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시아버지 루쯔차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풍성한 혼백을 가지고 태어났다가 살면서 차츰 잃어간다. 그러다 다 잃어버리면 혼이 사라지지 옆에서는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라진 거다. 그 사람은 다시 몸을 돌려 조금씩 자기가 뿌려놓은 혼백을 줍기 시작하지. 도로 다 회수하면 득도할 수 있다. 그러면 좋은 집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다 회수하지 못하면, 잘은 모르지만 내세에 돼지나 개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 P197

이런 밤을 겪었는데 제가 살아 있는 것 같나요? 그녀는 속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 P201

 한때 수십 명이나되었던 하인들은 해방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다. 갈 곳이 없거나 꼭 필요한 사람들만 남았다. - P205

왜 우리집 문은 루가 저택의 문과 달라요? 그녀의 물음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대대로 학자 집안이라 숨길 필요가 없어서란다. 거리낄 게 없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해도 돼. 사실 세상에서 제일 이목을 끌지 않는 사람은 모두와 똑같은 사람이란다. 그래야 제일 안전하고.
그런 기억을 떠올리다가 딩쯔타오는 냉소를 지었다. 어떤 식으로 몸을 낮췄든 전부 곱게 죽지 못했잖아요, 하고 생각했다. - P212

어떤 인생이든 사실은 소소한 인생이고 누구나 소소한 일상을 제일 많이 살아. 다시 말해 소소한 인생은 소소한 일상과 어울려야만 가장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 P229

다들 나더러 살라고 해서 난 정말로 살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죽는 것과 뭐가 다르죠? 내가 사는 게 후씨 가문, 루씨 가문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모두 사라졌는데, 내가 후씨 가문 사람인지 루씨 가문 사람인지 누가 신경이나 써요? 다들 내 목숨을 지켜주려 했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몰라요. 이런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 P257

그녀는 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희망을 채우고 있는 것들 때문에 절망하고 말았다. - P258

 그녀 혼자만의 세상에서걷고 앉고 눕는 듯했다. 거기에서 뭐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는 그녀 세상 속의 사람만 알 수 있었다. 칭린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지만, 그녀의 세상 밖에 있는 존재였다. - P265

 세상 누구에게도 속물근성이 없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칭린은 생각했다. - P267

세상이 뒤바뀌는 격변의 시대에 개인은 얼마나 고독하고 미약해지는 걸까? 시대의 한줄기 미풍이 어쩌면 그들 인생의 배를 완전히 전복했을지도 몰랐다. - P300

과거를 잊는 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망각이 있어서 나와 네 어머니는 이렇게 오랫동안 편안히 살 수 있었다. 망각은 네 부담을 줄여주고 미래를 가볍게 맞이하도록 해줄 거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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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 비밀을 간직한 사람 같았다. 그 비밀 때문에 어머니가 거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표지만 알았을 뿐 내용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 - P99

우리는 오랫동안 싸움만 했지, 토지개혁은 해본 적이 없었네. 법치가 뭔지 몰랐으니, 당연히 무슨 일이든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어. 모두 모여 회의를 열고 누구를 죽여야 한다고 하면 죽였지. 혹은 토지개혁조 조장이 어떤 사람이 아주 나빠서 죽여야 한다는 보고를 들으면 죽이라고 결정했고, 말단 책임자가 아는 게 없으니 정책 수준이 낮을 수밖에.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네. - P184

자네도 그 대저택을 봤지? 그러면 부자가 얼마나 부유했는지 알았겠지.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모르잖나.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사람이 정말 많았네! 어느 사회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 재산을 빼앗거나 지주들 토지를 빼앗아도 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세상 인심은 똑같아.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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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망각을 배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망각은 살아남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 P17

그녀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사랑한 그 사람이 가버리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P33

그에게는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시간과 잘 지내는 것만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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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정체성이란 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걸까? 쉐펀은 생각만 해도 가소로웠다. 대충 가정해보자. 오늘날 러시아가 타이완을 점령한다면, 타이완인은 자기를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까? 국적이 변하면, 정체성도 저절로 바뀔 수 있을까? - P216

대다수 사람은 ‘타이완인‘을 한인으로 상상하고 원주민은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 뉴스에서 원주민에 관해 보도해도 이질적인 ‘타자‘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원주민은 타이완에서 출생했고, 애초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한인은 그런 ‘투명한 우리‘를 보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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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인들은 정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히가시야마 아키라도 생각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바츠먼의 변호인>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진순신은 나오키상을 받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은 일본에서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는 타이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이 타이완인이기 때문이다. 전쟁 전, 그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당시일본과 타이완은 ‘동일한 하나의 나라‘였다. 전쟁 후 그는 자동적으로 중화민국 국민이 되어 송환되듯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그가 타이완에서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특히 2·28사건으로 자극을 받아 얼마 안 돼 다시 떠났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제재로 삼아 많은 작품을 썼으며,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중국에 실망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보유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타이완인이고 타이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대량으로 쓴 일본 국적의 작가인 그는 도대체 일본인일까, 타이완인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타인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단순히 국적으로만 보면 그는 일본과 중화민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이 바로 그의 정체성일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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