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사양의 통신 기술이 한국과 일본에서 전혀 이질적인 미디어로 진화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삐삐는 목소리나 음악 등 소리를 전달하는 시끌벅적한 구술 미디어로 탈바꿈한 반면, 일본의 포케베루는 문자를 매개하는 과묵한 문자 미디어의 길을 택했다. - P226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일본에서는 원격 회의 시스템 등을 활용한 비대면 술자리가 꽤 인기이다. 일본인 동료들과 ‘줌 회식‘을 즐기다 보면, 각자 좋아하는 술잔을 기울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푸는 개인주의적인 음주 문화가 비대면 술자리와 은근히 궁합이 맞는다고 느낀다. 반면, 함께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한국의 주당들은 ‘랜선 술자리‘에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을 듯하다. 한국에는 술잔을 쨍 부딪치고 서로 부대끼는 ‘찐한‘ 술자리를 못 가질 바에는 차라리 ‘혼술‘을 택하겠다는 술꾼도 많지 않을까? - P231
뒤르켐에 따르면 이타적 자살은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합리화된다. 개인의 인격보다 집단의 필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집단의 명예에 비하면 개인의 삶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근저에있다.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경시하는 결론에 쉽게 다다르는 것이다. 일본의 할복 풍습은 사무라이 개인의 목숨보다 무사 집단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선조가 주신몸에 멋대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신체관도 개인의 개성보다 가족이나 선조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혈연적 집단주의와 관련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타적 자살은 ‘대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인이 목숨을 버리는 행위이다. 이타적 자살은 개인의 인격과 삶의 다양성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다. 한 개인의 생명을 가볍게 보는 생각은 다른 개인의 생명 역시 대의를 위해서라면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 P247
학문의 상아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려 하지 않는 경직성도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 대학의 완고하고 보수적인 태도가 연구 활동의 객관성과 명분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 P261
이동하는 문화의 속성과 관련해서 "주변으로 갈수록 오리지널 문화가 남아 있다"라는 주장도 있다. 식문화로 예를 들자면,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 오리지널 레시피의 정통 프랑스 음식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변화했을 파리의 레스토랑보다. 19세기에 ‘이식된 채로 보전된 호치민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진짜‘에 더 가까운 맛을 재현할 수도 있다니 흥미로운 일설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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