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적 낙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은 집산화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산주의의 도래를 알리는 거대한 인민공사 안으로 한데 몰아넣어졌다. 농촌 사람들은 일과 집, 토지, 소유물, 생계를 빼앗겼다. 집단 배급소에서 성과에 따라 조금씩 배급된 식량은 사람들이 당의 모든 지시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무기가 되었다. - P11
비교 가능한 다른 참사들, 이를테면 폴 포트나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 일어난 참사들과 달리 대약진 운동 동안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실제 규모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의 신임장으로 든든히 뒷받침되는 극히 신뢰받는 역사가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당 기록 보관소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2
<기근>이나 심지어 <대기근great famine>이라는 표현은 마오주의 시대의 이 4~5년을 묘사하는 데 흔히 쓰이지만 이 표현은 과격한 집산화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어 간 무수한 방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기근>이라는 안이한 용어 사용은 이러한 죽음들이 형편없이 실행된 섣부른 경제 계획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널리 퍼진 시각을 뒷받침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중략) 그러나 이 책에 제시된 새로운 증거들이 입증하듯이 강압과 공포, 체계적인 폭력이 대약진 운동의 토대였다. - P13
사람들은 선별적으로 살해되기도 했다. 부자라는 이유로, 꾸물거린다는 이유로,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슨 이유로든 공동 식당에서 국자를 뜨는사람의 손에 죽었다. - P14
이 책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기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이 기록하는 것, 종종 괴로울 만큼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위신을 걸었던 사회 경제 체제의 붕괴다. 파국이 펼쳐지면서 주석은 자신이 가진 없어서는 안 될 당의 지도자라는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비판가들을 맹공격했다. 그러나 기근이 끝난 뒤에 주석에 강하게 반대하는 새로운 분파 세력들이 등장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문화 대혁명으로 나라를 뒤엎어야 했다. 중화 인민 공화국 역사에서 중심축이 되는 사건은 대약진 운동이었다. 공산주의 중국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는 어떤 시도든 대약진 운동을 마오주의 시대 전체의 정중앙에 놓고 시작해야 한다. 훨씬 더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 사회가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당시의 파국은 카오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국가 계획이라는 발상이 얼마나 심대하게 어긋난 것인지를 상기하는 사례로 남아 있다. - P16
여기서 드러나는 마오쩌둥의 초상은 도저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면밀하게 가꾸어 온 공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연설은 횡설수설이고,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에 집착하며, 종종 과거에 받은 모욕에 대한 앙금이 오래가고, 회의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용해 좌중을 으르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도사며, 무엇보다도 인명 손실에 철저히 무감한 사람이다. - P17
식량 기근이 퍼져 나가면서 보통 사람들에게 생존은 점점 더 거짓말을 하고 남을 홀리거나 감추고 훔치거나 속이거나 좀도둑질을 하거나 양식을 뒤지고 밀수하거나 술수를 부리고 조작하거나 아니면 국가의 허점을 노리는 여타 수법을 동원하는 능력에 달려 있게 되었다. - P18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그 결과로 맨 꼭대기의 주석까지 전달되는 정보가 왜곡되었다. 계획 경제는 방대한 양의 정확한 데이터 투입을 요구하지만 모든 층위에서 목표치가 왜곡되고 숫자가 부풀려지고 현지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정책들은 무시되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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