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혁명은 과거의 흔적을 전부 지우려고 한 대담한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정당화를 위한 수많은 이론적인 시도 뒤에는 세계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려는 한 늙어 가는 독재자의 결심이 숨어 있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믿었고 끊임없이 그렇게 주장했으며 자신이 공산주의 진영의 등불이라고 생각했다. - P11

많은 독재자가 그렇듯이 마오쩌둥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과 관련하여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쉽게 원한을 품는 남다른 재주도 있었다. 뒤끝이 길었던 그는 쉽게 상처받고 분노했다. 인명을 경시한 탓에 사람들을 겁박하려고 벌인 정치적 운동에서 태연하게 살인 할당량을 부과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점점 더 동료와 부하를, 특히 오랜 세월 자신의 곁을 지켜준 전우를 공격하면서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투옥하거나, 고문했다. 요컨대 문화 대혁명에는 한 늙은 남자가 말년에 이르러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하려는 목적도 존재했다. 문화 대혁명의 이 같은 두 가지 측면, 즉 수정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사회주의 세계를 지향하는 비전과 실재하거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겨냥한 추잡하고 앙심에 찬 음모는 별개가 아니었다. 마오쩌둥은 자신과 혁명을 동일시했다. 자신이 곧 혁명이었다. 자신의 권위에 불만족스러운 기미만 보여도 프롤레타리아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다. - P12

그럼에도 주도권은 주석에게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동시에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었으며 즉흥적이었고 의도적으로 혼란을 초래했다. 매사를 즉흥적으로 처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을 굴복시키거나 끝장냈다. 매사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늘 주도했으며 끊임없이 규칙을 바꾸어 가면서 게임을 즐겼다. 그는 주기적으로 직접 개입해서 자신의 충신을 구제하거나 반대로 가까운 동료를 늑대들에게 던져 주었다. 그의 단순한 말 한마디로 수많은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특정 파벌에 대해 <반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 P16

1967년 1월에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좌파>를 지원함으로써 혁명을 달성하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야 할 만큼 혼란이 가중되었다. 군 지도자들이 서로 다른 파벌을 지지하고 하나같이 자신이 마오쩌둥의 진정한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확신하면서 중국은 내전을 향해 치달았다. - P15

 권력의 정점에 있는지도자들부터 빈곤에 허덕이던 농민들까지 그들은 지극히 힘든 상황에 직면했고 그들이 내린 결정의 복잡성 때문에 흔히 마오쩌둥 시대 마지막 10년의 특징으로 알려진 완전한 복종 구도가 붕괴된다. 그들 하나하나의 선택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마오 주석이 의도한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그들은 부르주아 문화의 잔재와 싸우는 대신에 계획 경제를 뒤엎고 공산당의 이념을 도려냈다. 요컨대 마오쩌둥주의를 묻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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