298)

페이지를 넘기며 처음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를 봤을 때 단순히 도시의 풍경을 담아냈다고만 생각했고 감흥은 없었다. 일찍부터 빈곤에 익숙했고 도시 변두리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 존 슬로안이 살아온 배경을 알게되었다. 지상을 수놓은 불빛을 관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물의 옥상이 가진 낭만적이 공간의 이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었다. 존 슬로안에게 옥상은 생활의 민낯을 웃으며 관조할 수 있는 장소였다. 또한 세상의 꼭대기에서 관망하는 시가지를 통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존 슬로안의 작품을 보니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다른 그림들도 좋지만 유독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 작품이 계속 눈이 갔다. 어두움과 반짝이는 불빛이 공존하는 뉴욕의 도시를 옥상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 풍경을 담은 이 그림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거짓말을 살짝 더하자면 이 장소에 마치 서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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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죽음을 배우다
리디아 더그데일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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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마주한다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죽음을 준비하는 일,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는 주제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죽음은 저 멀리 있는 일로 취급했다.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애써 멀리하고 싶고,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죽음이다.

지금껏 애써 외면했던 그 죽음을 마주보고 눈이 부신 환하고 좋은 것으로 탈바꿈 시킬 때가 되었다. 모든 인간에게 언젠가는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한번쯤은 깊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제 1장의 터너 씨의 일화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내용이었다.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온몸에 암이 퍼진 말기 암 환자의 꺼져가는 생명력을 다시 살리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서서히 멈추는 심장을 부여잡고 갈비뼈 아스라지게 펌핑해 다시 뛰게한다. 살아남은 이의 고통이 죽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다. 아름답게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 인생에 정말 귀한 책을 만났다.

누구나 외롭게 혼자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고독사한 시신이 장기간 방치되는 사건을 종종 뉴스를 통해 만난다. 이웃과의 왕래 심지어 가족, 친인척과의 왕래 조차 점차 줄이드는 요즘이다. 고독사하지 않기 위한 목적을 떠나 우리는 공동체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은 매우 유의미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전염병의 사실적 묘사로 익히 유명한 고전이다. 소설 <페스트>는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인간 사회 묘사가 매우 생생하며 더욱 요즘 상황으로 말미암아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언제든 나에게 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

생명유지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는 일,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안락사를 청하는 일 등 극한의 상황에 닥친 사람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자 할 때 어디까지 허용이 되어야 하는가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내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를 고민해보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가늠해보는 자체로도 큰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다.

죽음 이후의 세상은 어떠할까.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다양한 종교 안에서의 영적 믿음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점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어쩌면 점차 과학적이고 논리적 사고가 가능해지며, 정보 공유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 다양한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는 어떨까. 두려운 마음에 하느님을 찾고 있지 않을까.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만든다'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 믿고, 희망찬 삶을 살아간다면 그 끝에 놓인 죽음 역시 좋을 것이다. 마지막 무렵에 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내용을 둘러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병원에서 죽는 게 좋을까, 집에서 죽는게 좋을까를 고민해보았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의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간접적 경험을 했다. 종교와 영적인 부분들도 고민해봤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내 주변 공동체를 돌아보기도 했다. 내 삶의 다양하고도 깊은 고찰의 시간을 '죽음'으로 부터 돌아본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인내, 희망, 겸손, 믿음, 초월의 덕목은 풍성한 삶과 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중략) 세상을 초월하는 습관은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와, 겸손의 습관은 공동체 구성원을 수용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중략) 희망과 믿음은 죽음을 향한 두려움을 완화하고, 가장 심오한 실존적 불안에 답을 제시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인내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죽음을 약속한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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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
류창장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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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행복은 가볍고 단순하며 아주 쉽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고등래퍼2에 나왔던 김하온,이병재의 노래 "바코드" 가사의 일부다. 이 가사의 행복에 대한 내용이 유난히 내 귓가에 맴돌았고 가끔씩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행복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까운 곳에 항상 존재한다는 그 행복이 어느 순간은 참 어렵다. 종종 행복은 참 멀게만 느껴지고, 그 멀었던 행복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행복에 대해 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고, 그저 힘든 일상의 허덕임에 행복을 잊고 살아간다.

가끔씩은 행복에 대해 일깨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지만 체화하지 못했다는 측면이 맞는 듯 하다. 행복과 관련된 책을 읽음으로써 잊고 지내던 그 행복을 꺼낼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지금 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사랑하라. 마음이 충만해지고 여유가 생길 것이다. 허영심과 침착하지 못한 마음은 행복을 가리는 암막이다. 암막을 걷어내는 순간 기쁨이 보이고 살아 움직이는 행복의 조각들이 보인다. 행복한 삶이 당신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빛을 내리쬐며 찬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로 찍듯이 행복의 순간순간을 마음에 새기자. 어려울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을 수 있다.

02 염려는 걱정을 낳고 만족은 행복을 탄생시킨다 (p27)

시인과 천사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재능, 외모, 재산, 아내 모두를 가졌지만 행복을 원했던 시인에게 천사는 모든 것을 빼앗았다. 한달 뒤 괴로움에 발버둥치던 시인에게 천사는 시인에게서 빼앗았던 모든 걸 다시 돌려주었다. 시인은 행복에 겨워 천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시인의 모습이 내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을 나는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나를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 나의 집과 재산들, 안정된 직장과 기회들까지 나는 이러한 나의 행복들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다. 한 단계 더 높은 삶을 바라보느라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 미처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들은 내가 노력해 얻은 것들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 순간의 불행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각종 사고와 질병에 의해 가족을 잃을 수도 있고, 안정된 직장이 어느 한 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 이토록 행복한데 나는 이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와 과거를 가지고 비교하길 좋아한다. 비교를 통해 우열을 가릴 수 있고 좀 더 빠르게 목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고 나면 행복감이 증가한다. 그러나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맹목적인 비교는 행복이 아닌 불행을 초래한다. 따라서 비교의 소용돌이에 잠기지 말고 현재를 꽉 움켜쥐자. 그렇게 해야 자신의 행복이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18 비교를 거듭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라 (p94)

사람들은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음식을 먹을 때도 다른 집과 비교하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비교한다. 비교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오로지 행복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비교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낮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집 값이 올랐다. 그런데 역 근처에 있는 옆 동료의 집 값이 더 많이 올랐다. 지금의 내 집 값만 보면 참 좋은 일이고 행복한데 다른 사람의 집 값이 더 오르는 이 상황이 뭔가 불만족스럽다. 현실 사회에서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비교가 나에게 주는 것은 불행 뿐이다. 비교가 어리석은 일임을 알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비교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이 되었을 때에야 같이 어깨를 마주할 사람이 있다는 것,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행복은 늘 곁에 있지만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는 척해주어야 비로소 자기 존재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29 곁에 있는 행복을 보라 (p138)

저자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내용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돈 많고, 미래 걱정이 없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여행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는 이 모든 조건이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획일화된 생각을 한다.

살아 있음이 행복, 일할 수 있음이 행복, 바람 부니 옷 잘 챙겨 입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행복, 잠을 푹 잘 수 있음이 행복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같이 갈 친구가 있는 것이 행복,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이 있는 것도 행복, 소중한 감정과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간직 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정말 행복거리가 넘쳐나는데 나는 획일화된 행복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의 위로는 된다. 미래를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고민이 내 스스로를 행복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현재를 바라보고 주변의 행복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행복이 그가 얼마만큼 가졌는가에서 오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보는지에 달렸다.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기뻐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중략) 행복한 생활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건강한 생활이 가능하고, 높은 지위는 없지만 웃을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50 행복은 아주 가볍고 단순하며 쉽다 (p226)

행복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라 생각한 듯 싶다. 기쁨을 발견하는 눈,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행복에 다가서는 가장 중요한 키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지금껏 노력했으나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행복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보자면 주변 사람들이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어떻게 투자해 돈을 벌었는지, 이번에 비싼 차를 구매했다든지, 좋은 집을 구매했다든지 등의 돈과 관련된 이야기들만 주고 받는다.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되고 투자에 대해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책에서 제시된 로렌의 예시와 같이 미국인인 그녀가 베트남에 살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에 매우 공감되었다. 요란한 광고, 스팸, 신용카드 없는 베트남의 생활이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미국의 사회와 매우 다른 모습이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주변 환경도 매우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책을 읽고나니 책 표지의 "행복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글귀에 더욱 공감한다. 사회의 물살에 이리 저리 다니다보면 나 역시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는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돈에 대한 말이 아닌 우리 마음에 대한 것이다.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름 풍족하게 살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풍요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행복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좇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두가 돈을 향해 걸어가고 뛰어가고 있다. 나 혼자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떨치고 지금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돈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이런 행복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게 되는 듯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버는 것 물론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을 찾는 그 여정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찾아가는 그 여정에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 이 책 류창장의 <행복 시크릿>은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 교수의 <하버드 행복수업>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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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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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머리에 나사가 달린 흉측한 괴물의 형상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어느 애니메이션이 나의 어렴풋한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기억 속 어렴풋한 형체의 프랑켄슈타인은 언제나 읽고 싶었던 고전이었으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의외의 사실은 내 기억 속의 괴물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탄생시킨 사람의 이름이었다.

흉측한 기형에 혐오스러운 외모에 키가 비정상적으로 큰 괴물의 모습을 마주한다면 나 역시 두려움에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생명 발생 원인을 찾은 프랑켄슈타인에게는 미적 감각이라곤 전혀 없었나 보다. 생명체를 탄생시키는데 몰두하느라 피조물의 얼굴을 예쁘게 만들 생각은 전혀 못한 듯 하다. 창조주도 아담을 만들 때 정성껏 온 마음을 담아 만들었을텐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드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보다는 두려움이 더 앞서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볼 문제가 많다. 인조인간, 복제인간, 유전공학 등 자연 출산에 의해 탄생되지 않은 과학적 힘으로 탄생한 인간의 형상을 한 생명체에 대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다양한 소설 혹은 영화가 있다. 그런 아이디어의 시초가 바로 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싶다. 현실로 이 문제를 가져올 때 윤리적 문제가 언제나 불거지는 부분이지만 항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다. 실제 복제양이 탄생하는 걸 보면 이미 생명공학 및 과학적 분야에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현실로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중노동과 피로로 점철된 수일 밤과 낮이 지난 후 나는 드디어 생명 발생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아니, 오히려 생명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정확하겠지요.

p60

생명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나오지도 않거니와 SF적 요소이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매우 흥미롭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었다. 허구라지만 괜히 흥분되기도 했다.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표현이 조물주가 된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생명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저 생명을 불어 넣는다고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이 중요한 시작점에 프랑켄슈타인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내 본래의 왕이자 주인인 당신에게 심지어 순하게 복종까지 할 생각이오. 당신 역시 제 역할을 해준다면 말이오. 오, 프랑켄슈타인, 다른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면서 나 하나만 짓밟지는 말아주시오. 나야말로 누구보다 그대의 공정함, 심지어 관대함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란 말입니다. 기억해주시오. 나는 당신이 만든 존재라는 것을. 나는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버렸소.

p126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정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덩그러니 세상에 태어났는데 보살피는 이 하나 없는 상황을 견딘다는 자체가 매우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의 창조주에게 버림 받았고, 희망을 갖고 다가선 이들에게 역시 자신의 모습은 그들을 위협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그러나 죽음에서 사람을 구했지만 괴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총을 겨누었다. 복수와 증오의 감정이 차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구보다 착한 심성을 가졌고 언어를 습득하고 지식도 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려조차 하지 않고 괴물로만 여겼다.

인간이 날 연민의 눈으로 봐주지 않는데 왜 나는 그래야 하는지 말해보시오. 나를 저 얼음 틈바구니로 밀어 넣어 당신이 직접 만든 내 육신을 망가뜨리더라도 당신은 그걸 살인이라 하지 않겠지. 인간이 날 경멸하는데 왜 나는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거요? 인간이 친절을 주고 받으며 함께 살아가게만 해준다면 나 또한 해는커녕 나를 받아준 데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할 것이오.

p186

프랑켄슈타인을 설득하는 괴물의 절규와도 같은 말이다. 사람들에게 괴물로 취급 받더라도 외롭지 않게 여자 피조물을 만들어 달라고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부탁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면 모두 감내하겠다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저 단 한 사람만을 바랐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킨 괴물에 매우 당황스럽겠지만 책임감이 결여된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소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창조해 낸 생명의 결정권이 창조자에게 있다고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괴물의 말을 통해 이 자연스러운 사고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설파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감정 역시 혼란스럽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악마를 탄생시킨 것이다.

괴물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나름 열심히 노력했으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두려움이 밀려왔다. 괴물이 자손을 만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닿았고 결국은 여자 피조물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괴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를 살해함으로써 내 범죄 행각도 끝이 났군요.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내 존재 역시 끝을 향해 가고 있소! 오, 프랑켄슈타인! 관대하고 헌신적인 자여! 이제 와서 그대에게 용서를 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걸 파멸시킴으로써 돌이킬 수 없이 그대를 파멸시켰는데. 아! 싸늘하게 식었군. 내게 대답을 주지는 못하겠군요.

p286

비극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처음은 사고였다. 그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아이를 고른 것일 뿐이었다. 발버둥치는 아이의 목을 조른 살인자가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자신의 탄생시킨 프랑켄슈타인에게도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의 부탁을 했지만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그간 받아왔던 고통과 복수심, 증오심은 모두 프랑켄슈타인에게 향했다.

이 소설은 과연 비극일까. 단순히 비극이라 말할 수 없는 묘한 마무리다. 이 소설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과연 괴물인지 프랑켄슈타인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 이름없는 괴물에 연민의 마음이 생겨날 수 밖에 없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괴물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불행했지만 앞으로의 그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전 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책에 영향을 준 소설들이 등장한다. 저자가 직접 언급해 소개하기도 하고 책 내용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어 소개하기도 한다. 아래의 책들이 이 책에서 소개되었다. 꼭 읽어보고 싶다.

저자 메리 셸리가 명작이라 꼽은 책들

그리스 비극 <일리아스>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우>, <한여름 밤의 꿈>

밀턴 <실낙원>

괴물이 헛간에서 읽은 책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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