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 비밀을 간직한 사람 같았다. 그 비밀 때문에 어머니가 거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표지만 알았을 뿐 내용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 - P99

우리는 오랫동안 싸움만 했지, 토지개혁은 해본 적이 없었네. 법치가 뭔지 몰랐으니, 당연히 무슨 일이든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어. 모두 모여 회의를 열고 누구를 죽여야 한다고 하면 죽였지. 혹은 토지개혁조 조장이 어떤 사람이 아주 나빠서 죽여야 한다는 보고를 들으면 죽이라고 결정했고, 말단 책임자가 아는 게 없으니 정책 수준이 낮을 수밖에.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네. - P184

자네도 그 대저택을 봤지? 그러면 부자가 얼마나 부유했는지 알았겠지.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모르잖나.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사람이 정말 많았네! 어느 사회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 재산을 빼앗거나 지주들 토지를 빼앗아도 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세상 인심은 똑같아.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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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망각을 배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망각은 살아남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 P17

그녀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사랑한 그 사람이 가버리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P33

그에게는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시간과 잘 지내는 것만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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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정체성이란 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걸까? 쉐펀은 생각만 해도 가소로웠다. 대충 가정해보자. 오늘날 러시아가 타이완을 점령한다면, 타이완인은 자기를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까? 국적이 변하면, 정체성도 저절로 바뀔 수 있을까? - P216

대다수 사람은 ‘타이완인‘을 한인으로 상상하고 원주민은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 뉴스에서 원주민에 관해 보도해도 이질적인 ‘타자‘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원주민은 타이완에서 출생했고, 애초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한인은 그런 ‘투명한 우리‘를 보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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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인들은 정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히가시야마 아키라도 생각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바츠먼의 변호인>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진순신은 나오키상을 받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은 일본에서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는 타이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이 타이완인이기 때문이다. 전쟁 전, 그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당시일본과 타이완은 ‘동일한 하나의 나라‘였다. 전쟁 후 그는 자동적으로 중화민국 국민이 되어 송환되듯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그가 타이완에서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특히 2·28사건으로 자극을 받아 얼마 안 돼 다시 떠났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제재로 삼아 많은 작품을 썼으며,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중국에 실망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보유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타이완인이고 타이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대량으로 쓴 일본 국적의 작가인 그는 도대체 일본인일까, 타이완인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타인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단순히 국적으로만 보면 그는 일본과 중화민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이 바로 그의 정체성일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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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윗선에서는 뉴스의 계량화된 클릭률을 신경 쓰는 거겠지? 쉐펀은 이 점을 잘 알았다. 게다가 그녀가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나 힘 같은 순수한 무엇이 아니었다.(중략) 기자로서 쉐펀이 추구하는 것은 진상도, 정의도 아닌 존엄이었다. 쉽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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