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 때, 중국 공산당 창당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로 가는 여비 명목으로 소련 첩자에게 처음 200위안을 건네받았을 때부터 마오쩌둥의 삶은 러시아 자금에 의해 뒤바뀌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고,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이용해 초라한 게릴라 전사 무리를 최고 권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모스크바로부터의 끊임없는 문책과 당직으로부터의 축출, 그리고 당 정책을 둘러싼 소련 고문관들과의 무수한 대결도 감내해야 했다. - P33
스탈린처럼 마오쩌둥도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고 생각했고, 스탈린처럼 역사에서 자신이 맡게 된 역할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과 무오류성을 확신했다. - P37
스탈린을 격하하는 것은 그에게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소련 독재자와 비교한 마오쩌둥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또한 오로지 자신만이 스탈린의 과오와 업적을 평가할 수 있을 만한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스탈린에 대한 공격은 그저 미국인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에 대한 반발은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도 허용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은 주석의 커져 가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집단 지도 체제로의 복귀를 원하는 이들에게 유리한 공격수단을 제공했다. - P39
그러나 비록 마오쩌둥이 전시용 충성 서약을 해주었다 하더라도 한편으로 그는 흐루쇼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공산주의 진영의 진정한 최고 수장임을 보여 주고자 모스크바에 왔다.(중략) 나중에 흐루쇼프가 회고록에서 회상했듯이 마오쩌둥은 자신이 나머지 사람들보다 한 등급 위라고 생각했다. - P46
어느 전기 작가가 표현한 대로, 마오쩌둥은 <채찍을 들어 올리기 위해 저우언라이를 바짝 끌어당겨야 했던 한편 때로는 자신의 생존에 없어선 안 될 그에게 채찍을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 P56
그날 류사오치는 지도자 찬양에서 저우언라이를 압도했다. <그동안 나는 마오 주석의 우월성을 느껴 왔다. 나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마오 주석은 당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지식, 특히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특히 마르크스 이론과 중국 현실을 결합하는 데 실제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마오주석의 우월성은 우리가 칭송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점이다.> - P57
마오쩌둥은 비전에 찬 공상가였고, 저우언라이는 악몽을 현실로 탈바꿈시키는 산파였다. 언제나 근신 중인 그는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대약진 운동에 지칠 줄 모르고 전념하게 된다. - P59
숙청은 대다수의 비판적 목소리를 잠재우며 당의 모든 층위에서 단행되었다. 거의 어느 누구도 당 노선에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내몽골 사막지대 인근 가난한 지방인 간쑤성 곳곳에서 곡물 징발이나 과도한 할당에 관해 조금이나마 비판적으로 지적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 되었다. 수확량을 걱정하는 당원들에 대한 메시지는 단도직입적이었다. <네가 우파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 P61
숙청은 당의 모든 계층을 속속 관통했다.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자기 뜻을 강요하는 가운데 지방 실력자들은 반대파는 누구든 <보수 우파>라고 규탄하면서 저마다 전횡을 휘둘렀다. 그리고 지방 수도에 권력자가 있듯이 현장과 그 수하들도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숙청을 이용했다. 그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위협을 일삼는 현지 불량배들한테는 눈을 감았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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