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제사는 화하 문명의 기원 단계에서 대단히 활발했다는 이 책의 서술에 따르면 한 가지 문제가 도출된다. 옛 부족 시대에서 초기 국가로 향하고 문명이 기원할 때 전쟁과 인신공양제는 ‘필요악‘이었을까? 그것이 없었다면 인류는 문명 시대로 진입할 방법이 없었을까? - P46

상나라가 줄곧 인신공양제사에만 탐닉했던 것은 아니며, 왕실 내부에서는 살생하지 않는 종교로 개혁하려는 시도가 벌어진 적도 있다. 다만 이런 이유로 격렬한 내전이 유발되어서 상나라 중기에는 잠시 침체기에 빠졌다가 얼마 후에 재차 부흥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문화에서 들여온 마차 기술이 광역 왕조의 통치 기반이 되었다. 폭력과 권위를 숭상했던 상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성격은 갑골문자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으나, 현대 한자에서는 이미 대부분 망각되어버렸다. - P48

신석기시대에 화베이 지역에서 걸핏하면 충돌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인신공양제사가 성행한 것은 어쩌면 밭농사에 수리 시설이 필요하지 않아서 인간 집단 사이에 협력할 수 있는 동기가 없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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