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오래되면 그 길을 걸어가 떠나버린 사람도 너무나 많아진다. 그러나 발자국은 가버리지 않는다. 발자국은 사람 몸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다. 그것은 사람의 몸을 떠나 시간 속에서 홀로 나부낀다. 나부낄수록 멀어지고 또 잠잠해진다. - P405

황사량에서는 서른이 넘으면 눈을 감고도 살아갈 수 있다. 불안하다면 칠팔 년쯤 지나 눈을 떠보면 된다. - P407

이 마을은 참으로 운이 좋다. 운 좋게도 똑똑한 사람들이 다 떠나버렸다. 똑똑한 사람이 촌장을 맡았다면 마을은 일찌감치 탈바꿈했으리라. 그는 보기 흉하게 쓰러져가는 담장과 집을 모조리 헐고, 낫처럼 생긴 황사량 마을을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정비했으리라. 신품종 가축을 들여오고 인공 교배하여 집집마다 소를 다른 품종 소로, 닭을 다른 품종 닭으로 바꿔놓았으리라. 어느 집에도 검은 소나 이마가 하얀 황소가 없을 것이다. 수수닭도, 등은 붉고 배는 하얀 닭도, 잘생긴 잡털 닭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마을은 진짜 끝장인 거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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