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윤순식.원당희 옮김 / (주)교학도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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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대중 철학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의문을 갖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내가 가진 기억과 감정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다. 또한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도덕과 선행을 베푸는 일이 중요한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물음을 누군가에게 던지기는 참으로 어렵다.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 대화하다간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심도 깊은 대화가 가능할리 만무하다. 누군가와 이런 철학적 주제로 대화하기엔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참 반가웠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들을 한 가득 쏟아낼 수 있었다. 그 어렵고도 심오한 주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단순한 질문들이 오랜 기간 유명한 철학자들이 고민해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다. 쉬운듯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평범한 질문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갖는 지극히 정상적인 의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지적 호기심이 샘솟는다. 분량이 길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주제들을 다룬다. 철학이라는 주제는 다양한 학문과 얽혀있음에 놀랍기도 했다. 뇌에 대한 탐구의 시작인 의학, 해부학에서부터 정신분석학과 생물학도 깊은 연관이 있다. 동물과는 구분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와 인간의 뇌라는 자체가 순수하게 참 궁금하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키보드로 글을 작성하는 순간 우리의 무의식적으로 키보드의 글자를 누르고 있다는 사실은 무의식의 세계, 이드의 동작을 의미한다.

철학은 언제나 그렇듯 A는 B야 라고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런게 바로 철학의 재미이자 흥미다. 나는 언제나 답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철학을 만난 이후로 답없는 이야기를 즐긴다. 유연한 사고를 길러주는 철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9개월 동안 바이올린 연주자와 함께 같은 병상에서 신장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 하겠느냐는 물음에 이 황당한 상황은 뭔가 싶었다. 이 상황이 의도치 않은 임신을 한 임신부의 사례에 연결시키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낙태에 대한 이야기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시각에서 낙태는 상황에 따라 허용되어야 한다는 시각과 직관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시각 등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철학 주제였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힘든 이런 딜레마적 철학 질문에 혼란스러운 이 순간이 재미있다.

행복은 철학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연결되어 있고 행복의 상태를 많은 사람들이 갈망한다. 통계적 분석, 뇌 과학의 시각, 철학자들의 주장들, 저자의 개인적 경험까지 더해져 행복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행복과 큰 연관성이 없다는 데 있다. 통계적 수치가 보여주듯 행복지수가 가난한 나라들에서 높게 나타나고, 유유자적한 어부가 관광객보다 더 행복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모습에 딜레마를 느낀다. 행복이 전부가 될 수 없는 한 가정의 아빠의 입장에서 행복을 계속 갈구하는 현실이 참 웃프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책의 제목이 있다. 바로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에 대해 극히 공감하면서도 이와 대치되는 정의론의 내용들이 매우 궁금해진다. 공리주의자들이 부를 통해 행복의 촉진을 증진할 때 롤스는 정의를 고집했다니 정의론의 그 정의가 궁금해졌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공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인데 과연 롤스가 말하는 정의에 가까운 사람일 수 있을까란 의문이 생겨났다.

딱딱하고 머리아픈 철학이 아니어서 좋았다.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철학 주제들이어서 좋았다. 마치 편하게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회사 일로 정신 없는 나에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어쩌면 엄청 귀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혀 쓸데없을 지도 모르는 철학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 좋았다. 당분간은 이 책을 계속 읽고 있을 것 같다.

누군가가 행복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숙련된 삶의 예술가가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너무 높은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행복한 삶과 성공한 삶은 결국 전혀 다른 것이 아닐까? 행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여전히 의문은 이렇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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