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탑재된 맥 OS는당시 기준으로 10년은 앞선 기술이었다. 잡스가 그때만 해도 생소한 입력장치였던 마우스를 클릭하고 맥이 말을 시작하자 청중은 순간 숨을멎은 듯 조용해졌다. 기계적인 합성 음성으로 맥은 이렇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매킨토시입니다." 마치 시리의 할아버지와 같은 음성이었다. "가방에서 나오니까 정말 기쁘네요(당시 잡스는 가방에서 맥을 꺼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옮긴이)" - P51

윈도우가 맥 OS만큼 우아하지 않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제품을 내놓든 그것이 곧 업계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 P51

잡스는 IBM이 괜찮은 수준의 PC를 발표하되,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이 접근할 수 없는 제품이길 희망했다. 그렇게 되면 PC라는 개념 자체에 정당성이 부여되어 업계 전체에 도움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53

잡스의 실수는 PC 경쟁이 애플의 기준, 즉 사용성과 디자인에 있다고 가정한 데 있었다. 하지만 IBM은 그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택했다. 바로 ‘개방형 아키텍처‘를 도입했던 것이다. 이는 비용을 낮추고 경쟁을 촉진했으며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 P55

"애플 내부에는 애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태도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키보드부터 온갖 부품까지 전부 스스로 만들려 했고, 결국 애플 컴퓨터는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더 비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P57

애플이 파운틴 공장을 SCI에 매각한 일은 곧 항복을 의미했다. 공장을 넘긴다는 것은 잡스와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제품을 만들던 시절부터 지켜온 신념, 즉 제조를 통해 애플의 운명을 통제하겠다는 전략이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공장을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 못지않은 경쟁사인 SCI라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SCI는 애플을 몰락으로 이끈 전략을 선도한 기업이었다. - P61

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잡스는 최악의 본성을 드러냈고, 스컬리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스컬리와 벌인 이사회 결전에서 패한 뒤, 잡스는 대부분의 직무에서 해임되었고, 결국 1985년9월 16일 사임했다. 그의 사직서는 아름다웠다. 그는 사직서를 새로 나온 레이저라이터로 출력해 제출했다. - P68

 또한 일본 기업들이 설계를 정교하게 구현해내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협업 능력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한 제품 매니저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들은, 어쩌면 그럴 자격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애플의 엔지니어링을 얕잡아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어요." - P72

베이커는 미국은 관료적이고, 비용과 품질 면에서 이미 아시아에 한참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아시아든 미국이든 아웃소싱업체를 찾기로 하면, 아시아 업체들은 하루이틀 안에 연락이 옵니다. 미국 업체들은 보통 2주 후에야 회신이 와요." - P73

 베이커는 곧 대만 업체들이 일본 업체들보다 훨씬 유연하고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은 수십 년간 축적된 제조 경험에 기대 자기 방식대로 일하기를 고수했지만, 대만은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고, 협업에도 열려 있었다. 다만 숙련도 면에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애플은 현지 공장의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 엔지니어들을 직접 파견하기 시작했다. - P73

 아멜리오는 수년에 걸쳐 진행 중이던 맥 OS의 개선 작업이 가망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따라서 아예 새로운 OS를 개발하거나 외부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통찰은 결국 애플을 구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잡스를 다시 애플로 불러들였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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