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가 말하는 문화, 즉 유럽 귀족문화는 일본에서도 교육받아 배워야 할 교양이 되었고, 유럽 귀족문화에 대한 지식과 교양은 탈아입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 P147
TV가 영화를 대신하여 매스미디어의 왕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영화관으로 관객이 알아서 찾아오던 시대는 지나고,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혹하기 위한 작품이 필요했다. 섹슈얼리티와 바이올런스는 남녀노소에게 노출된 TV에서는 다루기 어렵기에 영화에 특성화된 영역이었다. 1965년 개봉된 482편의 작품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15편이 ‘핑크영화‘로 불리는 섹슈얼리티에 호소하는 작품이었다. - P150
일본 영화가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폭력의 정당성을 위해 택한 것은 일본의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화에 몰입했던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시의성을 잃어버리고 옛 에도 시대의 정서로 고착되어 버렸던 ‘기리닌조‘, 즉 ‘의리‘와 ‘인정‘의 감정적 도덕률이었다. ‘이키즘‘ 역시 ‘기리닌조‘를 아름답게 보이게 할 미학적 장치로 같이 소환된다. 이렇게 해서 ‘이키‘하고 ‘이나세‘한 주인공이 ‘기리닌조‘의 도덕률을 어렵게 지켜내는 모습에서 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른바 야쿠자영화로 불리는 임협영화가 만들어졌다. - P151
야쿠자의 어원은 카드게임이었다. 세 장의 카드 숫자의 합이 9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산마이가루타‘게임에서 8, 9, 3의카드 조합은 0이 되어버리는 가장 안 좋은 패의 합이었다. 이 8,9,3의 숫자를 줄여서 부르는 발음이 야, 쿠, 자였다. 에도시대의 야쿠자는 곧바로 조직폭력단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고, 한곳에 머물지 않고 부유하며 규칙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앞서 설명했던 히케시와 도비, 방물장수인 데키야, 운송업자를 칭하는 히캬쿠, 도박꾼을 뜻하는 바쿠토 등이 야쿠자로 불리는 직업군이었다. - P152
요컨대 1960년대의 야쿠자영화는 신몬 다쓰고로로 상징되는 에도 시대로부터의 낭만적 임협과 옛 정서가 사라진 현대의 잔혹한 야쿠자와의 대결을 그렸던 것이다. 타카쿠라 겐으로 표상되는 ‘이키‘와 ‘이나세‘의 미학은 현재의 유행과 세련됨의 상징이 아닌 에도 시대로의 노스탤지어였다. - P156
도라 상의 옷차림은 1960년대에 ‘이키‘와 ‘이나세‘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럽고, 실패만 거듭하며 결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도라 상에게 보내준 대중들의 실로 거대한 애정은 결국 인정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옛 에도 시대의 조닌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던 시타마치 정서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요약할 수 있다. - P159
옛 일본의 전통적 관습과 생활양식이 교화, 아니 강제적으로 교정된 도쿄에는 이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의식이 생겨난다. 올림픽 이후로 생성된 새로운 도쿄의 도시미학은 세련된 도시청춘남녀의 생활과 연애를 그리며, 등장인물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성층에 어필하는 ‘트렌디드라마‘라는 TV드라마 장르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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