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앙을 경고하는 이들에게는 대중의 의식을 일깨워준 공로에 감사 인사를 보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이 외치는 종말론적 시나리오 대신 새로운 환경운동가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적 실용주의‘를, 그보다 더 혁신적인 이들 사이에서는‘쾌락적 지속가능성‘이라 불리는 것을 내세울 때가 왔다. 책임 의식을 갖고 자연과 생명체를 대하고, 소비와 오락산업에서 떠드는 장단에 맞추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얼마든지 즐겁고 재미있을 수 있다. - P7
기후 위기 경고론자와 회의론자의 말 중 어느 쪽을 따를지 결정할 때 주어지는 위험부담은 결코 같지 않다. 경고론자들의 예언이 옳다면, 인류는 거대한 위험 앞에 놓여 있기에 당장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필요하다. 반면 기후 위기를 의심하는 회의론자들이 옳다면, 모든 것은 히스테리에 불과하다. - P10
자연과 문화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어려움에 부딪힌다. ‘자연‘을 말하는 순간 자연으로부터 한발 물러섬으로써 거기에 속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찬양할수록 그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자연을 문화로 바꾸어 놓는다. 좋은 예가 자연보호다. 자연을 보호하려면 울타리를 둘러야 하고 이는 곧 인위적 대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연의 특정 상태를 근원적이고 보존 가치가 있는 것으로 규정한 뒤 그 자연을 감시하는데, 이것이 곧 간섭이고 ‘문화‘인 셈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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