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과 달랐던 일본의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로 일본은 봉건제 국가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무사 권력은 허울뿐이기는 하나 천황과 귀족계급을 유지시킨다. 형식상이나마 천황에게 각 지역에 대한 지배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조정의 일을 일임받아 천황이 있는 교토가 아닌 다른 곳에 관청을 여는 형태를 취했다. 이러한 관청을 막부라 부른다. 막부의 장을 부르는 호칭이 다름 아닌 장군이란 의미의 쇼군이다. 막부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각 지역을 할거하던 군소 무사 권력들이 권력투쟁을 벌이게 되고 센고쿠 시대라 불리는 혼란한 시대에 들어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전국을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열어 쇼군이 된다. 에도는 수도가 되었고 이때부터를 에도 시대라 부른다. - P54

쇼군의 직할지인 에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번의 번주(다이묘)와 그 휘하의 무사들은 비록 지체 높은 무사님들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5

에도야시키는 (각 번의 대사관 격이었기에) 궁궐에 필적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가번(현재의 가나자와현에 해당)의 에도야시키는 현재 도쿄대학교 캠퍼스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번들의 야시키 또한 현재 미술관, 동물원, 방위청 등의 부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 P57

흔히 일본이 경박단소한 물건을 잘 만들어 내는 이유를 일본의 민족성 등에서 찾고는 하나, 전쟁과 참근교대와 같은 인적 이동이 잦았던 일본의 역사적 사실이 민족성과 같은 모호한 이유에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 P61

화재의 빈번함은 에도 조닌들이 일생에 한두 번은 화재로 집이 불타 없어질 것을 각오할 정도였다. 화재와 지진 등의 재난으로 불타고 부서진 건물들을 새로 짓기 위해서 많은 목재와 인력이 필요했고 재화가 투입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재건 사업을 통해 에도는 호황을 누렸고 조닌의 사회경제는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에도인들은 화재가 도시 부흥과 경제발전의 비료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것을 거듭된 화재와 부흥의 경험을 통해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화재는 에도의 꽃‘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러한 성공 경험에서였다. - P64

얇은 나무판자 하나를 맞대고 다른 세대와 이어져 있는 나가야에서 사생활 보호는 불가능했다. 이렇게 협소한 나가야의 공동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현재 우리나라의 아파트에서 겪는 층간소음 문제 정도를 떠올려보더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주민들 간의 매너와 규칙, 벌칙 등의 문화도 발달하게 된다.
길을 가다 상대방의 발을 밟으면 밟은 쪽도 밟힌 쪽도 서로 미안하다고 표현한다든지, 아이들에게 매너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킨다거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분위기 등 현대의 일본에서도 이어지는 매너와 룰은 현대의 공동주택 생활에서 지켜야 할 매너와 규칙 등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아파트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인들이 단독주택을 선호하게 된 것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P67

일본어 ‘구다라나이‘는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구다라나이가 볼품없거나 재미없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은 물건이나 사람이 위쪽의 가미가타에서 구다라나이, 즉 교토와 오사카에서 내려오지 않아 볼품없다, 재미없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에도는 아직 미성숙한 도시였다. - P68

교덴의 에돗코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에코는 에도에서 태어나야 하고,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며, 돈에 집착하지 않는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에돗코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자 미덕이었다. - P70

돈을 아끼면 에도에서 태어나도 에돗코가 아닌 것으로 여겨졌대 하루 지난 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돗코다. 그러나 돈이 없어도 돈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꽤 괴로운 법이다. 이를 풍자하는 많은 센류와 이야기들도 전해오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허세를 부리는 것 역시 에코스러운 모습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당시의 에도인들은 이러한 허세를 다른 번, 즉 다른 나라 사람들은 따라할 수 없는 에도에서 살아가는 에도토박이들만의 특징으로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 P71

에돗코가 타자화시킨 대상은 다름 아닌, 에도에서 무위도식하며 거들먹거리지만 에도가 낯선 곳이기에 어리숙하기만 했던, 그렇지만 칼을 차고 있기에 고개는 숙여야 했던, 참근교대로 각 지역에서 올라와 있던 (에돗코의 입장에서 보면) 시골무사들이었던 것이다. 무사들에게 고개 숙여야 하지만 에도는 자신들의 홈코트이고 그렇기에 무사들보다 훨씬 세련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에도 조닌들의 프라이드와 연대감, 그리고 무사계급에 대한 숨겨진 반항의 표출이라는 결과가 에돗코 문화였다. - P72

에돗코들의 삶이란 아주 높은 확률로 한순간에 모든 재산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재해를 당할 것이라는 확정적으로 불안한 미래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에도에서 태어나 에도에서 살아가고 죽어야 할 에돗코들은 재난이라는 비일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에돗코들의 선택은 어차피 불에 타 없어질 거라면, 처음부터 재물을 다 써버리겠다는 데카당스적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무사계급의 소비에 더해 생산계급의 소비문화 유행은 에도를 극단적인 소비사회로 만들었다.
에돗코의 소비는 (불타 없어지지 않을) 삶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그들이 즐기던 엔터테인먼트는 공연예술(가부키, 조루리 등), 스포츠 관전(스모 등), 도박, 화류 등이었다. 이는 지금의 현대 도시인들이 즐기는 보편적 엔터테인먼트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에도 시민들이 삶을 즐기려 했던 욕망은 대중문화예술을 더욱 정제되고 세련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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