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독립협회 일부 인사들이 주도한 민회가 종로에서 개최되었다. 훗날 이 모임을 ‘만민공동회‘라 불렀다. 그 배후에는 이완용과 서재필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완용은 친러파 이전에 친미파였던 것이다. 당시 윤치호는 대중들이 규율이 없어 과격해질까 봐우려했다. 이에 서재필은 조선인들은 권위에 대항하여 나설 용기가 없다고 대답했다. - P198
윤치호가 보기에 서재필은 "약삭빠르고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의사는 매달 그렇게 큰 액수의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 윤치호는 일기에서 서재필은 그 돈이 자신이 그렇게 소리 높여 동정을 드러냈던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의 주머니나 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기술했다. -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