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나드는 한일 언론의 ‘캐치볼‘이 몇 차례 반복되더니 급기야는 일본 신문들이 "국내의 혐한 분위기를 우려한다"라는 사설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사이엔가 혐한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일 양국의 언론은 우려의 뉘앙스로 언급함으로써 혐오의 정서가 잦아들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극우 세력에 이 상황은 오히려 세를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혐한을 거론할수록 사회적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혐한은 극우 세력의 단골 구호가 되었고, 이제는 그 세력이 구심이 되어 혐오 발언이나 반인권적 행동을 해나가고 있다. - P273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천황‘이야말로 신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나라의 주인이며, 그를 위해 적과 싸우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고 선전해 왔다. 항복을 선언하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일본 대중들은 그 역시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고 한다. 불과 70여 년 전에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운 기이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은 이성보다 광기에 가까운 법이다. 항복이 선언된 이날을 ‘패전일‘이 아니라 ‘종전일‘이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침략 전쟁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특히 과거사에 대한 관점이 현저하게 우경화되는 상황에서 ‘종전일‘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우려스럽다. - P303
일제가 전쟁을 자행하던 당시 일본 사회는 전근대적인 군주제에 머물러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첫발도 내딛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에서, 과학기술과 군수산업만 기형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즉, 일제의 침략 전쟁은 어떤 정당성도 부여되지 않은 무법적 만행이었다. 시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체제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전쟁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정권이 가해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민중도 폭주하는 권력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정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 P304
일제의 무법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의 시민이 명명백백한 전쟁의 주체라고 단언하기에 애매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방관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전쟁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전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패전이든 ‘종전‘이든 혹은 ‘해방‘이 되든, 과거 침략 전쟁의 과오를 직시하고 대내외적으로 성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쟁이 끝난 지 75년이 되도록 일본 시민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가아니겠는가.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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