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독재자는 광장을 필요로 한다. 열병식은 공산주의 정권에서 국가 의례의 핵심이다. 머리 위로는 제트 전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며, 연단 위에 모인 지도자들은 박자에 맞춰 행진하는 수천 명의 병사들과 모범 노동자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가운데 권력은 군사적 위력의 과시로 표현된다. - P249
자신이 복무하는 산시성 군사단의 정치 위원에게 보내는 보고서에서 당원 허우시샹은 후난 성 평현의 고향 마을에 돌아갔을 때 많은 관들이 파헤쳐져 집 앞 들판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 뚜껑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유해는 사라지고 없었다. 며칠 뒤 비 내리는 오후에 그는 현지 부서기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네 개의 솥단지에서 비료로 사용될 시신들이 삶기고 있었다. 밭에 추출물이 골고루 뿌려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P262
마오쩌둥은 자연을 극복해야 할 적, 굴복시켜야 할 적대자, 대중 동원을 통해 개조되고 활용되어야 할, 인간과 근본적으로 분리된 실체로 보았다. 환경에 맞선 인민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자연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의지주의적 철학은 인간 의지와 혁명 대중의 무한한 에너지가 물질 조건들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고 공산주의 미래로 가는 길에 놓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리 세계 자체는 개조될 수 있고 언덕은 밀리고, 산은 평평해지고, 강의 물길은 들어 올려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양동이로 퍼올려서라도.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면서 마오쩌둥은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 P264
지도부가 경제 침체를 이러한 재해 탓으로 돌림으로써 정치에 대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가운데 경제에 미친 자연의 충격이 크게 강조되었다. 자연에 책임을 정확히 얼마나 돌려야 하는지는 쟁점이 되었고 류사오치는 <생산에서 어려움>의 30퍼센트는 자연재해로 야기되었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인위적 요인 탓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가 나중에 곤경에 처하게 된다. - P269
조사해 보니 이들 지역이 겨우 700밀리미터에 불과한 침수에 철저히 파괴된 주요 이유는 1957년 가을 이후로 엄청난 규모의 치수 공사가 실시되어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방대한 관개 시설 네트워크는 물을 가둔 다음 토사로 막혔다가 <땅을 바다로 바꾸는 용>이 되었다. 상황이 너무 나빠서 300밀리미터가 넘는 강우만으로도 재난을 야기할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지어진 운하와 수로를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보면서 깊이 분개했다. - P271
자연을 정복하는 인민 대중의 힘에 사로잡힌 마오쩌둥은 1958년 쥐, 파리, 모기, 참새를 박멸할 것을 부르짖었다. 참새는 곡식의 종자를 먹어서 인민들의 노고의 결실을 앗아 가기 때문에 목표물이 되었다. 대약진 운동 가운데 가장 기괴하고 생태학적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사건들 중 하나에서 중국 전역은 참새에 대한 전면전에 동원되었다. - P280
자연에 대한 전쟁에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지도자가<자연재해>라고 묘사한 것을 급격히 증폭시켰다. 철강 증산 캠페인은 삼림 파괴를 야기했고 이는 다시 토양 침식과 물 손실로 이어졌다. 거창한 관개 사업은 생태학적 균형을 더욱 교란해 메뚜기 떼를 몰고 오는 홍수와 가뭄의 충격을 악화시켰다. 가뭄은 다른 경쟁 상대를 모조리 제거해 버리는 반면 가뭄에 뒤 이은 홍수는 메뚜기가 다른 곤충보다 더 빨리 알을 까고 황폐해진 풍경을 점령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참새는 사라지고 살충제는 오용되었기 때문에 곤충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농부가 가까스로 재배한 얼마 안 되는 작물마다 몰려왔다. 마오쩌둥은 자연에 맞선 전쟁에서 졌다. 캠페인은 인간과 환경 사이 미묘한 균형을 무너뜨림으로써 그 결과 인간의 생명을 무더기로 앗아가며 역효과를 가져왔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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