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때 누군가가 사부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문서 사자실에서 만났던 알레산드리아 사람 아이마로였다. 나에게, 그의 인상은 충격적이었다.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마로라는 사람은 인간의 어리석음과는 죽어도 화해하지 못할 것은 물론이고, 인간도 어리석을 수 있다고 하는 우주적인 비극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윌리엄 수도사에게, 예의 그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윌리엄 수도사님, 벌써 이 광인(狂人)들의 소굴에 익숙해지신 모양이군요?」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는가? 나는 이 지극히 점잖고 학식 있는 분들이 모이신 곳을 광인의 소굴이라고 한 적 없네.」
윌리엄 수도사가 점잖게 응수했다.
「옛날에는 그랬습지요. 수도원장이 수도원장 같고, 사서가 사서같이 굴었을 때엔 그랬습지요. 이 윗동네를 보셨겠지요…….」
(중략)
「이곳 수도원장의 안중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머리 속에는 서책 상자만 가득 들어앉아 있지요. 케케묵었다는 것입니다. 대체 원장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아시기나 하십니까?……이곳에는 뭐 필사사도 없고, 그리스 어나 아랍 어를 하는 사람도 없답니까? 돈 많고 점잖은 부호의 아들이 피사나 피렌체에는 없답니까? 이들을 교단으로 맞아들여 그 배경의 권력과 금력을 쓰면 안된답니까? 그러나 한심하게도 게르만 인이 아니면 안된답니다. 이곳에서는 게르만 인의 인정을 받아야 세간 소식을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수도사님…… 아이고, 이놈의 혀, 온당하지도 못한 소식을, 어쩌자고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지…….」
(중략)
「……우리는 장서관 문제를 더불어 논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나 조금 논하고 싶은 생각이 저에게는 없지 않습니다. 자, 원컨대 이 뱀굴을 백일하에 밝혀 벗기십시오. 수많은 이단자들을 화형대로 보내신 분이시니 능히 해 내실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아, 사람을 화형대로 보낸 적이 없네.」
윌리엄 수도사가 발끈하면서 그의 말꼬리를 낚아챘다. 아이마로는, 아이마로답지 않게 사람 좋게 웃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잘해 보십시오, 윌리엄 수도사님. 하지만 밤에는 조심하십시오.」
(중략)
내가 사부님께 물었다.
「아이마로 수도사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던 것입니까?」
「모든 것을 말하려 하는데도 언외(言外)로는 한마디도 넘쳐나지를 않는구나.」
(상권, pp.204-209)
윌리엄 수도사는 그 천 조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뭔가 좀 잡히는 것 같구나.」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제히 윌리엄 수도사에게 물었다.
「베렝가리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베렝가리오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잡으신 것입니까?」
「모르겠소.」
사부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이마로는 한 차례 앙천(仰天)하고 나서 산탈바노 사람 피에트로에게 속삭였다.
「영국 치들은 할 수 없다니까.」
(상권, pp.298)
배랑에는 수도사들이 잔뜩 모여 집회소 안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맨 앞줄에는 알레산드리아 사람 아이마로도 섞여 있었다. 아이마로는 우주의 덧없음을 몹시 딱하게 여기는 딱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월감을 주체하지 못해 사람을 대할 때도 큰 은혜라도 베푸는 듯이 대하고는 했다. 그런 아이마로가 예의 그, 큰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사부님에게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프란체스코 회가 있으니 그래도 기독교 국가의 기강이 이만이나 하지요.」
사부님은 노골적으로 업신여기는 듯한 얼굴을 하고는 약간 거친 손길로 그를 밀친 다음 똑바로 구석에서 기다리는 세베리노 쪽으로 다가갔다.
(하권, pp. 553)
말라키아가 고개를 숙인 채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였다. 집회소 창가로 몰려와 있던 호기심 많은 수도사 무리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너는 저자의 밀서를 감추어 주었고, 저자는 주방에서 너에게 수련사들의 궁둥이를 구경시켜 주었지?」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라키아는 무리 좌우를 헤치고 황급히 문을 나섰다. 아이마로의 음성이었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마로는 가성(假聲)으로 외친 것이 분명했다.
(하권, pp.599)
주방에서 나오다 우리는 아이마로를 만났다. 아이마로는, 말라키아가 베노에게 보조 사서 자리를 주었다는 소문이 나도는데, 혹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로써 베노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한 셈이었다. 아이마로는 예의 그 빈정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오늘 말라키아는 꿩 먹고 알 먹었군요. 정의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정의가 악마를 보내어 오늘 밤 말라키아를 데려가게 할 텐데요…….」
(하권, pp.627)
교회 안에는 몇몇 수도사들이 남아 있었다. 알리나르도 노수도사, 티볼리 사람 파치피코, 알레산드리아 사람 아이마로, 산탈바노 사람 피에트로……. 아이마로는 여전히 빈정대고 있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게르만 인이 세상을 떴으니 이제 저자보다 더 무식한 장서관 사서 맞을 일은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하권, pp.653)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와 1인칭 관찰자인 아드소, 그리고 수도원장을 비롯 미켈레나 우베르티노같은 굵직굵직한 인물들, 그밖에 그 지위 때문에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 수도사들을 제외하고, 일반 수도사들 중에 그 이름이 가장 자주 언급되고 윌리엄 수도사와 가장 자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바로 알레산드리아 사람 아이마로 수도사이다.
물론, 작가인 에코의 성격과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이기는 하지만, 에코가 이 아이마로 수도사를 자신과 동향-이탈리아 북서부의 알레산드리아-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분명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마로는 소설에서 등장할 때마다 어쩐지 온 세상을 빈정거리고 무시하는 듯한 느낌으로 비꼬는 듯이 말을 하는데, 아이마로의 이러한 태도와 짓궂은 대사는 에코의 비종교인으로서의 객관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얼마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