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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명만 보고도 책에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신 분들이라면 모두 아시다시피, 이 책은 가수 이적이 쓴 단편소설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표지에는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라고 적혀 있는데, 그 말대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몽상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책의 말미에 소설가 김영하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우리나라의 문학적 전통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글들이다. 오히려 18,19세기 유럽의 고딕풍 환상문학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글들이다." 이 말대로, 이적이 쓴 소설들은 한국의 보편적인 순수문학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김영하가 말한 18,19세기 환상문학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소설들의 근원에 가까운 문학을 찾자면 에드거 앨런 포나 기 드 모파상의 환상문학 혹은 괴기소설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최근의 문학에서 비슷한 느낌의 것을 찾자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실린 단편들이 이런 류의 소설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물론 몽상적이지만, 그 뿌리는 현실에 있다. 아예 다른 세계를 배경 삼아 창조해 낸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조금 비틀어서 상상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오래 전의 환상문학과 닮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소설만큼 매끄러운 진행이나 심오한 문학성을 이 책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 나타난 독창성과 상상력만큼은 그에 견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은 누군가가 "패닉 노래를 듣는 느낌이다"라는 감상을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의 느낌도 비슷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집에 실렸던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같은 느낌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랄까. 지금까지 노랫말에 산문적으로 풀어냈던 이야기들을 이적은 이 책에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펼쳐놓은 것이다.
패닉이나 긱스, 그리고 이적 솔로 앨범의 노래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나가실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들의 분위기는 음울한 편이지만 읽기에는 가볍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책도 예쁘게 나와서 팬들이라면 소장가치를 느낄 듯.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수 이적의 이미지에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맞춰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