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자신의 전성기에 멈춰 있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의 낡아빠진 감성은 철저한 자기 착각을 만든다. 과거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왕 감독의 수법에 황청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흔적만 남은 권력으로 ‘과거시제‘를 조종하고 위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 P387

"숨 참아요." 왕레이가 말했다. 그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등 뒤의 지퍼를 올리자 황청의 가슴 사이로 은근한 골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여성의 몸에 새기는 인위적인 주름이었다. 타인의 욕망과 자신과의 타협 사이에서 무심한 듯 연출된. - P404

황청은 이렇게 선명한 빨간색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빨간색은 언제나 황첸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 커다란 결혼사진 속 황첸은 온통 빨간색이었으니까. 거울 속의 자신은 공격성이 없는 기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가시가 뽑힌 붉은 장미처럼, 변형된 붉은 꽃처럼. - P404

정상에 선 등산가가 된 자신이 살면서 지나온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돌아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가슴 한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끊임없는 실패를 겪어야만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동시에 얻었다. 두 가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 P4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