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이유가 있어. 남을 강간한 사람에게조차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이유가 있어.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이유도 필요하지 않은 건 오직 강간당하는 것뿐이야. 넌 선택할 수 있어.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동사들처럼 내려놓을 수도 있고, 뛰어넘을 수 있고, 벗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넌 그걸 기억할 수도 있어. - P320

인내는 미덕이 아니야. 인내를 미덕으로 규정하는 건 위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비틀어진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미덕이야. - P321

"우린 앞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없어. 정직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없어." - P322

작은 이빨이 촘촘히 박힌 주둥이를 벌리고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커다란 생선이 무슨 말을 하려다 참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서 억울함이 배어났다. 비틀린 몸의 절반은 테이블 밑에서 나는 소리를 경청하는 듯 모로 누워 있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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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이 문을 여는 순간 마오마오는 어릴 적부터 닳도록 읽은 번역 소설의 원문을 마침내 읽은 기분이었다. - P274

 그들은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걸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작디작은 평화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282

일기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달의 뒷면 같았다. 그녀는 이 세상의 곯아터진 상처가 이 세상 자체보다 크다는 걸 알았다. - P309

이원은 검은 바탕에 흰 물방울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가리켜도 별자리가 될 것 같았다. 이원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온몸이 별자리였다. 아름답고 강인하고 용감한 이원 언니였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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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언제나 고독하다. 이 사랑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독은 홀로 있는 고독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고독이었다. - P221

샤오치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오랫동안 힘겹게 한 악마를 받아들였는데 그 악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더러운 것조차 자신을 버리는 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지옥에서 추방당했다. 지옥보다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곳은 어디일까? - P246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 P267

주변의 모든 것이 황당한 그녀의 인생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인생은 남들과 달랐다. 그녀의 시간은 똑바로 흐르지 않고 왕복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모텔로, 모텔에서 아파트로, 종이 위에서 볼펜으로 똑같은 선을 계속 왕복하며 그리다 보면 결국에는 종이가 찢어져버린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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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것들이 자신과는 영원히 무관한 얘기라는 걸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일은 신 바깥의 일이었다. 이불로 덮으면 신조차도 볼 수 없었다. - P137

쓰치는 또래 남학생들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마다 과거의 일기가 자기 피부 밑에서 스멀스멀 스며 올라와 문신처럼 살갗에 새겨지고 지도 같은 흉터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 남학생이 선생님의 말을 훔치고, 선생님을 모방하고 습작하고 선생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쓰치는 선생님의 등 뒤에 퇴화를 거부한 꼬리처럼 매달려 있는 욕망을 보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랑은 알지 못했다. - P138

그의 말에는 마침표가 많았다. 자기 말이 옳다는 뜻이었다.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마침표는 그녀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우물이었다. - P142

그녀는 신이 고통이라는 이름의 칼로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이성을 잘게 잘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걸 보았다. 신의 입가에서 피처럼 과즙이 흘렀다. - P159

이 세상을 암흑으로 만든 건 바로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몸에 난 상처가 험난한 골짜기처럼 그녀와 세상 사람들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그녀는 방금 전 길가에서 자기도 모르게 자살하려고 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P162

이원의 미소가 한없이 순수했다. 그건 인간 세상의 통계학에서 태생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미소이자 한 번도 상처 받은 적 없는 사람의 미소였다. - P178

"가장 사악한 건 아무것도 모른 채 스스로 추락하는 걸 내버려두는 걸 거예요."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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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함이란 이처럼 평범한 것이고, 평범함이란 이처럼 쉬운 것이다. - P94

 그가 그녀에게 무엇을 주는 건 다시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가져가는 건 격정적으로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 P103

"우리 둘 다 미안하다고 하지 말자.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야." - P109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 그럼 그는 무엇일까? 그는 그 어린 양들이 제일 좋아하고, 또 그 어린 양들을 제일 좋아하는 절벽이었다. - P123

쓰치가 식어버린 음식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팅, 난 이미 오래 전부터 나 자신이 아니야. 그건 나 자신을 향한 향수야."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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