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가 줄곧 인신공양제사에만 탐닉했던 것은 아니며, 왕실 내부에서는 살생하지 않는 종교로 개혁하려는 시도가 벌어진 적도 있다. 다만 이런 이유로 격렬한 내전이 유발되어서 상나라 중기에는 잠시 침체기에 빠졌다가 얼마 후에 재차 부흥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문화에서 들여온 마차 기술이 광역 왕조의 통치 기반이 되었다. 폭력과 권위를 숭상했던 상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성격은 갑골문자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으나, 현대 한자에서는 이미 대부분 망각되어버렸다. -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