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대륙과 맞먹는 면적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8년에 걸친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국민당은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만리장성 이남 지역에서 게릴라 부대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농촌을 불법 점유하고 약탈함으로써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다. 여기에 더해서 허베이 성과 산둥성 외곽의 넓은 지역을 점령한 채 도시로 공급되는 연료와 에너지원, 식량 등을 차단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 P48

<100위안으로 1940년에는 돼지 한 마리를 샀다. 1943년에는 닭한 마리를 샀고 1945년에는 생선 한 마리, 1946년에는 달걀 하나를 샀다. 그리고 1947년에는 그 돈의 세 배를 주어야 성냥 한 갑을 샀다.> 1947년에 이르러 생활비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1년 전인 1936년에 비해서 거의 3만 배로 올랐다. - P48

공산당은 이미지 전쟁에서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에 관련된 환상을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 성공의 주된 요인은 안내원을 동반하고 돌아다닌 소수의 방문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공산당의 본거지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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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 기간 중 일본군은 시종일관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다. 만주 북부에서 아열대 지역인 광둥 성에 이르기까지 산재해 있던 일련의 비밀 실험실에서 전쟁 포로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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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평화롭게 해방을 맞았다는 수십 년에 걸친 선전 때문에 공산당이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28

만주에서 거둔 결정적인 승리라고 추켜세우는 중국 역사책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창춘의 함락에는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대략 16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공산당 군대에 포위된 채 굶어 죽었다. 인민 해방군 중위였던 장정룽은 봉쇄 작전에 대해 기록하면서 <창춘은 마치 히로시마 같았다>라고 썼다. <사상자 수도 대충 비슷했다. 다만 히로시마는 9초가 걸렸고 창춘은 5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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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명에 육박하는 일명 <지주>들이 당과 가난한 자들 사이에 피로 맺어진 계약에 의해 숙청되었다. 지주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이웃보다 상황이 별반 나을 게 없는 이들도 많았다. 부주석인 류사오치가 허베이 성에서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생매장을 당하거나 결박된 채 분시(分屍)를 당하거나 교살을 당했다. <어린 지주>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들이 도륙되기도 했다. - P10

혁명이란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폭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끔씩만 행해질 필요가 있었다. - P11

1956년에 중국 정부는 소위 <보상 매입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구멍가게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영 기업을 국유화했다. 이 정책은 매입이나 보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P13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지 10년 만에 주석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모든 약속이 깨졌음에도 공산당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상주의자들이었고 일부는 기회주의자들도 있었으며 폭력배도 있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의 믿음과 거의 광신적인 신념을 보여 주었다. - P13

공산당의 선전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다루었다. 온갖 계획과 청사진, 모델로 이루어진 세상이었으며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인간이 아니라 모범적인 노동자와 농부가 주인공인 세상이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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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란 나라를 알기 어려운 이유는 ‘덮는 문화‘ 때문인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르다. 그것이 배려가 될 수도 있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문화는 그다지 평균적인 일본인이 아닌 내 입장에서도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단면이다. 포장할 일도 비판할 일도 아니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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