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군은 이 정도로까지 주민들의 죽음을 강요했을까? 바로 오키나와 주민에 대한 차별과 오랜 불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국가 충성도가 너무 약해서, 만일 미군의 포로로 잡히면 군사기밀을 누설한 것이라고 여겼다. 특히 당시주민 대부분이 군비행장과 진지 구축에 동원된 탓에 군사시설의 위치를 알고 있어 불안해했다고 한다. 사실상 오키나와 사람을 ‘진짜‘
일본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45

이렇게 ‘이민족에다 가난한 오키나와인‘이다 보니 일본 내에서 받는 사회적 차별도 크다. 특히 취직이나 결혼에서 유·무형의 차별을 받고있다. 스포츠와 연예계로 진출하는 오키나와인이 유독 많은 데에는이런 차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오키나와인을 받아주는 일반 회사가 워낙 적기 때문이다. - P346

오키나와에서 현재진행형인 또 하나의 문제는 역사 왜곡이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강요에 의한 집단 자결을 교과서에서 끊임없이 왜곡해왔다. 증인들이 생존해 있고 관련 미군 기록도 남아 있지만,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은 공식적인 일본군 문서 기록이 없다며 인정하지 않고있다. 당시 일본군 방위 부대가 궤멸됐고 군 문서가 전부 소각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억지 논리를 펴는 것이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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