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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내게 있어서는 그리 좋은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스밀라 야스페르센, 그녀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스밀라라는 인물을 꼽고 있는데, 나 역시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스밀라, 그녀는 존경받고 사랑받아 마땅하다.
이 책은 그리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작가는 매우 불친절하다. 서술방식은 어찌보면 산만하기까지 하다. 책을 읽노라면 독자는 1인칭 주인공인 스밀라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 그녀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 그리고 그녀의 의식 속 깊은 곳을 바쁘게 따라다니며 읽어내야 한다.게다가 이 소설은 지식 스릴러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러가지의, 그리고 깊이 있는 지식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미묘한 관계도 그러하거니와 수학, 해양학 등의 전문지식에 대한 내용은 그런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그리고 그런 분야에 익숙한 사람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책의 초반부를 읽는 동안에는 정신이 상당히 산만해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부분들도 건성으로 보아넘겼고, 그녀의 수사와 사건과의 연관성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스밀라를 쫓아 그린란드, 그 얼음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땅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그대로 덮어 버리기에는 그녀의 행보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며, 더 큰 이유는 그녀가 지독히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스밀라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움직인다. 그녀의 박식함, 침착함, 대담함 모두 그녀의 매력에 플러스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녀가 그런 이성과 함께 뜨겁고 격정적인 감성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 또한 가지고 있기 떄문이다. 그녀는 우울해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사랑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한다. 중반 이후 그녀가 배 안에서 보여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범하고 강인한 모습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정말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모습들 뒤에 감춰져 있는 그녀의 감정이다. 한 소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그 소년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려는 의지, 그것을 은폐하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자들에 대한 분노,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 그녀는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인 동시에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에 지배당하는 한 인간이다.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이 책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기는 힘들지만, 스밀라를 좋아한다는 말은 꼭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