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끝내는 방법에는 크게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과 ‘타협적 평화‘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두교전 세력 가운데 우세한 세력 쪽의 시점을 통해 논의를 진행해 보자.(중략)
우세한 세력 쪽에서 보자면 열세에 몰려 있는 교전 상대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고 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해 두면 이후 이 상대와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장래의 화근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교전 상대에게 완전히 승리해 무조건 항복을 받아 내면 장래의 화근을 없앨 수 있다. 이런 전쟁 종결 방식을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이라고 해 두자.(중략)
하지만 우세한 세력이라 해도 교전 상대를 완전히 타도하려면 그만한 출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명 손실 등 큰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게 싫다면 장래의 화근을 남겨 놓을지 모르지만, 교전 상대와 타협해 도중에 전쟁을 끝낸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즉, ‘타협적 평화‘라는 전쟁 종결 방식이다. - P184

이렇게 전쟁 종결의 형태는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이냐 ‘타협적 평화‘이냐, 둘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우세한 세력이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P185

여기서 문제는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이 트레이드 오프(이율배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장래의 위험‘을 제거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거꾸로 ‘현재의 희생‘을 회피하려면 장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과 공존해야 한다. 이른바 ‘시소게임‘을 하면서 실제 어떻게 전쟁을 끝낼지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 P186

불리한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없는것은 아니다. 전쟁 종결 방식이 조금이라도 ‘타협적 평화‘ 쪽으로옮겨 갈 수 있도록 교전 상대가 느끼는 ‘장래의 위험을 줄이거나, 상대가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희생‘을 키우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불리한 세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세한 세력이 인식하는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이 바뀌게 된다. 우세한 세력은 불리한 세력과 타협할지, 아니면 또 다른 희생을 각오하며 타협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 P187

일본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9조의 문제도 있다. 일본이 ‘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려면, 정부의 헌법 해석과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정부 견해는 "적이 공격해 올 경우 [이를 격퇴한 뒤] 적을 계속 몰아붙여, 장래의 화근을 끊어 내기 위해 본국까지도 전부 해치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사토 다쓰오 내각법제국 장관의 1954년 5월 25일 답변)는 것이다. - P191

,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희생‘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 미일동맹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3자의 개입(반대의 경우 이쪽 동맹 세력에서 누군가 이탈하는 경우)과 관련한 교전 상대의 희망을 끊는 것이다. 둘째, 상대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려는 빌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후에 대한 약속을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는 적절한 형태로 상황을 고조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P194

문제가 되는 것은 미일 간에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을 둘러싼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 교전상대는 미일 간에 벌어진 틈을 타고 한쪽을 상대로 단독강화를 하자며 구도를 흔드는 움직임에 나설 수 있다. - P195

대만 사태를 어떻게 끝낼지 논의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집단적 자위권 간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지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명확히 설명한 적이 없지만, 몇 가지 자료에 근거해 추론해 볼 순 있다.
국제법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때는 보호를 받는 대상(요청국)이 국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기본 전제가 된다.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쪽의 주장에 대해 ‘인식한다acknowledge‘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견해를 밝혀 왔다. 대만이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만은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지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제1장에서 살펴본 대로, 미일 양국은 모두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승인‘한다고 분명히 밝히진 않고 있다. 게다가 미일은 대만해협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려 할 경우 ‘이는 중국의 국내 문제‘라는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며 수수방관하진 않을 것이다. - P207

일본 혹은 미일동맹이 대만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형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하며 대만 사태에 개입한다면, 중국과 휴전에 합의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만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중국은 대만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모양새로 미일과의 휴전에 응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일이 한번 인정한 대만의 ‘국가성‘을 취소하는 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이 경우엔 휴전 교섭 때 대만의 지위가 미묘해진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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