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베벌리 후퍼는 <오랫동안 모욕을 받아 온 사람들이 이제 모욕을 되돌려 주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회를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아주 사소한 잘못까지 언론에 의해서 제국주의 침략을 상기시키는 영원한 상징으로 부풀려지면서 외국인은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되었다. - P180

법은 제국주의 수탈의 도구로 간주되어 거센 압력을 받았고 따라서 거의 아무런 의지가 되지 못했다. 변호사들은 법정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금지되었고 재판 절차는 당에 충성하는 수석 판사에 의해 결정되었다. 외국 기업의 법률 고문으로 활약하던 상하이 변호사 협회의 유명한 많은 회원들이 스러졌다. 민·형사를 막론하고 기존의 모든 법규가 집행 정지되었다. - P186

1946년과 1948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개신교와 천주교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대략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4,000명이 넘는 개신교 선교사들 중 절반이 해방 이전에 파견지에서 탈출했다. - P189

마오쩌둥 본인은 교황청에, 특히 국경을 초월하여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그들의 능력에 흥미를 느꼈다. 천주교도의 집요함이 그를 동요하게 만들었다. - P191

 이 여든일곱 살의 노인은 로우교를 건너 홍콩에 들어갈 때 보청기도 가져갈 수 없었다. 기계 장비를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 P193

국가의 치안과 도시의 기간 시설, 당 간부들에 대한 교육, 경제 건설, 이념 작업에서부터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중국은 소비에트 연방을 모방하고 있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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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인생의 여정이고 상식인데 왜 다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어. 젊음이란 전력을 다해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 P225

그랬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이 크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데 거리는 아주 길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더 멀리 늘어날 수 있는 듯했다. - P239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있어서 잘못하면 그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을 아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 P241

언제부터인지 나는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면 온몸이 불편해지면서 어떻게든 감정적 교류를 피하려 했다. 그랬다. 어떻게 응해야 하는지 몰랐다. 다른 사람의 공감과 선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행복과 희망, 선량함을 왜인지 몰라도 천박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비아냥과 냉소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어쩌다 거만한 데다 그걸 인식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감동하면 약해 보인다고 생각해 차라리 관심을 끊고 깔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 P273

그래, 세상이 이제 달라졌어. 예전에 안 통했던 일도 방법을 바꿔서 접근해 봐. 제일 중요한 점은 자신이 믿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기 싫은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거야.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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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가족끼리는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지만, 사랑이 없는 솔직함은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관계 속에 책임만 남아 모든 논쟁이 공평한지 아닌지만 따지게 되면 전부 잿더미가 될 뿐이다.
바람이 불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 P99

여기 사람들은 정말로 공부를 무척 좋아하는 듯 성적이 좋지 않아도 부학사 과정을 몇 개씩 밟으면서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 명실상부 학사가 되려고 하고 학사가 끝나도 쉬지 않고 석사, 박사까지 공부하려고 한다. 평생 학교에 있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많은 학위를 따도 ‘자아 인식‘
은 제대로 할 줄 모른다. - P131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은 가장 빛나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기 때문에 실제 인생보다 찬란하고 감동적이야. 네가 보는 것들을 네가 나중에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간접 경험에 중독되지 마. 그건 네진짜 경험을 대체할 수 없어. - P131

나는 200만 위안이 십 년 만에 뜬금없이 900만 위안으로 불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없었다.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를 조작 가능한 돈벌이 도구로 바꾸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 P188

 우리는 늘상실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느닷없이 깨달을 뿐이었다. 수많은 상실 중에서도 우리는 사람에 대해 특히 경각심을 갖지 않았고 아무 힘도 쓰지 않았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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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시트콤이라는 말은 맞다. 다만 아직 어리다는 전제가 깔릴 때만 가능하다. 다 자라면 더 이상 시트콤이 되지 않는다. - P19

그날 이후 남들 눈에 우리 네 가족은 고난을 이겨 낸 친밀한 가족으로 보였다. 심지어 극적인 경험을 부러워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어떤 일이든 코미디로 끝나는 순간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돈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P22

어른들은 편견이 많은 데다 무례하고 터무니없었다. 나는 정말로 영원히 크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줄 알았다. - P27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전에 사용했던 가구들을 보자 왠지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싶어졌다. 그것들이 나와 커러를 알아볼 것만 같았다. 아빠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집을 판다는 말은 벽과 바닥과 천장을 판다는 의미였다. 팔아 봐야 공간을 팔 뿐이건만 아빠는 가구까지 전부 팔았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상생활까지 판 게 아니겠는가?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P54

우리 집에서는 커러가 태어난 뒤 볼 수 없었던 화목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아빠와 엄마가 마주칠 시간이 없어서였다. 싸움도 얼굴을 맞대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휴일이나 명절 때마다 가족이 모두 모였지만 워낙 시간이 제한적이라 다들 돈 버는 이야기만 했다. 부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중년이 되고서야 목표를 찾았다고 말했다.(중략)
아빠 엄마의 상황은 만남이 적을수록 관계가 잘 유지된다는 기이한 깨달음을 주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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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가들에게 소설은 인생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내게 소설은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이다. - P459

조너선 프랜즌은 에세이 《혼자가 되는 법 How to Be Alone》에서 소설은 ‘경험에서 떠오른 찌꺼기를 언어의 황금으로 만드는 것이며 소설은 세상에 버려져 길가에 뒹구는 쓰레기를 주워, 아름다운 사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거리를 돌 때마다 이 말이 떠올랐다. 이 소설이 정말로 ‘고물 줍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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